구토
작성자명 [김양규]
댓글 0
날짜 2010.08.12
영화 밀양(密陽) 이 생각난다.
아들을 잃은 어미 신애가,
망연자실의 삶을 살다가 주위의 권유로 교회에 간다.
예수를 만나고 말씀을 배우며 믿음을 가지게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배우게 되고,
그러겠노라고 힘든 다짐을 한 후,
드디어 감옥에 면회를 간다.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찾아가 용서하겠노라, 사랑하겠노라 말하려고..
그런데.. 우린 보았다.
그가 면회를 가서 만난 범인은,
생각과는 달리 너무도 환한 얼굴에, 평화스런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
하나님이 다 용서해주셨다는,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며,
이전의 내가 아니라는,
그래서 너무나 즐겁고 감사하다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순간, 신애는 뒤집어진다.
허파가 갈라지는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마당에 나와 구역질을 하며 쓰러지고 만다.
오늘 묵상말씀은 레위기 5장 14절에서 6장 7절,
속건제를 묵상한다.
속건제는 배상이나 보상의 의미를 지닌 제사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사이에 더 이상 속건제물이 필요없게 되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우리는 속건제물로 매주일 흠없는 숫양을 잡아야만 했을게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사이엔 화목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사이엔 아직도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잘못을 범한 상대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마음을 풀어주고,
재산을 손상시켰다면 그 재산을 보상해주는,
마땅한 보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과의 사이, 이웃과의 사이에 마땅히 해야 할 보상은 외면한 채
그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다 풀었다고 룰루랄라 하고 있다면,
그건 정말 허파가 갈라지는, 구토가 치솟는 일이다.
영화 < 밀양 >의 신애처럼 한순간에 뒤집어져서 졸도하고 말게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아닐까.
하나님과 화목했듯 사람과도 화목할 줄 아는 사람,
하나님과의 사이에 속건제물을 드렸듯,
사람과의 사이에도 마땅한 배상이나 보상을 할 줄 아는 사람아닐까.
그래서 허파가 갈라지는 아픔을 겪지않게 하는 사람들 아닐까.
구토를 유발하지 않는 사람들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목요일의 뜨거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