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이의 신앙고백
작성자명 [백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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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2.23
제가 큐티엠에 겉옷을 벗기 시작한 것은 아들 수치 가운데 숨이 막힐 때
우리들교회보다 먼저 큐티엠 싸이트를 소개받고
2003년 5월, 큐티엠의 짱언니인 집사님이, 예전에 한번 오픈한 것을 하나님께서 한번 더하라고 하셔서 한다고 하는 멘트와 함께 오픈하신 바로 그날의 나눔을 읽고 저절로 댓글을 달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오픈이 어떤 한 사람을 살린다는 귀한 원리를 깨닫고 곧이어
속옷을 벗었습니다. 역시 오픈은 치유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사건의 연속이라서 오픈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등록하고 목사님의 말씀을 받아 먹으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제가 우리들교회에선 참 안식을 누리게 되었고, 시원케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었던 그 은혜의 세월을 돌아봅니다.
그 한 사람인 저를 위해 집사님의 오픈이 필요했다면 제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다른 그 한 사람을 위해 다시 수치를 드러내기로 결단합니다.
교사란 타이틀을 가진 저에게 아들의 방황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며
수치며 말할 수 없는 탄식 그 자체였습니다.
내 삶의 결론이지만 피하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은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가 어찌 교단에 설 수 있느냐고
내 자식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학부형들에게 말할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훈계를 할 수 있겠냐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죽고 싶은 처절한 낮아짐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운 아이들이 내 아이처럼 느껴져 그들을 위해 내가 교단에 존재할 이유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도영이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은혜받게 하셨습니다.
도영이가 학교를 가지 않은 날, 성경연구반 학생들을 꼭 인도하게 하셔서 오픈하게 하시고 죽을 것 같은데 기막힌 사연을 오픈했더니 학생들의 마음이 녹아져서 특히 공사중인 학생들이 은혜를 받아 오픈을 했었습니다.
끝이 안 보이는 방황의 늪... 담배, 일진회, 폭력과 연루되어 학생부에 드나들어야 했고
파출소, 경찰서에도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도 학교에 데려다 줘도 그냥 담 넘어 나오는 충동성 부적응의 상태를 계속 지켜만 보아야 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결석일수는 차 오는데 아무 방법이 없는....
학교만 정상으로 하루만 갔다와도 얼마나 감사했던 하루를 보냈었는지...
선생님의 전화받기가 두려웠고 아들에게 묻기가 두려웠고 아들의 뻔한 거짓말이라도 믿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상적으로 학교에 끝날 때까지 앉아 있는 아이들이 너무 부럽고
그래서 제가 담임 맡고 아이들에게 3월 한 달을 결석 안하고 와 줘서 고맙다구 인사할 정도였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오락실을 찾아 다니며 거의 실신상태로 있다가 밤 11시 12시까지 차에서 몇시간씩 기다리며 기도하던 시간들,
그래도 안 들어오면 하나님께 의탁하고 집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거의 잠도 못 잔 채 새벽기도로 달려가서 울부짖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던 시절...
그래도 전혀 변하지 않는 아들을 보며 하나님! 어느 때이니이까?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요?
이렇게 기도하면 아들이 잘 된다는 것을 시댁 식구들이 보아야 전도가 되지 않습니까?
하며 그럴듯한 표적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찰 때까지 계속 몰고 가셨습니다.
먼저 내 죄를 보고 회개할 때까지 사건을 주셨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큐티 말씀을 듣고 사건이 해석되고 소경인 제가 내 죄를 보게 되고
세상과 짝했던 나의 불구 신앙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유턴하게 하신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식도 내가 손 하나 까딱 할 수 없다는 귀한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철저히 낮추시고
내가 0%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제가 완악했기 때문에 온전히 내려 놓을 수밖에 없도록 사건으로 몰고 가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오게 하고 싶어도 집에 일찍 들어 왔다고 교회에 가겠거니 하면 오히려 안 간다고 버티고 아침에 들어왔다고 다 포기하고 있으면 교회에 간다고 하며 하나님은 우리 부부를 훈련시키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모든 것이 가능함을 늘 일깨우셨습니다.
그리곤 아들이 내가 살아 있을 적에 돌아오면 더욱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죽은 후에 돌아오게 하셔도 감사하며 내가 할 일을 하며 가야한다는 말씀에
더할 수 없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일한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그만 숨이 꼴까닥 넘어 갈 즈음에
내 힘이 완전히 다 빠져 나가고 포기했을 때 물 위에 뛰우십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학교를 완강하게 그만 두겠다고 해서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는구나
고등학교 졸업장도 허락 안 하신다면 할 수 없지 하며 주님! 고졸 학력도 내려 놓습니다.
하고 기도했을 때 기적적으로 다시 다니게 하시는 등...
민수기로부터 큐티를 시작한 저의 광야 학교는 시편, 에스겔의 포로생활을 거쳐
로마서, 여호수아에 이르기까지 하루 하루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 와서 잊을 수 없는 재산목록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이란 고백을 하게 되었고
도영이는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관문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까스로 통과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4년제 지방대학이라도 입학하게 하신 것은 기념비 중의 기념비입니다.
물론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 없는 것이 공부를 거의 안했는데 대학교에서 학점이 잘 나올 리가 없지요. 그래도 너무 감사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 가고 1년 동안 도영인 우리들교회에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애통하여 기도하면 잠깐 얼굴 비추고 또 다시 잠수!
자기가 대학에 들어 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부모님의 은혜라 해서 애통합니다.
또 교회에 변화된 모습으로 가겠다고 변명하며 교회는 취미생활로 하지 엄마처럼 삶으로 하진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군대 가기 전날 여러 지체들의 기도 덕분에 가족 찬양을 하고 목사님의 특별기도와 축복을 받으며 도영이는 1학년을 마치고 2월 6일 군대에 갔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중국 지점장으로 발령이 나서 2월 8일에 먼저 출국했습니다.
이제 저도 3년간 동반 휴직을 하고 3월 3일에 출국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중국에 가는 동안 도영이를 군대에 보내시고 자기가 버려진 느낌이 든다고 할 만큼
외롭게 하십니다.
군대 가기 전 예전과 다르게 많은 변화를 보인 것은 그렇게 아빠에게 대들고 늘 싸웠던 아들이 아빠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온 아들을 매일 깨워서 학교 앞에 데려다 주고 교문으로 들여 보냈는데 다시 수없이 중간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자기는 자기 아들에게그렇게 할 자신이 없노라고 말합니다.
며칠 전 군대에서 보낸 편지에 의하면 교회에도 나간다고 했는데 군대 기간 동안 하나님을 꼭 찾고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구합니다.
휴가 오면 우리들교회에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엄청난 사랑의 공동체가 어디 있을까요?
<보석>이라 역차별하며 사랑해 주셨던 목사님과 집사님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도영이가 그 사랑을 깨닫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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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영이가 논산 훈련소 신병들을 훈련시키는 분대장으로 남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대 배치격)
논산 훈련소에서는 인원 중 1/4이 전투경찰에 배치된다고 하여서 내심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이면 어디에 배치를 받아도 하나님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문제는 신체검사를 했는데 왼쪽 팔에 문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비고란에 적혀 있어서 결격 사유가 되고 자대 배치도 참 어렵겠다 싶었는데)
그 동안 문신 한 것을 전혀 못 보았는데 아마 군대 가기 전날 문신을 한 것 같습니다.
기가 막혀서 어쩜 그렇게 넌 마지막 날 문신을 하고 있는 대로 표시를 하고 가니 하면서 속으로 한심했지만 그것도 자기가 한 일이니 상관에게 벌을 받고 차별을 당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논산 가까이에 있는 아는 중대장님의 소식에 따르면
분대장 심사에서 문신은 왜 했냐고 물어 보는 심사위원들에게
도영이가 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어서 예수님 형상을 문신한 것이라 답변을 해서 통과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임기응변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도영이는 원래 너무 솔직해서 그냥 말해 버리는 성격입니다.
제가 그냥 재미로 했는데 휴가 나가면 지우겠습니다 라고 말했든지 했을 터인데,
상관들 앞에서 입으로 크리스찬임을 시인하고 선포했다는 것은 성령님이 시킨 일이라 생각됩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한 것처럼 돌쇠인 도영이로선 자기도 모르게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떤 방법이 아니라 도영이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 논산 훈련소의 분대장으로 뽑히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으로 돌리며 그 입술의 고백대로 책임지는 인생이 되길 소원합니다.
저는 도영이가 이제 군대에서 자기처럼 방황한 신병들이나 가정이 힘들고 어려운 동료들을
교회로 데리고 나가길 기도합니다. 친구를 잘 사귀고 이끄는 도영이가 우리 교회에도 휴가 때 많이 데려 오기를 소망합니다. (고등학교때 날라리 친구들도 많이 데려왔으니까요)
그리고 진정 거듭 나서 자기의 방황을 약재료로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 동안 별로 한 것이 없는 저를 후대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목사님과
귀한 위로와 소중한 사랑을 나눠 주신 지체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 사랑의 빚을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갚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보내셨으니 중국에서 함께 나눌 지체를 붙여 주시고
큐티의 물꼬를 트고 오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돌아오길 원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주세요. 저도 이젠 열심히 인터넷으로만 함께 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연약해서 두려움이 많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아브라함처럼...
가라 하시니 갑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저같이 연약한 사람이...하니
하나님께서 너는 할 수 없지만 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축사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정말 힘든 그 몇 사람, 병들고 힘없는 소망이 없는 자들을 찾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목사님의 영혼 구원에 대한 목놓아 애통하는 절규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발꿈치라도 따를 수 있는 영혼 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있었으면 합니다.
목이 갈라지실 정도로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목사님의 삶...
그 흉내라도 낼 수 있을런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 동안 영육간에 강건하시고 늘 평안하세요!
중국에서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