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법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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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7.29
로마서 13장 8-14절을 보며, 사랑의 방법을 묵상한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인데,
그 사랑은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 하신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생각난다.
그의 책 < 제자입니까 >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은 이웃사랑에 대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셨다.
구약에선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만 사랑하면 됐었지만 (레19:18),
이제 신약시대에 와선 그것만으론 안된다고..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 요한복음 13장 34절을 생각하라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계명, 신약시대에 주신 이웃사랑의 새 계명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단순히 내몸처럼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단계를 넘어서,
내 몸을 희생해서까지, 손해보면서까지 사랑하고 섬기라는 말씀이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자존심이나 체면따위도 아랑곳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진정 원하시는 이웃사랑은 적어도 그 정도의 차원인 것을 강조하신다.
언제나 그렇듯 자존심이 항상 문제가 된다.
자존심이 상하고, 체면이 깎이고, 체통이 손상받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사랑하지 못한다.
그럴 때 예수님의 사랑의 방법을 생각한다.
나를 위해 체면도 깎이셨고 쪽도 팔리셨다.
만인이 보는 가운데서 발가벗겨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셨으면
치욕도 그만한 치욕이 없다.
만인의 죄를 담은 잔을 마셔주셨으면,
그래서 우리죄를 친히 지고 죄값을 당해주셨으면
더 이상 망가질 수가 없다.
그렇게 사랑하라신다.
고상하게, 우아하게, 폼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쪽팔려가며 수치를 당하고 무안을 다 당해가며 사랑하라신다.
적어도 신약시대 사랑하는 방법은 그런 것임을 일깨워주신다.
그래서 또 아버지를 부른다.
내힘으론 할 수 없고 흉내도 못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흉내만 겨우 내어보다가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상하면 발딱 하고 고개를 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엎어버리는,
어쩔 수 없는,
아무리 몸부림쳐봐야 그 정도밖에 안되는 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런 사랑을 훈련하는 하루이#44282;다.
그 방법을 쬐끔이나마 흉내라고 내#44282;다.
그런 기대와 기도로 목요일의 아침을 또 한껏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