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을 향하신 경고와 초청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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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2.01
마 11 : 20 ~ 30
마 11 :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장 권능을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세고을들을 책망 하셨습
니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은 모두 갈릴리 땅으로서 예수께서 공생에의 대부분을 보내신
지역입니다. 특히 가버나움은 갈릴리 선교의 중심지였으며 많은 이적들이 그곳에서
베풀어졌었습니다.
많이 받은자에게 많이 찾으시는 영적 원리로 예수님의 메시지와 권능을 가장 많이 듣고
목격한 거민들에게 가장 신랄한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복음은 바울에게 마게도니아인이 보인이후 예루살렘으로부터 서쪽을 향해서 진행되었습
니다.
그래서 포도원의 일꾼들이 다섯명이 오전부터 오기 시작해서 마지막 일꾼은 마감 한시간
전에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을 하고 삯을 받았는데.... 그 마지막 일꾼이 한국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충성을 다 해야할것 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동방의 은둔의 나라였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 몽골, 일본으로부터 맨날 침략 당하고 수탈당하고 억압만 당해온 나라
였습니다. 그래서 아침 인사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 입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서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땅끝이라고 생각되던 조선에 선교사로
와서 복음의 씨를 뿌렸고 토마스 선교사가 평양에서 순교의 피를 뿌림으로 조선의 부흥이
예고 되었고, 1907 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말씀운동(회개/ 사경회) 이 교회 배가를
계속 시켜나갔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에 한국교회가 큰 부흥을 하게 되었고 그뒤
성도 1000 만명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교회 부흥과 더불어 한국의 경제가 일취월장
도약을 하게 되어서 유래없는 국가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한반도의 그것도 반쪽난 나라가 수출입 총계로 세계 9위의 대국을 이루었습니다.
자원빈국인 이나라가 작은땅, 작은 인구지만 세계선교의 마지막 주자로 한국교회가
부르심을 받은것은 확실 합니다.
그런데 소득이 높아지고 살기가 편해지자 3D 업종은 손도 안댈려고하고 공장은 중국으로
동남아로 가버리고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중소공장들은 운영을 못할 지경이고
농산물의 수입개방을 막기 위해 외국에까지가서 데모를 하고, IMF 를 맞이해서 기적
같이 회생은 했지만 또 그 아픈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외적으로는 거인이 된 한국교회가 내적 부실로 인해서 이 나라에서 별 영향력도 없는
미숙아가 되어 있습니다. 국가 사회에 대한 영향력도 숫자가 반도 안되는 천주교만도 못
합니다.
예루살렘을 출발한 복음의 능력은 가는 나라마다 세계최강국을 만들었는데 (로마 - 유럽
- 영국 - 미국 ) - 한국만 성령이 오셨지만 아직도 미숙아 입니다.
이 성령의 불이 중국에서 지하교인 1억명 시대를 구가 하면서 경제대국을 이루어가고 있고
이제는 인도를 건너가서 인도대륙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힌두교라는 종교의 벽이 있음에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대단한 파워로
백투더 예루살렘을 외치며 달려가는데
한국교회는 등따숩고 배불러서 선교에 목숨 걸지 않고 악세사리로 선교한답시고 몇푼
던져주는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의 세 마을보다 훨씬 더 큰 축복과 저주 아래에 놓여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전하시는 축복의 메시지도 그것을 불신하고 배척하는자에게는 저주의 메시지가
되며 심판의 메시지도 그 의미를 깨닫고 회개 하는자에게는 축복과 사랑의 메시지로 수납
되어 집니다.
복음의 말씀도 어떤이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 이지만 다른이에게는 사망의 냄새로 느껴
지는것 입니다.
또한 주께서는 죄인과 병자의 친구로 오셨기 때문에 교만하고 완악한자를 물리치시며
어린아이와도 같이 겸손하고 온유한자들에게 은혜로운 복음을 계시하시는것 입니다.
당시 유대교는 일반 백성들이 지키기에는 너무도 힘들고 까다로운 온갖 세부규례를
만들어서 문자적으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짐인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율법의 모든 요구 사항과 율법의 정신까지 대신 완수해 주셨으
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짐에서는 해방 되었고 성령의 법에 속하여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것
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서 세상 짐에 억눌려 육적, 영적 궁핍 상태에 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사는 가련한 무리들을 모두 부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 매우 온유하며 고난받는 종, 겸손한 메시아로서 피곤한 영혼을
부르십니다.
예수의 멍에는 세상의 멍에나 율법의 멍에와는 반대 되는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얻게하는 선하고 즐거운 멍에 입니다.
당시 팔레스틴의 멍에는 반드시 짝을 이루어 두 짐승이 함께 지었습니다. 즉 예수의
멍에로 대치한다는것은 곧 예수와 더불어 멍에를 진다는것 입니다.
오늘 ..... 예수께서 함께 멍에를 지자고 초청을 하셨습니다.
나를 향해서..... 한국교회를 향해서 내미시는 주님의 피묻은 손을 잡아야 합니다. ...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