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작성자명 [안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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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31
마태 11장 1절부터 6절
지금 세례요한은 감옥에 갇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제자들을 통해서 혹은 들려오는 풍문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자들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예수님께 여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제자는 도통 <금식>조차도 하지 않는 <비 신앙인>처럼 보였습니다.
뭔가 거룩한.....바리새인을 능가하는 그 무엇을 보여주길 원하는데....예수님의 행동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종교적인 <거룩>과는 관계가 영~ 멀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감옥에 갇쳐있는 세례요한......자신에게 예수님이 그 어떤 소망이 되어지지 못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오실 첩경을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일생을 살았던 요한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라고 여쭈어 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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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이 진정 하나님의 일......예수 그리스도의 일인걸까? 주님이 이 일을 원하시는 걸까?
그렇지만, 이 일이 왜 이렇게 전개되어만 가는거지?
<행위>라는 감옥에 갇쳐 이리저리 곰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갈수록 <예수님>과는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은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주 묻기도 하고 어쩔땐 의문을 마음에 담아둔 채로 <뭔가 이유가 있으시겠지? 때가 되면 다 알게 될꺼야....> 하며 지나쳐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들어 그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분명 <믿음>을 가지고 시작했고,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시작한 일이었기에....이번만은 조금도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으리라! 했지만....
이렇게 <행위>를 동반하는 일은 어쩐 일인지 자신을 믿음 안에 잠자코 가두어 두지 못하게 되고 마는가? 봅니다.
그 대단한 세례요한도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제 질문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 분명 뭔가 잘못 들은 게 있는게지요...이게 아니라....다른 것...다른 것을 기다려야겠지요? 이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요 그쵸?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말씀은 오랫동안 제 안에서 <예수님>의 척도를 재는 큰 획을 긋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해서 도무지 믿지 못하겠고 피하고 싶은 어떤 것에 대해 그래, 이건 예수님의 사역이 분명해 .....라는 확신을 선물하곤 하였었지요.
오늘도 예수님은 분명한 대답을 해 주십니다.
<행위>는 그 자체로썬 아무것도 아닌거라고....
세례 요한이 세상에 나와 자기도 모르겠는 예수님을 자신도 모르게 어떤 상상되어지는 모습을 간직한 채...오실 예수님을 주구장창 외쳤겠지만.....
이렇게 실체를 맞이하고 보니, 자신이 생각하고 상상했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고....그 예수님은 자신이 예상했던 방법과는 너무나 다른 방법으로 자신이 구약에 기록된 그리스도임을 이 땅에 드러내셨기에 참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함>을 생각합니다.
행위 위에 시시각각으로 믿음의 덧입음이 필요함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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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저의 어떤 일도 제가 생각해 오던 예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상상 이상으로 훨씬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감옥에 갇친 세례요한처럼... 이리저리 온갖 생각을 굴려 자신이 아는 <그리스도>와 맞추어 보려고 안간 힘을 써보았지만...늘 행위 그 자체에 갇쳐 있는 요한의 모습으로는 결코 그 답을 찾아낼 수가 없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 바깥에 있는 예수님은 그 답을 알고 계십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할 일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직접 보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핵심을 보지 못하면, 천하의 세례요한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의 핵심을 뚫어보지 못하면...후에 바울 선생님더러 많은 할례당들이 미쳤다 라고 말한 것처럼....그 안에 획을 긋는 복음 사역의 역사를 읽어내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외형을 바라보는 믿음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자신은 갇쳐 있어서 다른 사람을 통해야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실족하기 쉽습니다.
그러나.....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시매.....내 안에도 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에.....외형이 어지러워 보여도....갇쳐 있는 부분이 있어 열리어지지 않은 통로로 제한적으로 볼려니 잠깐잠깐 외혹에 시달리긴 해도.....
결국 이 일 안에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영의 눈이 뜨여져 감과... 홀로 서가는 신앙의 모습과... 죄에서 자유로워진 내 모습을 확인하여감과.... 영의 귀를 열고 말씀을 읽어갈 수 있도록 되어감과... 죽었던 심령이 되살아남을 체험하게 됨과....가난한 내 마음에 복음이 뿌려지는(천국이 임하는) 일들을 수도 없이 체험하게 하신 것을 발견하게 될 때 마다...
행위로 인하여 오는 죽음을 딛고 새로움으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낮아짐과 높아짐과... 오해함과 오해당함과... 미워함과 미워함을 당함과... 사랑함과 사랑을 입음을 두루두루 설렵하여....그 어지러운 서로 매치되지 않고 도무지 이해가 되어지지 않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을 더욱 풍성이 누리도록 하심으로 ...
이 일을 통해서.....이 일이 예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자꾸만 그 지경을 넓혀감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의 어떠하심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실족은 커녕 오히려 그런 주님의 놀라운 사랑 앞에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따라가긴 힘든 길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제 영혼은 이토록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케 하여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
주님의 사랑을 덧입어 그 주님을 계속 따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