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컴플렉스1.
지금은 안 그러겠지만 제가 어릴 적엔 사시사철 밖에서 주로 놀았습니다.
설날엔 세뱃돈 받은 것으로 구슬이랑 딱지를 샀는데 중딩이 되면서부터는
돈치기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구슬(다마)치기와 딱지치기는 도박의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마치기에 있어선 초딩 2-3학년 때 전남 담양군 지침리를 평정하고 천변리 까지
원정을 나간 적도 있습니다.
어른이 되고서도 아직도 다마(당구)를 치는 어른이 바로 제가 아닙니까,
하여간 다마치기는 대표적인 것이 알령굴이였는데 구슬치기의 기본입니다.
뒤꿈치로 땅을 대고 빙 돌려 홀이 생기면 훌륭한 세트가 만들어 졌고 좀더 큰 내기를
하려면 삼각형 치기를 하였는데 이때는 왕 다마가 제격입니다.
까마귀네 삼촌 같은 손으로 돌 뒤에 숨은 다마까지 맞춰서 따놓은 구슬을
쌈치기나 홀짝 하자고 꼬드기는 형들은 절대 상종하면 안 됩니다.
2.
친정을 서울에 둔 어머니 덕분에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다가 방학이
끝날 무렵에 집으로 복귀되곤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식구가 6남매나 되었기 때문에 서울은 아무나 가늘게 아니라 장남인 내게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이었답니다.
딸랑 티켓 한 장으로 가는 서울 이어서 옆 좌석에 아저씨가 앉은 날은 운 좋은 날입니다.
울 어머니께서 매번 광주고속을 고집한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오늘날 금호그룹은 울 어머니의 공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3.
70년대 산업화가 한창일 때 왕십리 종합시장은 섬유산업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땐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5원인가 하는 돈을 냈는데
저는 왕십리 시장골목을 휩쓸며 하루에 20원어치 이상의 다마를 땄습니다.
알령, 삼각형치기, 홀짝, 쌈치기를 가리지 않고 샅샅이 긁어모았습니다.
이제 집에 있는 놈이랑 합치면 700개가 넘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래 이기 시작합니다.
4.
긴긴 겨울 방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동생 놈이 어디를 갔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이게 어떡케 된 일입니까,
내 비밀 창고에 숨겨둔 구슬이 깡통채로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뿔싸,
그렇게 주의를 시켜뒀건만 앞집 중학생 마귀한테
모조리 잃어버렸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사방무늬 꽃 구슬 500개를
참새 두 마리의 행보에 대해서도 세심한 관심이 있으신 주를 찬양합니다.
내 안에 정욕과 자랑이 요동할 때마다 주를 두려워하며 죄짓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사단이 나를 유혹할 때 육신은 죽을 만큼 곤란하고 힘들게 할 수 있어도
영혼은 절대로 건드릴 수 없음을 생각하고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게 하옵소서.
2006.1.27.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