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19.토요일.사사기 8장 29-35절 돌아선 이스라엘 자손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로마제국의 실질적 창시자인 케이사르나 초대황제 옥타비아누스는 경쟁자인 폼페이우스나 안토니우스에 비해 전쟁 수행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탁월한 무공을 자랑하는 폼페이우스나 안토니우스는 화려한 전공에 취해 무절제한 삶을 살므로 약체로 평가되는 케이사르나 옥타비아누스에게 패권을 빼앗기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였습니다.
본문의 기드온을 볼 때 하나님께 한 때 쓰임받았던 사람이 어떻게 타락하고 망해갈 수 있는지 공동체에 어떤 패악을 끼칠 수 있는 지 THINK 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의 타락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큰 구원역사를 이루고 돌아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무려 칠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딸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본처 말고도 세겜에 놀러갔다가 눈에 맞은 여인을 첩으로 두었는데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은 아비멜렉이라 하였습니다. 큰 구원과 승리를 체험한 후 기드온은 자아도취에 빠져버렸습니다. 왕이 되어달라는 요청은 거절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전리품을 다 자기에게로 회수시키고 순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집 사당에 둠으로 모든 백성이 자기를 보러 오고 자기에게 묻게 유도하였습니다. 왕처럼 처첩을 무제한으로 두어 자식농사를 지으므로 기드온 왕가를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라는 말씀이 있는데, 영어 성경(KJV)에서는 이를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전(꿈)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고 묵시(말씀)가 없는 백성은 짐승과 방종히 행한다고 했는데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는 로마가 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에 대한 꿈과 비전이 있었는데 폼페이우스와 안토니우스는 능력과 실력을 출중했지만 꿈과 비전이 없으니 현실에 만족하고 쾌락과 명성과 방종에 빠져 망하게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도구로 쓰임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과 백성들에게 기대하시는 꿈과 비전에 대하여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받았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영광과 명예와 부와 육신의 쾌락으로 빠져들어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꿈과 비전을 잉태할까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게는 무력에 의한 세계 제패가 아닌 문명과 법에 의한 팍스 로마나(로마를 통한 세계평화질서 구축)의 꿈이 있었습니다. 모든 법의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꿈을 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이 뜻이요 소원이요 꿈이요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다윗은 하나님 나라의 꿈과 비전을 품었던 점에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겪은 열 다섯 광야의 시련과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상황이었기에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때마다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과 시험이 그를 말씀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기에 기드온처럼 쓰임받은 다음 육신의 방종과 타락으로 치닫지 않고 때마다 말씀으로 돌이키는 회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평강으로 왕되신 하나님을 대행하는 왕정을 펼쳤기에 메시아가 평강과 공평으로 다스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드온처럼 위기의 때 바짝 긴장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구원 역사에 쓰임받을 때 초기의 겸손과 간절함을 잊어버리고 금새 교만해지고 자기 영광과 쾌락과 안일에 도취해 사는 삶을 반복했던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때도 처음에는 하나님만을 높이겠다고 하고서도 하나님께서 저를 말씀의 종, 기도의 종, 캠퍼스 제자 양성가, 극작가, 화가, 음악가, 시인으로 쓰시면 내가 원래 대단했던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높여야 하는데 끝에 가서는 자신을 살짝 높이면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자기 자신을 우상처럼 높이고 자기 영광을 반추했습니다. 시를 처음 쓸 때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겠다고 간절하고 겸손한 심정으로 은혜를 구하였지만 첫시집을 냈을때는 하나님께 제가 유명해지게 하소서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교만하고 자기 영광 구하고 정욕과 일락과 안일을 사랑하는 저의 자아를 깨뜨리기 위하여 전처 장남의 소천 작은 아들 막내 딸이 신천지에 들어가는 사건을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안되었다는 것이 인정이 됩니다. 선교단체에서는 리더로 인정받던 제가 우리들교회 온 다음에 낮아짐과 무시와 침묵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허락하신 15광야의 때임을 인정하고 믿음과 겸손과 인내로 잘 통과하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세대의 단절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니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습니다. 기드온이 이미 죽이니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지기들의 신으로 삼았습니다. 왜 기드온이 죽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바알들을 따르고 언약의 하나님을 버리고 계약의 주인 언약의 바알이라는 바알 브릿 우상을 섬겼을까요? 기드온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형식으로 살았지만 속으로는 음란과 쾌락과 돈과 명예과 권력을 좇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자 백성들은 껍데기뿐인 여호와 신앙과 여호와 언약신앙을 버리고 기드온처럼 왕처럼 살고자 바알을 모시고 바알계약 즉 기복신앙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두루 다니며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회복시켰는데 기드온은 자기집과 첩의 집에 머물러 정욕과 음란과 명성과 부와 권세를 누리고 즐겼기에 백성들이 지도자의 영향을 받고 우상숭배와 기복신앙으로 물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자녀들을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여 가르치고 기도하고 가정 예배를 드려도 제 삶과 내면이 변하지 않으면 자녀들이 우상숭배와 기복신앙으로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을 인정합니다. 자녀는 내 말이 아닌 내 삶과 삶 속에 드러나는 가치관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가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세상 성공과 인정과 명예와 타이틀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벗어버리고 거룩한 나라 백성, 왕 같은 제사장같은 구속사적 가치관을 가진 자로 변화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갈망하는 영적인 통찰력과 분별력과 소원과 열망을 가지기를 기도합니다.
은혜의 망각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십니다.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원한은 철필로 바위에 새기고 은혜는 손가락으로 물에 새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까마귀 새끼도 은혜를 잊지 않고 다 자라서는 늙은 어미에게 은혜를 갚는다고 해서 반포지은이라는 고사성어도 생겼건만 인간이라는 존재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은혜를 잘 까먹는 죄인인가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보게 됩니다. 그들은 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고 급한 일을 보고 나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기드온이 비록 허물과 약점이 많더라도 그가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헌신한 은혜는 인정하고 그 집과 자손을 후대해야 하는데 그 은혜를 잊고 그 집을 후대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는 기억할수록 커지고 원망과 불평과 불만도 쌓일수록 커집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제 심령에 은혜의 물꼬가 터지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억울한 일 이해 못 할 일을 당하더라도 불신과 불만과 불평과 원망의 물꼬는 틀어막기를 원합니다. 감사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통로이고 원망불평불신은 마귀가 활동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적용하기) 제가 원망과 불평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은혜에 일일이 기억하고 감사하고 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