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5.토요일.사사기 2장 11-23절 사사를 세우신 하나님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시오노 나나미amprsquo의 로마인 이야기amprsquo를 보면 로마인들은 추천과 투표와 선거를 통해 능력있는 귀족들 중에서, 나중에는 능력있는 평민들 중에서도 집정관(최고 통치자 겸 총 사령관)을 세웁니다. 심지어 로마군의 핵심인 120명 소대의 소대장인 백인부장도 소대원들의 추천과 투표와 선거를 통해 세웁니다. 적군에 대한 포용정책으로 항복한 적국을 동맹국으로 만들어 시민권을 과감히 풀어주고 집정관, 법무관, 고급장교, 백부장으로 앉히니 라틴 족은 체구도 작은데 그보다 큰 게르만 족, 갈리아 족(켈트 족)을 정복하고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황제제로 변해 초기 유능한 황제시대를 지나 무능한 황제시대, 군인황제 시대를 거쳐 로마는 게르만 족에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사가 나옵니다. 사사는 로마의 집정관들처럼 잘난 사람, 능력있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찌질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찌질한 백성들을 찌질한 사사들이 인도하는데도 하나님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THINK해 보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습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430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을 구원하시고 40년간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알은 농경과 풍요의 신이었고 아스다롯은 쾌락과多産(다산)의 신이었습니다. 萬軍(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처럼 하나님을 전쟁의 신으로만 알고 목자 되신 하나님을 믿고 목축을 업으로 삼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 해 본 밀농사, 보리농사, 포도, 올리브, 무과화 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가나안의 선진농법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농사를 주관한다는 바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풍요를 좇으니 쾌락과 출산을 장려하는 아스다롯이 바늘에 실처럼 따라 들어와 바알과 쌍으로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심판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니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습니다. 풍요와 행복과 쾌락을 좇아 하나님을 버렸더니 노략질 당하고 대적이 생기고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괴로움이 심한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괴로움과 고난이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께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 삶에 임한 괴로운 사건과 고난과 환경과 사람은 나를 하나님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사사들을 세우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누구를 세우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초기 사사들은 포도송이 밟는 술 틀 속에 숨어 밀타작하던 기드온, 왼손잡이(오른손에 장애가 있다는 뜻) 에훗처럼 평범하고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연약한 사사들을 세워 강한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셨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고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와 믿음과 순종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만 해지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마치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다가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괴로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 구원하시고 축복하시면 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패턴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육이 무너지고 영이 세워져야 하는데 육신의 자아가 강하여 말씀이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내 마음과 생각에 자리 잡아 때마다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죄사함 받음으로 죄를 끊어내야 하는데 말씀이 없고, 예수님이 심령에 계시지 않으니 죄와 우상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방 민족을 남겨두신 하나님
백성들은 사사가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척했으나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진노하셨습니까?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내 손에넘겨주지 않는 문제, 내게 머물러 두사 속히 쫓아 내주지 않은 사건을 통해 끊임없이 저를 말씀 앞으로 초청하시고 말씀을 듣게 양육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사사는 부족해도 훌륭해도 사사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스라엘이 말씀을 듣는 구조 속에 있었으나 사사가 죽으면 말씀을 듣는 구조를 벗어나 일탈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인간 속에 통제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일탈욕구가 있는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완전한 인간을 불완전한 士師(사사)가 온전히 구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사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영원히 죽지 않는 士師(사사),구주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保惠師(보혜사)로 보내사 일평생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럼에도 성도의 삶에는 해결되지 않고 남겨 둔 문제, 광풍 같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사건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2절 이는ampmiddotampmiddotampmiddotampmiddotampmiddotampmiddot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우리를 시험하려 하심이라.
고난의 사건을 통해, 광풍같은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게 되고 말씀을 마음에 두고 말씀에 머물러 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제게 전처와 장남 소천 사건과 둘째 아들과 막내 딸 신천지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하는 확성기였습니다. ampldquo고난이 축복이다.amprdquo, ampldquo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amprdquo ampldquo하나님은 100% 옳으시고 현재의 삶은 내 삶의 결론이다.amprdquo 말씀이 나팔처럼 들려왔습니다. ampldquo저편으로 가라.amprdquo하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제 삶에 광풍을 시작하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광풍을 끝내실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제가 자녀 광풍 아내 광풍 진로와 사역 광풍 속에서도 잠잠히 ampldquo나니 안심하라!amprdquo고 잠잠히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구원의 음성을 듣고 바람이 그친 저의 약재료로 다른 이들에게 들이닥친 미친 바람을 멈추게 하는 데에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광풍 속에서 잠잠히 말씀을 듣고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