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28.토요일. 시편 44편 1-26절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의 ampldquo히브리 노예들의 합창amprdquo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나부코는 느부갓네살의 이탈리아식 약칭으로 바벨론 포로가 된 히브리 노예들의 구원을 향한 애원을 노래한 합창이지요. 고통 속에서 해방을 갈망하는 이 노래는 18세기 말 이탈리아 건국 운동 때 마치 애국가처럼 울려 퍼져 이탈리아 통일을 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노래의 원류가 바로 본문의 시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기원전 5세기 시편의 노래가 기원후 18세기에 회자되었던 것처럼 시편의 노래는 돌림노래가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회자됩니다. 이 고통과 슬픔의 노래가 오늘날도 회자되어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THINK해 보길 원합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세대를 잇는 구원의 기억
시인은 하나님께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다는 것이지요. 조상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조상들을 기뻐하신 까닭이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시인은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ampldquo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amprdquo하고 간구합니다. 하나니이 주인이시고 왕이시니 그 백성인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인되시고 왕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어떤 구원역사가 일어납니까?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주를 의지할 때 대적을 누르고 치러 일어나는 적을 주의 이름으로 밟을 수 있게 됩니다. 시인은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고 자신의 무능력과 무지와 한계를 고백합니다. 오직 누가 구원하십니까?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하고 전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자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고 고백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셀라)하고 서원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절망적인 죄와 질병과 문제에서 구원해 주신 구원의 원 경험이 있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구원의 은혜는 종일 자랑하고 영원히 감사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구원의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amprsquo 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신앙인생입니다.
호소하는 고난
시인은 갑자기 분위기를 돌변하여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려 우리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할 뿐 아니라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팔아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흩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 값으로 파셨기에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다고 진술합니다.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다고 진술합니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 돌아서게 하셨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주의 얼굴의 빛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우리는 그 얼굴빛을 찾지 않고 세상것에서 빛을 찾기 때문입니다. 주의 오른손으로 주의 팔로 구원하셨는데 내 팔 굵다 하며 자신의 팔뚝을 의지하고 팔뚝 굵은 사람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을 자랑하고 의지하였는데 어느새 자신의 이름을 자랑하고 높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종일 자랑하고 평생을 감사해도 부족한 구원의 은혜를 받고서도 감사와 구원의 감격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실함과 간구
내 삶의 결과로 이 모든 일을 임했을 때 원망과 불평과 불만과 짜증이 확 올라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이 함께하지 않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위축되지 아니하고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어떻게 악화됩니까?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소굴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다고 진술합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어떤 고백을 합니까?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라면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고 침묵하시는 상황에서도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거나 다른 이방 신을 향하여 구원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기에 자신들의 속 마음도 다 아시리라고 고백합니다. 마침내 상황은 얼마나 더 악화되었습니까?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마치 홀로코스트의 상황처럼 종일 죽임을 당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에서 중요한 것은 주를 위하여 당한 고난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이요 사건이요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유다 포로들에게 바벨론 포로 70년은 거의 3세대가 겪어야 할 정도로 기나긴 기간이었습니다. 약속은 있었지만 강산이 7번 변하도록 하나님의 침묵이 계속되자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자녀들과 손자들을 잊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과 낙심과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에 빠지기 되었습니다. 이때 그들의 심령에서 어떤 탄식과 간구가 터져 나왔습니까?
ampldquo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amprdquo
깨소서 일어나시고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는 거의 명령형에 가까운 강한 탄원입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마시고 더 이상 고난과 고통과 시험을 수수방관하지 마시고 깨어 일어나서 우리를 구원해달라는 강렬한 탄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몰아붙이는 탄원이 터져 나오게 된 것은 영혼이 진토에 파묻히고 몸이 땅에 붙을 정도가 될 정도로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어렵다고 하나님 도와달라고 자신이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누가 감히 하나님께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못할 것입니다. 시인도 자신이 100%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고 간구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은 영어로 unfailing love 히브리 원어로는 헤세드입니다.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셨기에 죄를 짓고 못났어도 부족하고 허물 많아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이 헤세드의 사랑이 시간 속에서 폭발한 사건이 2,000년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기에 내가 여전히 죄악되고 허물많고 변화가 안되어도 주님은 저를 포기치 않은 사랑으로 인도하시고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빗어가시는 것입니다.
저 자신의 변화되지 않은 모습에 제가 지치고 질릴 정도입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과 이 세상 자랑과 욕심이 회개가 잘 안 되는 저 때문에 자녀들이 신천지에 속하는 고난이 길어지는 것처럼 생각될 때 참담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제가 깨어나고 자녀들이 깨어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의 징표인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의 언약 때문인 것을 생각할 때 저도 시인처럼 주여 깨소서 일어나소서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고 강렬한 탄원을 드릴 수 있음을 믿고 감사합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70년의 포로생활이 구원의 노래를 낳았듯이 그 노래가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되어서 오늘날까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저와 저희 가정과 지헌이 하영이와 지체들에게도 포기치 않는 사랑의 노래 구원의 노래가 되어 앞으로도 영원히 퍼져나갈 것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적용하기) 주님의 인자하심, 예수님의 십자가 헤세드의 사랑을 믿고 끊임 없이 죄를 회개하고 자녀들의 구원과 변화를 위하여 소망 가운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