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상식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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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22
제목 : 이상한 상식
성경 : 마9:9-17
상식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상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이상한 상식이 있습니다.
병든자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은 상식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마태와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에 의문을 품습니다.
혼인날에 기뻐하는 해야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것은 상식입니다.
하지만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는 사람이 있음을 봅니다.
이상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상식이지만, 사람들에는 이상한 상식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지만, 예수님에게는 이상한 상식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상식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상식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상식이지만, 믿음이 연약한 사람에게는 이상한 상식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상식이 되기도 하고, 이상한 상식이 되기도 합니다.
관점에 따라서 내게 상식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한 상식이 됩니다.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몸쓰는 일을 꺼려하지만, 저도 몸만 쓰는 일을 꺼려했지만,
직장을 구하는 선택의 우선순위를 몸을 쓰는 일에 두었습니다.
이상하지만, 제게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머리 쓰는 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집에서만 해도 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가서까지 머리 쓰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짧은 생각(?) 때문입니다.
어제는 16년만에 군에서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아래 기수, 그 아래 기수의 친구들입니다. 쉽게 애기하면 제가 고참이란 말입니다.
한 친구는 직원을 20여명 거느리고 있는 회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는 외국계 회사에서 팀장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은 밤을 새워 일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친구, 그리고 백수인 저...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입장이었는데, 별로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한 편으로 가족 때문에 매어 살고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몸이 홀쭉해서 측은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혼도 못하고, 돈도 없고, 백수인 제가 그들을 안쓰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저를 볼 때에 안쓰러워 하기도 했겠지요..
그것이 믿음 안에 있는 저와 그들의 차이였습니다.
앉아 있는 자리의 차이이고, 관점의 차이입니다.
상식과 이상한 상식의 차이입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내 설교가 은혜가 되지 않는다구요? 힘들어서 어떻해요!
뜨끔 했습니다.
다른 교회의 목사님 설교는 들으세요.
아니요. 듣지 않습니다.
제 탓입니다.
아닙니다. 목사님 제 탓입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가 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제게는 분명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더라도 지금의 저에게는 은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설교이든지 은혜를 받는 것은 은혜를 받는 자의 몫이란 장로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설교를 잘 하든지, 못 하든지..재미가 있든지, 없든지.
그것은 받아 들이는 자의 몫입니다.
요즘, 상식인데, 전혀 새로운 것으로 들리는 일들이 있습니다.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누가 들어도 서운한 일입니다.
저의 글이 은혜가 되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그런 말을 들으면 서운한 것이 당연한데..
남의 말을 들어주고, 관심사를 대화의 도구로 삼는 것이 상식인데..
나의 말과 나의 관심사를 말해주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상식이 지켜지지 않기에 이상한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죄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예수님의 상식인데, 사람들은 죄인들과 선을 그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기뻐하는 것이 상식인데, 엉뚱한 금식을 거론합니다.
새 포도주는 그 확장성 때문에 새 가죽부대가 필요한데...
상식이 상식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식이 생활의 상식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들어가고 있나봅니다.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고,
남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여유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