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21.토. 잠언 28장 1-28절 사자 같이 담대한 의인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오늘날 인본주의 철학의 양대 산맥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험에서 귀납적으로 체득한 사실이 아니면 진리임을 부정하는 경험론은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는 불신을 낳았고, 합리론은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 외에 모든 것은 의심의 대상이라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신앙 자체도 의심하게 만들었죠. 이런 인본주의 문화가 낳은 것이 한 조각 빵을 훔쳤다가 19년 복역하고 탈옥수가 된 장발장을 탄생시킨 레미제레블입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두 남녀가 낯선 아파트에게 불륜 관계를 맺어 가다가 서로를 알아 가면서 파국을 맞이하는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를amprsquo 이라는 영화가 프랑스 기호 철학자들에게 인간을 둘러싼 모든 기호를 탈출한 진정한 인간과 인간관계의 원형을 그렸다고 평가를 받는 것도 선과 악을 기준을 무너뜨리고 악의 평범성을 옹호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변하지 않는 의인과 악인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THINK하기 원합니다.
한 사람의 중요성
잠언은 악인과 의인을 댓구적으로 비교합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쫓아오는 자가 있어도 사자가 같이 담대합니다.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권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됩니다. 나라가 죄가 있다는 것은 나라는 개인들의 합집합이기에 악인 집단의 죄를 말합니다. 악한집단이 되어 약소국을 침략하고 주권과 국토를 강탈하는 것도 나라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제나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것도 나라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를 용인하는 나라는 주권자가 많아져 각기 자기 주장과 욕심을 관철하기에 바빠 나라가 쇠망합니다. 그러나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됩니다. 노예제가 성경말씀에 위배된다는 명철과 지식 있는 링컨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장구하게 되었지요.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같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관찰사보다 수령(사또)이, 수령보다 아전(이방 등)들이 가난한 백성을 더 착취했지요.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합니다.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습니다. 흔히 정의를 소수자 약자를 보호하고 기회와 복지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성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인류가 보전되기 위해 지켜야 할 보편가치와 생명윤리라는 것을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깨닫습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낫습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다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온갖 어긋난 편법을 쓰는 자입니다. 가난해도 비난받을 것 없이 정직하게 사는 것이 부요해도 비난받는 삶보다 낫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음식을 탐하고 食道樂(식도락)을 사랑하는 자가 부모를 욕되게 합니다.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합니다. 말씀을 따라 기도하지 않으면 자기 욕심과 욕망과 감정을 따라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습니다. 성실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려고 하기에 사람들앞에서도 비난받을 거리가 없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받는 것은 기복적인 축복이 아니라 팔복의 축복입니다.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압니다. 부자는 자기가 똑똑하고 지혜가 있어 부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나 진짜 명철한 자는 가난해도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한계를 알고 겸손한 자입니다.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습니다. 역사를 봐도 세종이나 이순신같은 의인이 득의하면 나라가 큰 영화가 있었으나 연산군이나 원균같은 악인이 일어나면 인재들은 숨고 기회주의자들만 나대는 것을 봅니다.
항상 경외하는 자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자복하고 버리므로 불쌍히 여김을 받고 어떤 사람이 자기 죄를 숨깁니까?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는 말씀처럼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자기 죄를 말씀 앞에서 보고 자복하고 버리는 자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마음이 완악한 자가 자기 죄를 숨깁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한다는 의미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두려워하는 것이 경외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모든 것을 조심하고 마음을 살펴 기쁘게 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배려하지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게 되지요. 그러기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숨길 수 없게 됩니다. 자복하고 버리므로 불쌍히 여김받고 복을 받게 됩니다.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자기만을 사랑합니다. 그 결과 형통하지 못하고 재앙에 빠지게 됩니다.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처럼 잔인합니다.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합니다. 진시황제는 포학을 크게 행하고 오래 살고자 하는 탐욕으로 불로초를 구하였지만 단명했고 영조대왕은 쌀밥에 고기를 먹는 탐욕을 미워하고 거친 음식(조밥,잡곡밥)조차 절제하고 소식함으로 장수하였습니다.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질 것입니다.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앞에 흠없는 삶을 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죄를 보고 자복하고 버리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아닌 편법을 따르는 자는 곧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말씀을 경외하여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회개의 삶을 살므로 구원을 얻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지만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게 됩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합니다. 충성된 자는 하나님앞에서 신실하고 사람앞에서도 신실하고 자기 일에 신실하고 꾸준한 자입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과정에 충실한 삶을 사는 자입니다. 그러나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과정은 무시하고 돈을 벌겠다는 결과만 우선시합니다. 그러니 상도덕과 법질서를 어기고 편법을 쓰므로 형벌을 면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사람을 낯을 보아 준다는 것을 편향을 가지고 사람을 대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집안 같은 고향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잘 봐 주는 것입니다.
제가 지역감정과 학연에 치우치는 편향이 심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이것이 나를 형성하고 나의 존재의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쉬 끊어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제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지역감정과 학연의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옵소서.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장발장 같은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네요. 그가 조카들을 먹여살리고자 하였더라면 처음부터 미리엘 주교같은 성직자를 찾아가 자비를 구하든지 빵가게 주인에게 품을 팔아 자비를 구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해결되었을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삐뚫어진 방법(빵 도둑질)을 했기에 옳지 못한 것이고 범법자로 처벌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빵 도둑질이라고 성경은 온정을 베풀지 않습니다. 작은 죄도 죄기에 자백하고 버리고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빵 있으면 먹고 빵 없으면 금식하고 금식하고도 응답이 없어 죽으면 천국가 하나님 만나보라고 하십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합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인색한 자입니다. 베푸는데 인색하고 주는 데 인색하고 바치는 데 인색한 자입니다. 그런 자에는 재물의 인색 상태, 빈궁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습니다. 목장에서 공감해주는 지체보다 나에게 쓴소리 해주는 지체가 나중에는 더욱 사랑을 받습니다. 쓴소리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기 죄를 깨닫게 해주어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입니다.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됩니다. 제 마음에 욕심이 많아 끊임없이 내 속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세움 받고 쓰임 받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므로 풍족함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입니다.
수요예배에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 서대경 목사님이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원리라고 하신 말씀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감정이 제일 솔직하다고 감정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그러다가 감정에 이끌려 서로 이름도 모르는 낯선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파멸에 이르는 미련한 짐승처럼 되고맙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말씀에서 딱딱한 계명과 율법과 규례에서도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와 구속의 원리를 깨닫고 지혜롭게 자기 죄와 연약함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나가 긍휼을 구하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클 것입니다. 제가 유튜브를 보다가 빈곤 포르노 광고를 보면 못 본체 하고 넘어가는데 마음에 찜찜합니다. 그런데 구원이 필요한 이웃을 볼 때 어떤 찜찜함도 부담감도 없이 못 본체 하는 지나치는 것이 저주가 큰 무지와 이기심과 무관심의 죄임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집니다. 므낫세같은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악인이 멸망하면 히스기야과 그를 따르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백성들 같은 의인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찾고 그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말씀대로 사는 의인의 삶을 살므로 제 곁에 살아나는 의인들이 많아 지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말씀을 듣지 않고 내 생각과 감정을 따르는 편법을 버리고 말씀대로 믿고 누리고 삶으로 보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