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아래 있던 자였습니다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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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6.17
갈 3:10~18
간절한 공동체의 기도로,
아기 상태가 약간 호전 됐습니다.
아직 아기 상태를 관찰하는 단계지만 산소호흡기를 뗐고,
분유도 스스로 먹을 힘이 없었는데,
다른 아기들이 먹는 양의 5분의 1정도는 먹습니다.
그리고 혈소판 문제로,
뇌를 촬영했는데 이상이 없어 복부를 찍어 본다고 합니다.
저는 아들이나 며느리 만큼 힘들지 않겠지만,
이런 일을 겪으며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공동체의 기도였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기도 부탁을 받았었는데,
저한테 사건이 오니까,
자기 일 처럼 간절히 기도해 줄 공동체가 있는게 얼마나 든든한지 새삼 알았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코에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링거를 맞으며,
입에는 공갈 젖꼭지를 물고,
이러저런 줄을 몸에 달고 힘겨워하는 어린 생명을 지켜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되는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들과 며느리가 안쓰러워 엉엉 울었습니다.
믿음 없는 엄마 만나 결혼 전부터 힘들었던 애들.
그래서인지 임신도 어려웠던 애들.
아기 낳기 전에도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했던 애들.
지금은 직장 문제로 힘든 애들.
이렇게 힘든 인생 길을 걸어 갈 아이들을,
왜 나까지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우리 아들 잘난 것 하나 없는데,
며느리가 그런 아들과 살아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왜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리석은 세월을 보내며 반대했을까..
정말 회한의 눈물만 흐릅니다.
오늘 바울은,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을 저주 아래 있다고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을 속량해 보려고,
내 자식들을 속량해 보려고,
얼마나 오랜 시간들을 저주의 나무에 달려 있었는지요...
나이 차이라는 외모에만 집착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일을,
전혀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구원과 거룩을 이루어 가실 언약의 말씀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채,
내 뜻대로 아들과 며느리 사이를 폐하려고만 했습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그렇게 내 힘으로 해 보고자 하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봅니다.
내 뜻을 이루려고 온갖 일을 행하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기의 아픔도,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이루어 가시는 길임을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