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수종드는 비결^^*
작성자명 [송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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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19
(마 8 : 14~22)
대단한 것이 아닌 사소한 일로 분노는 늘고,
호기심은 줄어드는 것이 나이 듦이라고 (여성학자,박혜란)하든데
저는 점점 분노는 좀 줄고, 호기심은 점점 왕성해지는가?
이것도 큐티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창조적인 안식(!)인가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저에게 마태복음의 시작은 말씀이 지루해지면서
체력보충한다는 핑계로, 수준 낮은 믿음으로, 정죄감으로 게으름만 더해졌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해보니 주님께선 2006년도에 왜 우리들교회에, 특별히 왜 나에게
마태복음으로 도배질을 하실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 마태의 기록 의도를 알고자 서점을 기웃거리며
생각보다 자료를 구하지 못할 적엔 상상의 나래를 펴며 복음을 듣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경배 대상이 어디 있느뇨? 묻자 소동하며 왕에게 기록된바~~ 어쩌고저쩌고 주욱 읊어대었으나 예수는 정작 모르는 바리새인같이 정답만 말하는 저는
유대민족도 아닌 이방 출신 왕의 통치아래 세리의 일을 감당하는
식민지 청년의 아픔을 헤아려봅니다.
오늘도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는 예수님은 700년 전 이사야선지자의
말씀을 이루심이라고 유대인을 향하여 증거합니다.
동족에게서 돈을 걷어낼 적 마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동료들의 비리와 동족들의 게으름과 교만과 자신의 무력함을 제열심으로 달래며 세관에 앉아 있었을까?
제게는 무슨 골수당 예수쟁이나 그렇겠지! 했던
주여! 주여! 할렐루야! 가 시도때도 없이 입술에 붙어 있습니다.
사그라지지 않는 호기심과 예민한 정서와 가지가지 고통들이 약재료가 되어
저로 비교적 말씀을 알아듣습니다.
공격적이보다는 방어적인 기질로 누군가에겐 무고하게 시비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생각한 성품이 눈엔 보이지 않는 공적인 3미터를 좁히고 싶지않은 이기심의 발로구나 깨닫습니다.
문자메세지를 띄우면서도 아니 내가 무슨 선거운동원 같다! 느낌이 들며
혹시 누군가가 불편하면 어떡하지? 염려도 있습니다.
큐티엠 나눔은 <내 영혼의 나체 퍼모먼스>가 따로 없다
그 열심 누가 말려? 그말이 맞다! 정죄감에 자리를 내주니 끝도 없이 밀려듭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내 맘껏> 하고 싶은 적용을 못하니, 무심코 던졌을 말에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이를 간다더니 내가 지옥불에 땔감이다 맞다맞어 정죄합니다.
정죄감의 열병에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저의 손을 만지시고 열병이
떠나게 하십니다. 이 연약함을 아시고 친히 담당하셨다고 하십니다. 주여!
주님이 가시는 그 길은 머리 둘 곳도 없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없는 좁은 길
죽은 자들에게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산 자의 좁은 문에 들어서는 골고다 언덕
세포하나하나에 새겨진 생존의 법칙, 본능에 붙들려
허우적대는 괴롭고 치사한 저에게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십니다.
땅에 떨어진 부스러기 은혜라도 구하고 싶어 목장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앞에 서는 것은
나의 연약함이 치유되시는 예수님께 수종드는 비결임을 알게하시니 기쁨으로 일어서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