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치시는 권능은 죄사하시는 권세
작성자명 [최계원]
댓글 0
날짜 2006.01.19
마 8 : 14 ~ 22
마 8 :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불치병이라고 생각했던 문둥병과 중풍병을
고쳐주시고 오늘은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서 신체접촉이 금지된 열병을 앓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보시고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접촉이 금지된 환자를 만지심으로
더럽혀진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만지심으로 환자가 깨끗해진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신후에 행함으로 예수께서 자신이 신적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신것 입니다.
제가 초신자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 예수 이름의 권세 >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신유의 현장을 3 번씩이나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처남의 목암과 양아버지의 중풍병과 딸의 열병이었습니다.
처남의 목암은 미국의 부흥사였던 굳델목사님께서 < 에수이름 >으로 안수해 주셨을때
목암이 떠나가는것을 직접 목도하였고 처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도 되었습니다.
저의 양아버지께서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대소변을 못가리시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제가 내려와서 기도해 주면 낫겠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광주로 내려가서 < 예수이름 >으로
손을 얹고 기도해 드렸는데, 며칠후 일어나셨고 걸어다니시는 기적을 보았었습니다.
또한 처남이 낫고난 직후 제가 서울에서 처남 일행을 데리고 광주로 내려 가려는데 아내가
전화로 울면서 딸 은정이가 열이 심하고 눈이 뒤집히고 경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하기를 처남의 목암도 낫게하신
하나님께서 이시간에 저의 간구를 들으시고 제가 광주집에 도착하면 딸이 반갑게 저의 품에
앉기도록 해달라고 < 예수님의 이름 >으로 기도했고 딸은 언제 그런일이 있었느냐는듯이
제 품에 안기웠습니다. 이 모두가 병원도 안가고 나았던 예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저의 신앙생활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믿음이 없던 수준 낮은 저에게 주님을 따르라는 강력한 처방을 해주신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종의 고난 받는 이유가 주로 우리의 < 죄와 허물 > 때문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오늘 말씀에는 < 병 > 때문인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병 고시치는 권능은 바로 죄를 사하시는 권세에서 나온것 입니다.
병고치시는 사역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역의 핵심중의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병고침은 같은 맥락이라고 볼수 있고 예수님이후의 제자들과 현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예수이름의 권세로 각색병들이 고침을 받았고 죄사함에 이르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능을 행하셔서 귀신을 좇아주시고
병든자들을 < 다 > 고쳐주셨습니다.
이 권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어떤 질병이든지 못고치실것이 없으시며 어떤 귀신이든지
예수께로만 나오면 다 고침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 나오는 목적이 영혼구원이 되어야하며 구속사를 위하여 질병을 고쳐줄수도
있고 아니면 질병이 있는채 구속사를 이루어 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질병이 나아도 언젠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권한은 주님의 주권하에 있습니다.
처남도 양아버지께서도 목암도 중풍병도 나았지만 그후 폐병과 노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질병도 구속사의 도구로 쓰심을 배웠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 서기관과 제자중 하나가 나아왔는데 그들에게 예수님은 제자의
길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과 병고침과 귀신을 좇아내는 권능에 압도된자들이 제자로 따르려하자
제자의 길은 고난과 헌신의 뼈저린 결단을 요구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는 심지어 부친의 장사와 같은 중요한일 마저 돌볼 겨를이 없을
수도 있음을 강조 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때로는 가족관계를 초월해야하고 자기의 가진 소유를 포기
해야할 경우도 있으며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좇아야 예수께 합당한
제자가 됩니다.
오실 메시아를 정치적 출세의 기회로 생각하기 쉬웠던 한 서기관을 향하여 메시아의 본질이
이땅에서는 머리를 놓을만한 자신의 휴식처조차 얻지 못하는 희생과 고난의 길임을 말씀
하심으로 그의 요청을 거부 하셨습니다.
그런 환경을 통해서 자신이 무엇에 집중하고 계시며 그런 관심이 제자와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의 관심이 되기를 원하신것입니다.
그리고 이땅의 보금자리 보다 하늘나라의 안식처를 더욱 사모할것을 암시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현실에 만족함으로써 결단의 순간에 주저함이 생기지 않기를 원하셨기에
그와같이 말씀 하신것입니다.
머리둘곳도 없는 나를 좇으라고 ..........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길은 오직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현실의 안락함에의 선택이 아니라 내세적 안락함을 위하여 역경과 고난을 선택해야합니다
강한것 보다는 약한것이... 높은것 보다는 낮은것이... 많은것 보다는 적은것이....
예수님을 따라 가기가 수월할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도 온갖 박해와 고독과 불편함을 오직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당신의 뜨거운 사랑으로써만이 감당하실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공과 인기와 안락 지상주의에 깊이 물들어버린 나에게도
이같은 사랑과 열정과 열병이 전염 되기를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