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24.토요일. 예레미야 37장 11-21절 왕에게 청한 예레미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배경은 우리나라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합니다. 청나라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오자 성 안에서는 예조판서 김상헌을 중심으로 한 대다수 斥和波(척화파)와 이조판서 최명길 같은 소수 主和波(주화파)가 극렬하게 대립하였고 인조는 두 진영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어느 쪽이 정답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성이 함락당할 지경이 되어서야 얼어 붙은 삼전도(현재 송파구 삼전동 석촌동 일대)에 나가서 청 태종에게 3번 절하고 6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서야 전쟁이 끝났습니다. 항복하는 것이 옳은가요? 항복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옥에 갇힌 예레미야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 포위망을 풀고 떠났습니다. 예레미야가 포위망이 풀리자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 아나돗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아마 숙부와 계약해서 사 두었던 밭을 받기 위해서 가지 않았나 추정이 됩니다. 그런데 베냐민 쪽으로 나가는 베냐민 문에 이르렀을 때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ampldquo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amprdquo며 민족의 배반자로 내몰았습니다. 예레미야가 ampldquo거짓이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amprdquo하여도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고관들에게로 끌고 가니 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임시 옥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도 남한성산에는 명나라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청나라 오랑캐와 끝까지 싸워야 하고 절대 항복해서는 안된다는 다수의 척화파가 소수의 주화파를 매국노로 매도하고 탄핵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척화파들이 명나라가 기울고 청나라가 일어서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사대주의에 빠져 멸망의 길을 자초하였던 것처럼 본문의 고관들도 애굽이 썩은 갈대인 줄 모르고 애굽이 구원병을 일으키자 갈대아가 일시적으로 포위망을 풀고 물러가니 자기들이 옳은 것처럼 자기 확신에 빠져 항복의 주장하였던 예레미야를 반역자요 매국노로 몰아붙이고 임시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두 종류의 질문
예레미야는 뚜껑 씌운 물 없는 물웅덩이에 들어가 죽을 날만 기다린지 여러날이 지났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무엇을 물었습니까? ampldquo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amprdquo 이에 예레미야는 주저없이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 ampldquo있나이다.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amprdquo 왕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자신의 안위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옥에서 풀어줄 수 있는 왕에게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리라며 왕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대답을 했습니다. 이는 그것이 여호와께 받은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실망하고 기분이 상한 표정을 역력히 보이자 시드기야 왕의 양심에 다시 어떤 질문을 던져 호소합니까? ampldquo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amprdquo하고 질문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했던 거짓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그들의 예언에 반하여 바벨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친 것이 현실이 되었고, 그것이 시종 일관하게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의 성취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도 항상 관심은 나의 안위와 행복에 쏠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척화파가 민족의 위기와 백성의 안위보다는 자신들의 명분과 체면과 자존심에 목을 멨던것처럼 말이지요. 반면에 예레미야의 관심은 자신이 왕에게 밉보여 옥에서 풀려날 수 없게 될 수 있음에도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관심이 자신의 행복이나 안전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있고 말씀의 이루어지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심판의 모델이 되기 보다 축복의 모델이 되기 원합니다. 요셉처럼 형통과 번영의 모델이 되길 원하지 유다처럼 고난과 수치와 굴욕의 모델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포로되고 고난과 굴욕과 수치를 당하더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내가 고난의 사건 속에서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 받고 거룩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이루어지는 구속사입니다.
예레미야의 탄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어떤 탄원을 하였습니까? ampldquo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amprdquo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은 것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자들에게 말씀과 상관없이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시드기야 왕에게 구조를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을 그에게 주게 하니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감옥이 아닌 감옥 뜰에 예레미야를 둔 것은 그를 잡아 죽이고자 하는 고관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식량이 떨어져가는 성 안, 떡 집 거리에서 떡을 매일 떡 한 개를 공급하여 먹게 한 것은 그를 살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물다가 성이 함락된 후 바벨론 군대에 의해 풀려납니다. 유대 왕과 유대 백성이 망하고 심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빨리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라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를 항복파와 항복 반대파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자신의 왕위를 보전하기에 끝까지 눈치보던 시드기야 왕이 살려주고 끝까지 안전을 지켜주고 먹을 것을 공궤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믿고 살고 순종하고 누리는 자를 반드시 살게 해 주시고 책임지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믿고 끊임없이 상황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자는 시드기야 왕처럼 눈이 뽑히고 원수의 손에 넘겨져 쫄딱 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녀들이 신실하게 자라고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신결혼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부럽고, 어떤 장로님처럼 믿음의 손주를 본다는 것이 저한테는 꿈과 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희 자녀들을 신천지에 포로되게 하신 것이 제게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사건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신천지에 빠졌던장인, 장모를 풀어주신 것이 벌써 4년째, 3년째가 되어가는데 지헌이, 하영이에게는 그날이언제가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통한 저의 매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말씀대로 믿고 누리고 사는 것이 저의 구속사요, 자녀들의 구속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적용하기) 바벨론 왕의 포로 상태같은 이단에 매인 자녀들의 모습으로 인해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이루어지기 까지 말씀 앞에서 자기 죄를 보고 회개하고 날마다 주신 말씀의 분량을 날마다 적용하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