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종이 되기위하여 -김세규
작성자명 [김지일 김세규]
댓글 0
날짜 2006.01.17
사랑하는 내 아버지, 내 어머니에게,
김지일 권사님과 정묘낭 권사님이 내 아버지이고, 내 어머니라는 사실이 더할 수 없이 감사한 금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 편안하셨는지요?
어제는 오랜 만에 아버지 음성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먼저 전화 드리지 못 함이 송구스러웠습니다.
오늘은 이런 저런 얘기로 편지가 길어 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새삼 재미없는 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들어 주실 분은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일 것 입니다.
아들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말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심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형언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또 믿을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갈수록 정말 놀랍고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또 하나님은 주인이고, 우리는 종 이기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단순한 ‘절대 복종’의 관계가 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불만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쓰러집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중심에 우리를 놓으신 겁니다.
그리고 아담을 빚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 된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쁜 금붕어를 사왔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와 저는 이 예쁜 금붕어를 위해 먼저 금붕어에게 가장 적합한 어항을 준비할 것 입니다. 그 어항에 고운 모래를 깔고, 금붕어가 살던 환경과 비슷하게 해 주기 위해 큰 돌도 여러 곳에 놓고 또 인공 풀도 놓을 것 입니다.
산소를 원활히 공급해 주기 위해 가장 좋은 산소 공급 장치로 설치 할 것 입니다.
물의 온도를 잘 맞춘 후 마지막으로 금붕어를 어항에 풀 것 입니다.
그 때, 아버지와 제 입에서는 동시에 나올 수 있는 말이 있겠지요.
‘행복하게 잘 살아야 돼! 그리고,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니 맘껏 누리렴. 친구 금붕어와 사이 좋게 지내고! 먹을 것은 걱정하지마!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네가 감사한다고 나에게 따로 고마움을 표시 할 것은 없어. 그냥 잘 살면 돼!’
하나님도 그와 같이 우리를 빚으시고, 축복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한 마디만 딱 더 붙이셨을 겁니다.
‘너는 나를 대신하여 이것의 주인이 될 것이고 맘껏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다만 한 가지, 이 모든 것이 만들어 준 이가 바로 네 하나님이라는 사실만 잊지 마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럴 것 같습니다.
금붕어가 만약 우리처럼 생각이 있다면, 그 금붕어가 아버지와 저의 수고로 살게 된 것만 기억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이런 제안을 하십니다.
망각의 동물 우리 인간의 속성을 가장 잘 아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동산에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마! 네가 이것을 먹지 않는다면, 네가 내 말을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을게. 즉, 저 나무의 열매가 계속 달려 있다면, 너는 나와 너와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나에게 감사해 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을게!”
지금까지의 내용은, ‘어, 성경이 읽혀지네’라는 책에서 저자가 ‘선악과’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든 예를 제가 조금 더 각색한 것입니다.
저는 저자의 놀라운 통찰로 창조의 역사 이면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잘 설명해 주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가슴이 터질 것이 기뻤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주인과 종 사이에 뚱딴지 같이 끼여 있는 ‘축복’과 ‘자유’!
논리적으로 모순인 것 같은 이 개념이 가슴에서 막연하게 이해되며, 그 가슴은 기쁨에 터질 듯 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 마다 저는 어떤 기도가 가장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기도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는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했고,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 들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기도는 온통 ‘구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내 이기적인 욕구를 위장한 ‘구함’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또 오로지 순종하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전자에 비해 마음이 불편한 강도는 덜 하지만, 그럼에도 석연치가 않습니다.
그런 수동적인 기도를 기뻐하실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 고귀한 축복과 세상에 유일한 이 자유의 가슴으로 맛 본 후, 저는 나의 기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귀한 자유를, 하나님과 적극적인 교제를 꾸려 나갈 수 있는 귀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젠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함을 고백합니다.
그 축복과 그 자유에 대해 말입니다.
그것은 그냥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결심에 의해 그냥 주어진 것 입니다.
그 감사함의 고백으로 제 기도를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즉, 자유를 주셨지만, 근본적으로 그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십자가를 선악과 삼아 매일매일 기억하고, 순종의 결심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순종할 것 입니다’라고 고백하고, 다시 한 번 그렇게 죽여도 죽지 않는 제 자신을 다시 한 번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기도가, 모든 구함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함임을 고백하는 영적인 각서를 써야 합니다. 이는 매 순간 해야 할 일 입니다.
그리고 담대히 구할 것 입니다.
적극적으로 구할 것 입니다.
왜 안되냐고 따지기도 할 것 입니다.
비전을 구할 것 입니다.
떼를 쓸 것 입니다.
그 제사장에게 끝까지 따졌던 과부처럼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 항변도 할 것 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자유와 하나님이 벌려 주신 팔 안에서, 품 안에서 저는 뒹굴 것 입니다. 뻔뻔스러워도 됩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담대히 구할 것 입니다.
제 판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겠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일이 없어야 겠습니다.
구하는 만큼 저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구비하고 겸비해야 합니다.
이건 피조물인 저에게 허락하신 고귀한 의무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 파트너로서 ‘프로페셔널’ 해져야 합니다.
하나님 기준에 합당한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기준에 합당한 ‘멋진 종’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
주인’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종’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 삶의 묘미가 너무도 감사합니다. 두 분은, 그렇게 저를 잘 양육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세상과 종교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건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저는 영화를 전공하고 있지만, 영화로 하나님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즉 영화는 저에게 허락해 주신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걸어가야 하는 길과 다릅니다.
판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걸어가야 하는 길과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제 삶은 정말 하나님의 개입 하심의 정도에 따라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제가 제 꿈을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분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즉 저는 정말 그 분과 꽉 밀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새벽 예배 때마다 기도 드릴 때 한 뼘 만큼의 길이라도 보여달라고 기도 드립니다.
정말 그 볼 수 있는 한 뼘을 의지 삼아 발걸음을 옮기고 싶은 게 제 솔직히 심정입니다.
안개 속을 걷고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더 전투적으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 분과의 교제는 저에게 영적 성숙이라는 우아한 표어가 아니라 살기 위한 방편입니다.
우둔하기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늘 지나고 나서야, 돌이켜 볼 때 번번히 깨닫습니다.
늘 그렇듯이 저에게 선택할 수 있는 귀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제 자유의지를 가지고 길을 만들어 나갈 것 입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길이라면 열어 주실 것이고, 길이 아니라면 열어 주지 않을 실 겁니다.
저에게 남는 것은, 감사와 순종 밖에 없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기도를 통해 어머니와 같이 구체적인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고 무엇보다 평안함과 담대함을 얻습니다.
아마 지금 주님이 저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한 과정 한 과정의 세밀한 직접적인 지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원칙적으로 맞는 방향으로 들어 왔으니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다만 네 뜻을 다하여 담대히 나가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태어나 처음 자발적으로 드리는 새벽 예배는 저에는 깊은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발길을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 드립니다.
힘이 들어야 하는데 힘이 들지 않으니 이 느낌과 이 경험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지난 번에 승현이와 무슨 문제로 얘기를 하다가 벽에 부딪쳤습니다.
승현이가 바로 하는 얘기가, ‘오빠, 아버지와 상의해 보는 것이 어때?’ 였습니다.
저는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저를 본 승현이는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버지,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 어머니가 주시는 지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자주 보았고, 당연히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공부하며 여러 아이템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버지에게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
말씀처럼 후에 사업을 한다면 저는 미국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지금 미국은 로마입니다.
왜, 예수님이 로마시대에 나타나셨겠습니까?
그 시대를 이용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때라고 판단하신 겁니다.
2000년 전, 잘 닦여진 그 길을 통해 복음은 그렇게 퍼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 이름만으로 저에게 꿈을 심어 줍니다.
간단하게 아이템 하나를 말씀 드리면 이렇습니다.
아이들은 만화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로보트가 나오는 만화 영화를 좋아합니다.
로보트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이고 꿈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이런 로보트 만화 영화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시대는, 아니 고대 역사는 ‘어떤 신이 더 센가?’라는 것이 전쟁의 핵심이었습니다.
먼 미래, 다윗이 조종하는 작지만 다부진 로보트는, 요란하고 덩치 큰, 겉으로 보기에 더 세 보이는 골리앗이 조종하는 로보트를 이길 것 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로보트들의 연료는 바로 믿음입니다.
조종사가 얼마나 자기의 신에게 충실한가가, 이 전쟁에서 얼마나 온전히 신에게 의지하는가에 따라 조종석 계기판에 에너지로 표시됩니다.
솔직하게, 저는 다윗의 흥망성쇠를 보여 줄 것 입니다.
이 만화 영화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노골적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 입니다.
후에 진정 그들이 성경을 읽게 될 때, 성경 속에서 다윗과 골리앗을 만날 때, 이 만화 영화가 생각날 것이고, 그들은 훨씬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 들일 것 입니다.
그리고 창고에서 자신들이 어릴 때 조립했던 그 다윗 로보트와 골리앗 로보트를 꺼낼 것 입니다.
제 희망은, 그런 제 로보트 캐릭터들이 LOGO(레고)에서 시리즈로 나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아이템이 있습니다.
계속 숙성 중에 있습니다.
후에 아버지, 어머니에게 말씀 드리고 두 분에 귀한 말씀 한 번 꼭 듣고자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만약 하나님이 저에게 네가 어떤 축복을 원하냐고 물으신다면, 전 사람의 축복을 달라고 할 것 입니다.
부족함 그 자체인 저는, 정말 좋은 친구들을, 파트너들을 만나야만 합니다.
제 머리 속의 아이템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기도 부탁 드리겠습니다.
우려했던 것처럼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까지 그렇게 해 주셨던 것처럼, 늘 믿고 기도해 주십시오.
항상 왜 이 곳에 있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잊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에게 착 달라 붙어 끈질기게 구하겠습니다.
길을 보여 주지 않으신다면, 한국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협박이라도 할 생각입니다.
꿈을 생각할 때, 셀레임과 동시에 막막함이 엄습해 옵니다.
100% 확실한 길은 세상에 없습니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가끔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길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부족한 아들이 걷은, 그 짙은 안개로 자욱한 이 길을 함께 해 주십시오.
한 발자국만이라도 인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축복임을 알고 그렇게 걸어갈 수 있게 기도해 주십시오.
내 신실한 하나님은 저에게서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실 겁니다.
참으로 경우라고 눈꼽 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피조물인 저는, 이렇게 더 뻔뻔해질 궁리만하며 살고 있습니다.
두 분에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2006년 1월 13일에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