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문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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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16
제목 : 제 3의 문
성경 : 마7:13-20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넓은 세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이 보이지 않습니다.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문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좁은 문은 길이 협착하여 찾은 이가 적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넓은 문을 선호하고
믿는 사람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넓은 문은 가고 싶어도 가지 않고
좁은 문은 가기 싫어도 가야하는데..
그 문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서기관과 같다고 하고, 바리새인과 같다고 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서기관관 바리새인들은 지금의 말로 하면
QT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고
교회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하는 사람들이고
봉사와 구제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같다는 말은 칭찬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같다는 것도 칭찬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앙코없는 찐방이 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신앙의 역차별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넓은 문으로 가는 것이 속 편한 일입니다.
그러면 애써 좁은 문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의 딜레마는 그 어떤 고난 보다도 큰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믿음없는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부정해 보고 있습니다.
애써 맞다 맞다고 하지 않습니다.
확인되지 않는 긍정의 가면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가벗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서, 그 모습에서 천국가는 길을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넓은 문도 아니고 좁은 문도 아닌 제 3의 문 속에 제가 있습니다.
솔직히 넓은 문은 제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신앙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좁은 문을 가고 싶지만, 마음이 받쳐주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스스로 묵상하는 것만큼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매일 말씀을 보며 나눔을 올리는 것입니다.
어제
내 마음의 무늬 라는 산문집을 읽었습니다.
소설가 오정희씨의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읽으면서
글이란 것이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것 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좋다. 참 좋다 는 느낌을 받으면서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신앙이라는 것도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다가오는 것 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책에서 오는 감동이고, 말씀에서 오는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머리로 이해했던 책들의 건조함을 알았고,
가끔씩 마음을 젖시는 부드러운 책들의 따스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QT가 머리로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음을 인정합니다.
마음으로 차 오르기보다, 머리로 해석되었음을 인정합니다.
뜨거운 태양이 열을 내는 것을 분석하는 것보다,
태양이 주는 따스함을 느끼는 것이 태양에 대해 더 많이 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따스함을 느끼는 것이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넓은 문! 좁은 문!
그 문들에 대하여 이런 저런 해석과 적용보다는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 지금 머물고 있는 문입니다. 그것이 넓은 문이든 좁은 문이든...
넓은 문과 좁은 문 사이에 있는 제 3의 문!
마치 비밀통로를 찾아야 하는 것과 같은 느낌!
판타지 속에 나오는 미로찾기와 같은 게임!
내가 열어야 하는 것인지, 예수님께서 열어 주셔야 하는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좁은 문을 향한 목표를 놓치 않고 가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좁은 문을 들어가면 하나님의 넓은 세계를 갈 수 있는 비밀통로를 가르쳐 사람은 없나요?
제3의 문에서 고난 당하는 저와 같은 사람을 구원해 줄 사람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