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쓰면 좁은문 / 힘빼면 넓은문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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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16
마 7 : 13 ~ 20
성경 말씀은 사람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합니다.
제가 초신자 시절때는 부흥사들이 기세를 올리던 교회의 성장기 였습니다.
그때 말씀도 모르면서 붙잡은 말씀이 주일날 본문중에 있었던 마 7 : 7 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 . 그래서 딥다 기도하고 행동 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과는 제가 망하는 사건만 왔었습니다. 그리고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저를 떠났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좁은문 하나는 남겨놓고 몰아 붙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51922;기듯이 어쩔수 없이 그곳으로 달려 갔었습니다.
인생이 해석이 안되던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것도 있었고,
말씀이 깨달아 지면서 사건도 깨달아 진것도 있었습니다.
제가 기업선교를 비젼으로 품고 기도 하면서 돈만 벌면 기업선교를 할수 있을것으로
생각하고 사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시작 했었습니다. 망할짓만 골라가면서 했습니다.
제가 1975년도에 가나안 농군학교를 들어가서 일주일을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김용기
장로님께서 묻기를 사람이 잘살려면 어떻게하면 잘살수 있겠는가 ? 라는 질문에...
돈이 있어야, 권력이, 학식이. 건강, 기술 등등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는데..김장로님
께서는 한마디로 잘살짓만 골라서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맞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제가 품었던 비젼이 비록 옳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틀리면 주님께서는 그 방법에 합당한
대답을 할때까지 훈련과 고난은 계속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구하면 주시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확한 포인트를 찝어서 구해야 합니다.
그 정확한 포인트가 산상수훈입니다. 즉 좁은문 입니다.
제가 초신자 시절이나 그 이후에도 부흥 강사들은 불로 ~ 불로 했었습니다. 지금도....
그 말씀이 틀린것은 아닙니다. 쌩 장작을 태울려면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래서 화끈한 신앙이 유도 되어야겠기에 한시대에 주님께서 그렇게 한국교회 부흥의 불을
붙이셨습니다. 그러나 일단 붙은 불은 그이후에 그리스도인의 삶을 요구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제자의 삶을 사는 기본을 보여주는것이 마태복음 5,6,7장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은 제자들이 걸어가야할 그야말로 좁은문을 말 합니다.
기업선교를 할려면 그와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제 그릇은 깨끗지 못하면서 채워달라고만
해 댔으니 주님께서 얼마나 답답 하셨을까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챙피해서
그래도 그 목적과 동기가 순수해서인지 이제 그 좁은문을 들어가는 방법을 큐티를 통해서
가르쳐주십니다. 저는 생명의 삶 이라는책으로 혼자서 7년을 했지만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에 오고 공동체 속에서 저 자신을 오픈하고 날마다 말씀 가운데서 저의
죄를 보고 회개하며 적용 하다 보니까 제 자신의 영적 풍요로움을 많이 느끼면서 삽니다.
저의 수많은 실제적인 실패를 나누고 또 우리들교회에 온뒤로 열릴듯 열릴듯 했던 그림자
같은 사건들이 오고 갔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말씀 안에서 자유했기 때문에 나도 살고 남도
살릴수 있는 약재료가 된것 같습니다.
또한편 < 너희는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 는 시편의 말씀도 저를 어렵게 만드는
말씀 이었습니다. 저는 입을 무지 넓게 열었습니다. 오랫동안....고난중에도... 한결같이.
이것이 저의 욕심이기가 쉽습니다. 아니 거의 탐심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저의 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일에는 크고 작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선교에 꼭 필요한 두가지를 주님께 구했는데 그것 때문에 위험도, 핍박도, 고난도
왔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죄와 과실 때문에 실패했었습니다. 완전히. 쫄딱...........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주 망하게 아니하시고 또다시 기회를 주시고 도전
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완전히 지쳐있기에... 이제 힘을 다 빼고 있을 수밖에 없기에 오히려 소망이 있는
지도 모릅니다. 제가 무능하고 무력하기에 도구로 쓰실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좁은> 은 박해를 뜻 합니다.
즉 제자들이 가야할 길은 박해와 반대를 무릅쓰고 가야할 길이기에 그 길로 들어가기가
어렵고 제한적입니다. 기업선교도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협찹한 길 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서 박해라는 좁은길이 시작되고 완성된 천국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도, 진행도, 끝도 제한된 삶을 요구 합니다.
희생과 자기부인을 통해서 힘 빼고 있으면 넓게 갈수도 있고 힘주고 있으면 좁아서 빠져
나갈수도 없는길 입니다.
섬김을 통해서 좁은문을 들어 갈수 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수 있을것 입니다.
그것도 믿음의 섬김이어야 합니다. 성품의 섬김은 한계가 금방 와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