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뽑은 나의 들보는?
작성자명 [박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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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15
2006-01-15 마태복음 (Matthew) 7:1~7:12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빼리라
들보란 말의 뜻이 명쾌하지 않아 NIV 영어 성경을 참조하니
Plank=널판지로 쓰여있고 티는 The speck(잔알갱이) of sawdust(톱밥)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눈속에 널판지가 있는데 형제의 톱밥의 잔알갱이를 보고 이러쿵 저러쿵 비판하면 ‘외식하는 자’라고 이해 했다.
외식하는 자는 사두개인이나 바래새인 인줄 알고 있는데 오늘 은 나보고 말씀 하시니 깜짝 놀라 기절 초풍 할 노릇이다.
널판지가 톱밥보다는 아니 그것의 작은 알맹이 보다는 수천배 보다 더 크니 훨씬 더 잘보여야 함이 당연한게 아닌가.
마7장에서 비판하지말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그동안 내가 비판해온 2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아들에대한 비판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개 삼년이면 라면도 끓인다는데
가족 운동을 위해 시작한 아들의 테니스 레슨을 따라다닌지 7-8년은 지났으니
보는 눈은 세계1류 코치 라고 자신 만만한게 당연 아닌가
때론 운전수로 ..공 주어주는 볼보이로 …물 날라주는 워터맨으로 …필요시는 간호사 역할까지도 하면서 코치 어깨넘으로 들은 풍월을 ㅇㅡㄻ조릴 뿐만 아니라 따라주지 못하는 아들을 비판하는데 습관이된것 같다.
시합이 있는날이면 실수 한것을 꼼꼼히 적어
무릎을 굽혀라
첫서비스가 들어가게 하라
약한 백쪽으로 공격하라
아웃을 콜 하지 않고 게임을 진행하는냐……등등
요구조건이 많다 게다가 같은 애기를 계속 반복하니 듣기싫은 모양이다.
요즘은 아들이 아빠의 잘못에대해 아빠 왜 이것못해요. 저것 실수해요 하면서오히려 내가 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오늘부턴 테니스에 대해 아이에게 어떤 비판도 하지 않겠다고 적용하고 실천하겠다.
두번째는 내가쓴 글로 비판받은것이다
.
1년전쯤 테니스에 대한 인터넷 기자에 응모하여 내생각에는 겨우 턱걸이로
받아 준것 같은데 매달 테니스 잡지도 받고 큰 국제적 게임이 있을땐 리포트터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티켓도 없이 이용도 할 수 있기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작년 10월에 데이비스컵 한국과 뉴질랜드 대항전에서 한국선수의 형편없는 매너를 꼬집었다. 그후 그일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이 지내 왔다.
지난 두주 동안은 마음이 무척 바쁜 날들이 연속 이였다..
매년 1월 초 에 클래식 여자 오픈과 ATP 남자 테니스 대회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매년 방문하기때문이다.
혼자서 사무실로 경기장으로 다니면서 선수들의 프로필도 알아야 하고 경기 분위기나 결과도 나름대로 준비해야 한다.
아무도 시키는 사람없지만 나의 의무라 생각 하니 알아볼것도 많고 해야 할일도 점점 많아 짐을 느낀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 핀란드…등등 세계각국 선수들의 선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분위기라 난감함에 망설이다가 발음 나는 대로 옮겼더니 즉시 비판의 리플이 날아왔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자가 인터넷 기자라니 한심하다. 잘난척 한다. 너무 아는척 한다.등등 무례하고 심한 리플을 보면서 속상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그랬다.
속으론 그러니까 인터넷 기자지 아니면 정규기자로 직업을 진작 바꿨지 정보를 주면 고맙다고 인사먼저 하는게 예의 아닌가 나도 할말이 많았지만 며칠동안 참으면서 혼자 투들대기도 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리플 올린 사람이 이전에 매너에 대해 내가 비판한 선수나 가족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거룩한것을 개에게 주고 귀한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면 어리석은 자 인것 처럼
사랑없는 비판 이나 충고는 오히려 형제를 개 돼지로 타락 시킬 수도 있슴을 생각 해본다.
충고나 비판을 상대가 수용 하지 않으면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픔을 염려 해야 겠다.
비판에 대한 교훈후에 기도에 에 힘쓸것을 강조하는걸 보니
비판 보다는 항상 좋은것 (성령님) 주시길 기도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