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12.토요일 누가복음 22장 .54-62절 심히 통곡하니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코비드 19(corona virus disease 2019, COVID-19) 때 전 세계적으로 거리두기가 실시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거리두기를 하고 따르고 있네요.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대한 거리두기와 예수님과의 거리두기는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멀찍이 따라가는 베드로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때 베드로는 어떻게 주님을 따랐습니까? 주님과 함께 라면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했다고 큰소리쳤던 베드로가 자신의 몸을 감추며 멀리서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과 3년 반 동안이나 함께 동거동락하면서도 심리적 거리두기를 하고 주님을 따랐다가 십자가 지시기 직전 결정적인 순간에 배반했던 유다나 죽음의 위기가 가시화되자 예수님과 거리두기를 하며 최대한 멀찍이서 따르는 베드로나 오십보, 백보 차이임을 봅니다. 위기 앞에서 자기 보호 심리가 발동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네요. 체포당하고 권력자에게 심문받게 된 예수님을 부끄러워하고 자기 또한 체포당하고 심문받고 해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수치와 해 받음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내면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 연약하고 불안전한 자기를 보호하는 방어기제, 보호막이 심리적 거리두기로 나타나고 심리적 거리두기가 유다에게는 적극적인 배신행위로 베드로에게는 소극적인 거리 두고-따르기amprsquo로 표현된 것이지요.
부인하는 베드로
마침내 요한의 도움으로 대제사장 집 안으로 들어간(역대 대제사장 출신에 요한이라는 인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제사장 집안과 먼 인척 관계로 보임) 베드로는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 가운데 앉아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심문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여종이 불빛에 일렁이는 베드로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ampldquo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amprdquo고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화들짝 놀라며 ampldquo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amprdquo고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ampldquo너도 그 도당이라amprdquo고 추궁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더욱 완강하게 ampldquo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다amprdquo하고 부인하였습니다. 한 시간 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ampldquo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amprdquo고 베드로의 갈릴리 사투리를 근거로 예수 제자 도당으로 단정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ampldquo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amprdquo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때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닭이 곧 울었습니다. 심리적 거리두기는 예수님께 대한 강한 부정으로 바뀌었고, 저주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였던 세 번째 부인은 예수 믿는 자신을 저주함으로 자신이 믿는 예수를 동시에 저주한 것이었습니다. 거리두기에 속에는 自己(자기)가 있었고, 自己(자기)를 사랑하였기에 自己(자기)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 예수를 미워하고 저주하기까지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보면 예수님을 은전 30에 팔아 넘긴 죄를 후회하며 ampldquo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amprdquo한 유다가 더 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통곡하는 베드로
이때 어떤 반전이 일어났습니까? 닭이 울 때에 대제사장 집 안에서 심문 받으시던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보시는 주님의 눈빛은 자신을 부인하고 저주하기까지 하는 베드로에 대한 원망과 야속함이 담긴 눈빛이 아니라 베드로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긍휼의 눈빛이었습니다. 닭 우는 소리와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시는 예수님의 눈빛과 마주치자 죽음의 공포로 정신이 나갔던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ampldquo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amprdquo하심이 생각났습니다. 죽는데 까지 함께 갈 수 있다고 장담했던 자기 신뢰와 확신, 자기 의리, 자기 의가 말씀 앞에서 깨어지자 그는 도저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밖으로 뛰쳐 나가 문 밖에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나는 100% 주님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부인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말씀 앞에서 한없이 통곡하며 아파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배반의 사건 앞에서 말씀이 없었던 유다는 의인으로 살다가 끝까지 자기 억울함과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며 자살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똑같은 배신의 사건 앞에서 말씀 앞에서 자기 죄를 보게 되어 100% 의인 값이 깨어지고, 100% 죄인 값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회개는 100% 죄인인 내 자아와 내 생각을 버리고 나와 내 생각으로부터 돌이켜 100% 옳으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내 생각을 뚫고 들어와 자기 죄를 생각나게 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회개하게 하시는 분수령적인 회개입니다. 베드로가 분수령적인 회개를 할 수 있기까지 죽는 순간까지 말씀으로 양육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가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도죄인이기에 성령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의로운 말씀으로만 형제들을 굳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도 베드로와 같이 세상 권세자 힘 있고 부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거리두고 따르는 마음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적어도 유다는 아니다고 생각하였지만 제게도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하고 미워하고 배반하는 유다의 마음이 있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자기 사랑하는 마음 속에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있을 때 마음으로 예수님을 거리두기 하고 부인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최근에 은행에서 퇴직 후 써먹을 수도 있는 자격증을 따기 위하여 사이버 연수를 듣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하여 유튜브 영화 리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순절이라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하는데 한번 영화 리뷰 맛을 보자 매일 그 시간대에 들어가서 보았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거리 두기하고 마침내 부정하는 죄임을 고백하고 ampldquo유튜브 영화 짧amprdquo에서 돌이켜 나의 감람원에서 영혼 구원을 위하여 깨어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공부하며 쉬기를 기도합니다. 깨어 복음을 전하므로 부활절 전도 축제에 한 영혼 인도하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유튜브 영화 짧을 끊고 나의 감람원에서 영혼 구원을 위하여 깨어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공부하고 쉬고 복음 전하므로 부활절 전도축제에 영혼들을 초청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