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5.토요일.누가복음 21장 20-28절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잠언에는 '의인이 번성하면 백성이 기뻐하고,악인이 통치하면 백성이 한숨짓느니라' (잠언29:2)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통치는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합니다. 법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 해라)와 권리에 대한 규제(~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나 통치자도 규제를 받아야 하는데 최상위법인 헌법에 의한 규제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기본질서를 근간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천명합니다. 통치자도 권력을 행사할 때 헌법을 통해서 수임받은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어제, 통치자가 공의를 굽게 하였을 때 백성은 한숨 쉬지만 공의가 바르게 펴졌을 때 백성들의 얼굴에 잔잔한 웃음이 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국민 한사람 이라는 점에서는 미약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공통된 법의식, 공의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대한국민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헌법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속에서도 기억해야 할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주님은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AD 70년에 있게 될 예루살렘 멸망사건을 念頭(염두)에 두신 말씀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한 하나님께 보호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을 에워싼 로마 군대에 대항하여 성안에서 필사의 항전을 벌였지만 예수님의 경고를 미리 들은 주 믿는 성도들은 군대가 에워싸기 전에 성 밖으로 빠져나와 산 위로 피신하였습니다. 왜 멸망의 날에 도망가야 합니까?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 당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권고하시는 날에 듣지 않고 오히려 권고하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해달라고 외치는 죄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빌라도에게 '이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그 결과 징벌의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게 됩니다.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AD 70년에서 1948년까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게 되었습니다. 징계의 날이 주 믿는 성도들과 유대인들에게 똑같이 찾아왔지만 주 믿는 성도들은 주님의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므로 말씀대로 피신하여 구원을 얻었지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생각과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주의 경고를 무시하였다가 철저히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같은 심판을 받아도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되지만 자기 생각과 판단과 확신대로 말씀을 저버리는 자들은 멸망을 당하게 됨을 봅니다.
인자가 오는 것을 보리라
AD 70년에 있었던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가 BC 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예루살렘 파괴의 역사적 반복이었던 것처럼, AD 70년의 예루살렘 파괴는 장차 올 심판을 어떻게 예고합니까? ampldquo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amprdquo 이는 우주적 심판으로 지구 종말이 올 것에 대한 예고입니다.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가 쓰나미로 몰려오고 하늘의 권능들인 해 달 별들이 흔들리며 떨어지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물,불이 쏟아지는 재앙에 사람들은 기절초풍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기절초풍할 상황에서도 무엇을 본다고 하십니까?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권능으로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초유의 환난을 통해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ampldquo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amprdquo 하고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인자 곧 그리스도의 낯을 두려워하여 회피하는 자는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그러므로 주님은 어떤 경계를 하십니까? ampldquo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amprdquo 하셨습니다. ampldquo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amprdquo 말씀은 인자가 재림하시는 최종적인 재난에 앞서 재난의 시작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하인리히 법칙amprsquo에 의하면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330번의 크고 작은 사고 中(중), 1건의 중대한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경미한 사건들이 29건 터지면서 경고를 합니다. 29건의 사건 이면에는 300건의 잠재적인 위험 요인들이 사전에 수없이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삶 속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과 사고, 문제, 고난들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시는 前兆(전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건 속에서 고난 자체를 묵상하지 말고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하십니다. 사건으로 오시는 예수님, 문제로 오시는 예수님, 고난과 시험으로 위장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를 들어 바라보라는 것이지요. 그럴 때 어떤 은혜를 입게 됩니까? ampldquo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amprdquo 속량은 죄와 마귀의 올무에서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해하려는 죄의 유혹과 마귀의 시험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문제의 해결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문제 해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ampldquo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amprdquo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사건이 생길 때 말씀이 생각나는 것, 말씀을 통해 자기 죄를 깨닫는 것, 나의 죄를 예수님께서 속량해주셨다는 복음도 나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고, 오직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셔야 깨달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사는 ampldquo하나님이 전적으로 옳으십니다amprdquo의 역사이고, 인간의 옳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자격없는 죄인이 구원받는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ampldquo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amprdquo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환난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되고 성령님이 스승되셔서 이루시는 저의 속량을 세속사에 눈이 멀어 깨닫지 못하고 사건과 사람을 통해 제게 오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소경, 귀먹어리 같은 죄인인 것을 고백합니다. 제가 조급한 마음으로 아내의 변화, 자녀들의 구원에 집착하기보다 이미 이 사건을 통해 저를 죄에서 속량하기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고, 주님이 시작하신 저희 구원의 시작이 재난의 시작과 함께, 아니 재난의 시작 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감사하고 믿고 바라고 소망하고 기대하고 참고 인내하므로 마침내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재난의 시작에 구원이 이미 시작된 것을 믿고 감사하고 재난을 통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