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토. 누가복음 12장 1-12절 두려워하지 말고 시인하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영화 미키 17amprsquo에는 얼음행성 개척 우주비행 선단에 소모품(expendables,익스펜더블) 역할을 자원해 탑승한 #039미키#039라는 청년이 나옵니다. 그는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어 끊임없이 죽고 다시 정신과 육체가 리프린팅되어 나옵니다. 사람들은 그를 재생용품처럼 생각하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 하고 살기를 소망하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다 그를 소모품이 아닌 사람으로 여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한 여성요원으로 인해 소모품이 아닌 인간으로 재생하는 성장 드라마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재생 가능한 쓰레기같은 소모품 취급한 것은 한 육체에는 한 영혼만이 있다는 하나님의 뜻을 위반한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였습니다. 그러면 육체가 끊임없이 죽고 살아나고 정신이 끊임없이 리셋되어 이전 기억을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ampldquo그 사람amprdquo이라는 사라지지 않는 개체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본문을 통해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외식을 주의하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싸움을 걸어와도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무리 수만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때 먼저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을 하셨습니까? ampldquo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amprdquo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외식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외식은 그리스 배우들이 연극할 때 썼던 가면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가 연기하는 가면의 캐릭터와 가면 속에 숨어있는 실제가 틀리다는 것이지요. 가면 속의 배우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건 가면에 나타난 캐릭터를 실제처럼 연기합니다. 이중인격, 심지어는 미키 17같은 다중인격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집에 돌아가면 가면을 벗고 본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대중 앞에서 한 진실한 사랑과 정직과 의로운 행위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감정과 혈기과 분노와 이기심과 짜증과 교만과 편협한 자아가 민낯을 드러냅니다. 그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고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에 직면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헌신적인 사랑을 연기했던 배우들의 사생활은 외도와 별거와 이혼을 반복하는 등 난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하십니다. 가장 은밀한 사생활 속에서 말한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골방에서 상대방에 귀에 속삭인 비밀스러운 말들이 지붕 위에서 전파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때에는 우리가 한 모든 부끄러운 생각과 말과 악하고 음란한 행동과 습관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우리를 탄핵의 심판대에 소추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ampldquo신독'(愼獨,혼자 있을 때의 생각과 감정과 소원과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조심한다고 자신이 생각과 감정과 소원과 뜻을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승려는 참선하다가 여자 생각이 떠오르면 검지와 중지를 불에 태워 마디가 다 닳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죄악된 생각과 감정과 소원이 다 사라질까요? 본질적으로 악하고 음란한 인간이 '신독'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를 두려워하라
주님은 ampldquo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은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으로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amprdquo고 하셨습니다. 영화속의 미키에게 사람들은 ampldquo죽는 기분이 어때?amprdquo 하고 질문을 합니다. 미키는 ampldquo그저 그래.amprdquo하고 싱드렁하게 대답하지만 그는 죽음의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공포와 두려움을 느낍니다. 죽음은 육체와 정신이 소멸되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짤리고 부서지고 태워지고 소멸하는 것은 극한 고통을 수반하는 극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이 힘있는 독재자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거대한 조직과 시스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약자를 무력화시키는 권력, 권력집단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외식하는 것도 사람들의 평판에 의해서 자신들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기득권을 상실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가진 평판과 특권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죽임같은 상황이지요. 그들은 무지하고 힘없는 백성들 앞에서 군림하지만 다중의 힘을 알기에 끊임없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사람의 평판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가공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과 정신을 지배하고 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지만 육체와 정신이 반복되어도 본질상 변할 수 없는 영혼이 나라는 사실에는 무지합니다. 영혼이 있기에 인간은 인간다움을 고민하고 인간다운 삶을 갈망합니다.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죽기를 소망합니다. 그 영혼을 지으시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인도하시기도 하시고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져 넣으실 권세가 있는 영혼의 창조주는 우리 영혼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시는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마치 우리 생각도 읽으실 수 없고 우리 말도 듣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속에 살아갑니다. 영화 속에서처럼 하나님을 마치 말도 안 통하는 크리처(creature)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영화속의 크리처들이 인간의 말을 다 알고 감정과 의도까지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감정 소원 의지 뜻을 다 감찰하시고 말과 말속에 있는 의미와 행동과 행동 속에 있는 의도와 소원까지도 샅샅이 살펴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또한 우리를 심판의 불 소각로 속으로 던져 넣으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권세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권세가 있을 때 영화 속에 나온 독재자처럼 자기만족에 도취되어서 자기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수단화합니다.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독재자의 자기 만족을 위하여 미키 뿐 아니라 권력자를 추종하는 모든 사람들이 수단화되는 것이지요. 마치 모든 크리처들과 심지어 모든 추종자들까지도 권력자에는 자기 만족을 채우기 위하여 두 앗시리온에 팔리는 참새 구이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참새 한마디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동전 두잎에 팔리는 참새 다섯 마리지만 동전 한 잎 값도 안되는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시고 아끼시고 돌보십니다. 창조 목적대로 자유와 생명과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른 피조물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존재로 살기를 원하시고 참새의 생을 보존하시는 것이지요. 참새 한 마리로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피조물이 소모품(익스펜더블, expendables)이 아닌 존재목적과 살아갈 가치를 가진 존재 자체입니다. 말이 통하는 대화상대요 사랑받는 인격체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되고 하나님의 숨결인 성령의 불으심을 받아 살아있는 영혼, 생령이 된 인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바 된 인간이 사탄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의 형상 마귀의 형상에 불과한 육체로 전락했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가슴아프셨겠습니까? 주님은 스스로 피값을 지불하셔서 라도 그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기 원하셨기에 독생자 예수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보내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고 죽게 하시므로 그 속죄와 부활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고 하십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하늘을 가득채우고 날아가는 새떼들을 보면 그 장관에 숨이 멎을 듯 합니다. 창조주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셀 수조차 없는 수억 마리의 새 떼보다 나 사람이 귀하다고 하십니다.
나를 시인하라
주님은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특히 권세잡은 자들, 권력있는 자들, 힘있는 자들을 부러워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셔서 사생아라는 꼬리를 달고 평생을 사셨고. 흉악범처럼 발가벗기신 채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하셔고 죽으셨습니다. 지금은 하늘에 오르사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니 사람 앞에서 힘없이 부끄러운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하나님이라고 시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두렵고 사람에게 부끄러워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너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너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부인을 당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주님은 ampldquo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amprdquo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말도 인자를 무시하고 거역하는 자들도 다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영접하였을 때 사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께서 예수님 이름으로 역사하실 때 보이지 않는다고 성령님을 거스리고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임재요 하나님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을 인간으로 오해해서 거스리고 모욕하는 것과 보이지 않으시는 성령 하나님을 직접 모욕하고 거스리는 것을 차원이 다른 죄입니다. 전자는 오해와 무지 때문이라면 후자는 알면서도 사악한 영에 사로잡혀 거룩한 영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탄숭배자들, 이단의 교주들이 후자에 속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자기 안에 사악함을 돌이켜 회개하지 않고 사악함을 토해내어 그리스도를 욕합니다. 그런 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주님은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여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평가하고 해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 앞에서 서면 두려움과 염려에 싸여 자신을 방어하고 변명하고 심지어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에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마땅히 할 말을 그 때에 우리에게 가르치신다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보면 권세자 앞에 섰을 때 한번도 자신을 변호하거나 변명하거나 아첨하거나 거짓말하지 않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말을 받아 입을 열어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제자들도 죽음의 위기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대신 예수님을 증거하였기에 예외없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 권세자보다 더 크신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권세자,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그 안에 계셔서 할 말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 안에 조직이나 힘 있는 자들에게자신이 소모품으로 여김받고 버림받을까봐 염려하는 마음, 권력있는 집단이나 힘 있는 사람을 눈치보는 두려움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머리털 하나라도 다 세시고 저에게 관심 가지시고 저를 보호하시고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시라고 하십니다. 제가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대신에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두려워하여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 앞에서 외식하는 삶을 살았던 죄악을 회개합니다. 제가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성령 하나님이 제 안에 계셔서 사람 앞에서 할 말을 제게 주시는 것을 알고 사건마다 말씀으로 해석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제 곁에 붙여주신 가족들과 지체들 이웃들을 익스펜더블, 소모품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있는 영혼들로 여기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섬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