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예수 맛
작성자명 [안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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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10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5장11절부터 말씀의 촛점이 <제자들>로 옮겨가고, 곧이어 말씀을 주제를 달리하여 첫부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 같이 여기서 <너희>가 제자들이라면, 역활은 <소금>일 것이고, 드러난 모습은 <빛>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제자들아,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야...그런데 그 소금이 맛을 잃게 되면 무엇으로 짠 맛을 되살릴 수 있겠니? 분명 쓸모가 없어져서 밖에 내어버림을 당해 땅에 밟히우는 신세가 되고 말꺼야.
이것은 제자들의 역활에 관련하여 그들은 알 수 없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언하여 놓으신 말씀이십니다. 어느정도의 경고를 담아서...
사실 이러한 제자들의 존재이유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롭게 생겨난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을 받으면...
만약 이들이 예수님의 <너희>인 제자들이 되지 않았다면, 대다수의 제자들은 아직도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 인생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날....고기 잡는 바닷가 일터에 나타나셔서 자신들을 제자로 불러주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들은 응답하였고....그렇게 응답하는 순간.....그들의 인생은 사람잡는 어부로 그 궤도가 완전히 수정되어져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이력을 세워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그들 앞에 드러날 장차의 일은 ...많은 허다한 무리들(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받고...)을 예수님께로 이끄는 ( 예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천국의 복을 누리게 하는) 역활과 함께...
11절에 드러난 것처럼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받는 일에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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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가지 역활
무리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일과 예수님을 위해 핍박받는 일....세상의 소금이 되는 일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소금>이 무엇입니까?
넣으면 맛을 냅니다. 짠 맛을 냅니다.
만약 그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 등등에게 예수님을 전했는데 그들 안에 천국이 없고, 하늘 위로가 임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내어버림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맛 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 뒤를 허다한 사람들이 좇은 것 같이 많은 이들이 이들이 내는 <예수 맛>을 좇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이 맛을 잃어버린 사람.....곧 자신 안에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겉으로 똑같이 전해지고 음식에 넣어져도 결코 이 <예수 맛>을 낼 수가 없게 됩니다. 또 일단 넣어져서 맛을 내게 되었다 할지라도 중간에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그 맛을 잃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 자신에게 그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맛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생긴 <예수님만이 낼 수 있는 맛>이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제자들이 <예수 맛>을 낼 수 있다면, 지금 산 아래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아 왔듯이 가만히 있어도 세상의 빛 이 되어지지 않겠습니까? 과연 산상 수훈에 있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부터 나오는 하늘의 복을 싫어할 <산 아래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의미하듯이 이러한 하늘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훼방도 결국 그 예수님이란 빛을 감추어둘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빛>이라는 표현은 세상의 소금이라는 역활을 잘 해 내면 자연스럽게 외견으로 드러나게 될 제자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집안마다....집집마다 한 개의 등불을 켜실 생각이신지....등경을 켜서 이제 <산 위에 있는 동네>를 올려다보며 더 산 아래 있는 자신을 답답하고 어둡게 생각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온 집안 사람마다 그 등경에 켠 빛을 비추어 볼 수 있게 되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누구입니까? 그 집안 사람들에 의해 등경위에 올려져 그들 모두에게 골고루 빛을 비추어 주는 살아 움직이는 빛이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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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4절에 가면 아주 재미난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다른 것은 모두 은유적인 표현인데 유독 이 부분 만큼은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감이 있는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참 이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실컷 제자들에게 <너희>라 일컬으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셔 놓고는,
또 그전에 제자들이 해야할 역활에 대해(앞으로 닥칠 일) 설명해 놓으시고는,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착한 행실 로 귀결되는 것처럼 말씀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앞으로 받을 핍박 = 세상의 빛의 역활 = 이 역활을 잘하게 될 때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게 됨 = 착한 행실이 세상에 보여짐이 다 같은 의미란 뜻인가요?
앞뒤를 잘 연결해 보면, 너희 빛을 세상에 비춘다는 말이 곧 너희 착한 행실을 세상에 보인다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착한 행실이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너희 착한 행실 을 주목하여 말씀하신 걸까요?
본문의 뒤로 나아가면 이 착한 행실이라는 것이 이미 구약에 선포된 <율법>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드러난 빛으로써의 제자들에겐 <이중적인 빛>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소금의 역활로써 세상에 빛으로 주목을 받게 된 제자들.....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세상의 본의 되는 선한 행실을 보여야하는 입장에 놓여 있게 된 것에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의 소금역활로써 이미 밝혀진대로 제자들은 허다한 무리에게 예수님이 약속하신 천국을 선물로 주는 중간 역활을 하게 될 것인데.....그러니 사람들이 이들 제자들의 행실을 보고, 그 사람 자신을 보기보다 예수님을 볼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때문에 이제 제자들 한사람 한사람의 행실은 결코 그 자신 혼자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17절 말씀과 18절, 19절 말씀이 모두 다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어 집니다.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계명 중에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참으로 바리새인들은 이 땅의 영화를 위해.....이 땅 위에서 누릴 풍성한 삶을 위해 율법을 기계적으로 지켜 온 사람들이었지만...
제자들은....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천국에서> 이 땅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한 착한 행실로 인하여 하늘의 복을 누릴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이루실 의 그리고 율법...
이 율법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 안에 구원은 모두 이루어 져 있지만 성화의 과정에서 빗어지는 모습을 의미하시는 것인지?
아님, 사람들이 보는 것은 속이 아니라 겉이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난 선한 행실은 제자들이 전한 예수님이란 빛이 나의 악한 행실로 인해 훼방을 받게 될까봐 그렇게 하라고 조치하신 것인지? 잘 알 순 없지만....
어쨋든 하나님께선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기에 내적인 깨끗함없이 겉으로 내 풉는 행위는 결코 <선한 행위>가 될 수 없기에.....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지게 될 의는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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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만 요약해서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