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1.토. 누가복음 6장 20-26절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진정한 만족은 소유에 있을까요? 존재에 있을까요?
진정한 행복은 외적 조건에 달렸을까요 내면의 상태에 달려있을까요? 행복론은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에서 현대의 에리히 프롬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이 매달린 주제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진정한 행복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복이 있나니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ampldquo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amprdquo 제자들을 가난한 자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하게 된 자였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사업체인 배들과 인부들과 어장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세리 마태는 돈방석이 깔린 세리직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세상의 부와 돈과 풍요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예수님을 얻기 위하여 물질과 소유를 버린 상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안에 있는 죄인으로 나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와 그 부활하심과 고난의 삶을 닮아가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하게 된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ampldquo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임요amprdquo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세 천국도 있고 심령천국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받고 다스림과 주관하심과 보호하심 인도하심에 있다면 지금 있는 여기가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말씀이 들리고 이루어지는 삶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님은 ampldquo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다amprdquo고 하십니다. 가난이 필요한 물질이나 돈이 결핍된 상태라면 주림은 결핍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복상태입니다, 공복은 허기와 고통을 수반합니다.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지지 않으므로 주림은 채움에 대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허기는 육적인 배고픔도 있지만 내면적인 허기도 있고 영적인 갈급함도 있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주림은 먹지 못함이 아니요 말씀을 듣지 못한 주림이라고 하였습니다.
ampldquo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amprdquo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자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하십니다.
ampldquo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렘2:13)amprdquo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인정치 않고 사람이나 우상, 물질이나 쾌락, 권력, 명예, 사람 인정과 세상 칭찬을 생수의 근원으로 여기고 열심히 웅덩이를 파나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기에 주림과 목마름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 주린 자는 내가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버리고 스스로 생수의 근원을 파려다가 목마르고 주리게 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과 말씀 앞으로 돌이키는 자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죄와 우상을 버리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주님은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의 근원이 되셔서 말씀으로 그 영혼과 갈급한 내면과 육신을 배부르게 해 주십니다. ampldquo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다amprdquo고 하십니다. 우는 자는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과 결핍과 죄악을 보고 애통해 하는 자입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 앞에서 우는 자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웃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절망과 한계에 빠져 우는 제자들에게 웃음을 주십니다. ampldquo너희가 웃을 것임이요.amprdquo 주님이 주시는 죄 용서와 위로와 말씀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웃음을 줍니다.
큰 상을 받을 자
주님은 ampldquo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amprdquo고 하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말씀대로 살고 전하기에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욕하고 내 이름이 악하다 하여 버릴 때는 하나님마저도 나를 버리신 것 같아 절망과 슬픔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러나 그 날이 기뻐하고 뛰놀 정도로 복 받은 날이라고 하십니다. 하늘에서 우리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선지자 급으로 수준 높게 보시고 선지자들이 받았던 미움과 욕과 악평과 버림을 당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고 높여준다면 아직 내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을 수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붙회떨감amprsquo이 복음의 정수인 것은 하나님이 고난과 실패를 감당할 만한 믿음과 내면을 가진 수준 있는 자로 여기시기에 떨어진 것이 감사요, 아직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해 세게 불면 날아갈까 봐 호호 불어 붙여주셨기에 실패와 고난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 낮은 나의 믿음을 회개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화 있을진저
그러나 주님은 어떤 자들에게 화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까? ampldquo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amprdquo 부요한 자는 가진 것, 자기 소유로 만족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이미 세상 것으로, 물질로 사람들로 위로를 얻었기에 하나님께 위로를 받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ampldquo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amprdquo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일시적인 채움을 위하여 식탐과 쾌락과 욕심에 매달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채움을 주시는 생수 되신 하나님과 말씀을 버렸기에 곧 주리고 말 것입니다. ampldquo화 있을진저 너희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amprdquo 웃는 자는 자기 죄를 직면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문제 의식 없이, 죄 의식도 없고 죄 속에서 살면서 웃고 주절거리며 떠들어 댑니다. 그러나 심판의 때가 오면 그들은 애통하며 울게 됩니다. 그 때는 후회해도 늦기에 화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죄에 대한 심판보다 위로와 평화를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이 심령에 깊이 들리지 않아 내 죄에 대한 애통함이 없는 저의 가난과 주림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환호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족함이나 연약함 허물과 죄를 지적 당하면 자존심이 상하여 발끈하는 자를 보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예수님과 관계성에 있음을 알고 생수의 근원 되신 예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죄를 깨닫고 주님의 보혈로 씻김 받아,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고 말씀으로 배부른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과 핍박당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요 칭찬인 것을 알고 복음 전하기 위하여 당하는 핍박과 고난을 적극적으로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날마다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죄 사함 받는 복을 누리고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