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5.토.누가복음 4장 31-44절 예수의 소문이 퍼진지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 그날 본문인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읽으시고 자신에게 적용하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사 61:1~2)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 4:18)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
주의 성령께서 예수님께 임하사 전하게 하신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부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로부터 목수 요셉의 아들인 네가 무슨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냐고 배척을 받고 낭떠러지에 떠밀려 죽을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에서 50킬로 떨어진 갈릴리호수 북편 가버나움에서 복음을 전하셨을 때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아보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귀신들린 자들, 병자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만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잠잠하고 나오라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쳤습니다. 나사렛에서 메시아 선포하신 안식일로부터 바로 다음 주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면서 예수님의 외적인 인간 조건을 판단하며 그 입으로 나오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는데 가버나움 사람들은 그 말씀의 권위가 있다며 말씀 자체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런데 회당에 평소 같으면 잠잠히 있었을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ampldquo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amprdquo 교양과 체면을 중시하던 유대인들은 평소에 교양과 체면을 차리던 그 사람이 갑자기 교양과 체면을 내던지고 회당에서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평소의 눈빛이 목소리가 아니라 희번덕거리는 눈빛, 짐승같은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진단하시고 처방하셨습니까? ampldquo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amprdquo 그러자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전혀 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눈빛, 제 목소리, 제 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다 놀라 서로 말하였습니다. ampldquo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amprdquo 그러면 왜 이 사람만이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the Holy One of God),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메시아로 알아본 것일까요? 그 안에는 더러운 귀신이 있었는데 더러운 귀신은 inpure spirit(깨끗하지 않은 영, 더러운 영)입니다. 자신이 더럽혀졌다, 더러운 죄인이다는 인식이 없었는데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시는 거룩한 분의 임재, 거룩한 영의 임재를 깨닫자 자신 안에 있는 더러움의 실체가 견딜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와 소리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이라고 더러운 죄가 없었을까요? 그들에게도 더러운 죄가 있었지만 나는 적어도 목수의 요셉의 아들, 예수보다는 낫다는 자기 의와 교만이 있었습니다, 자기 의로움과 교만이 자기들 안에 있는 더러움의 실체를 가리고 은폐시키니, 알량 맞은 자기 의로 자기보다 못하게 여겨지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버나움 귀신들린 사람은 말씀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자기 더러움을 보게 되었고 절대치의 더러움과 악으로 인해 심판당하고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죄인으로서의 실상을 깨닫고 절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더럽게 하는 귀신의 실체를 향하여 꾸짖으셨고 더러운 귀신이 떠나자 정결한 사람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더러움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자가 더러움의 영을 심판하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더러움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구원하시는 구원자 하나님입니다.
이에 예수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졌습니다.
일일이 손을 얹으사
예수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고열과 두통과 탈수를수반한 열병은 치사율이 높아 베드로의 장모가 위독하였기에 사람들은 예수님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꾸짖었다는 꾸짖음 당하는 인격적 실체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장모의 병세, 몸의 상태에 주목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은 실체에 주목하셨습니다. 열병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자인 열병 귀신을 말씀으로 꾸짖자 사경을 헤매이던 시몬의 장모가 씻은 듯이 나아 곧 일어나 음식을 차려 예수님과 제자들을 수종들었습니다. 그런데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안식일날 병을 고치면 안된다는 율법에 매여 해가 져서 안식일이 끝나자 마자 예수님께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매여 종노릇 하는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연약함과 무지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쳐주셨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어떤 소리를 질렀습니까? ampldquo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amprdquo ampldquoYou are the Son of God!amprdquo 사람들은 예수님을 권위과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봤지만 귀신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독생자)로 정확히 알아봤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질병과 귀신들림 같은 절대치의 고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제대로 깨닫고 만나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죽을 병에 걸리고 귀신에 사로잡혔어도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깨달을 수도 만날 수도 고백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님이 기름부으심으로 말씀(하나님의 음성)을 깨닫게 해주셔야 하고, 성령님이 그 사람에게 오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의 증거로 결코 그리스도가 전해질 수 없음을 아시기에 말함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셔야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만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적한 곳에 가시니
날이 밝으니 예수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새벽 미명에 예수님께서 일어나 나가사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거기서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벽이 아직 밝기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나가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 곧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묵상으로 하루를 여시고 기도로써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무리가 새벽부터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데리고 와서 주님을 찾다가 동산에 올라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만나서 자기들을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천명하십니까? ampldquo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amprdquo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 마을에 머물면서 치유 상담 센터를 개설하셔서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계속 치료하시고 고쳐주기만을 바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심령을 가난케 합니까? 죄와 우상과 세상 사람과 세상 권세에 포로되었기 때문에 자유를 잃어 심령이 가난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고 구세주가 그 안에 없는 것이 심령의 가난입니다. 말씀이 없어 가난한 것이 심령의 가난입니다. 말씀이 없어 본성과 육신의 정욕과 욕심대로 살다 눈이 멀고 온갖 질병에 신음합니다. 귀신에게 눌려 평안함과 자유가 없고 불안하고 답답하고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인생에게 복음은 예수가 너희를 죄와 질병과 마귀에게서 자유케 하기 위해 온 하나님의 메시아, 구원자, 하나님의 독생자(the Holy One of God, the Son of God)라고 선포합니다. 나의 가난과 질병과 귀신들린 실상과 내 자녀 배우자 가족과 친지와 이웃의 문제 앞에서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메시아, 구원자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임하기 위해서는 말씀 앞에서 자신을 100%로 죄인으로 인정하는 자기 발견과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은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고 하십니다.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말씀이 들어가야 귀신도 떠나고 병도 낫고 눈 먼 자도 뜨게 되고 눌린 자도 자유케 됩니다. 말씀 없는 축사, 죄 고백과 회개가 없는 병 고침은 우리를 근원적으로 해방시키지도, 모든 눌림에서 자유케 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전도하셨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 대구에서 대학교수 정년을 마치고 30년간 대구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이사온 사촌형이 할아버지 자손 모임에 참석한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으로 청강(할아버지 號(호))회 서울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위암 4기에서 기적적으로 나음 받아 참석한 한 살 터울 사촌형도 있었습니다. 저는 형님들 안부를 물으면서 그들이 잘 교회 다니는 지, 형수는 다니는 지 꼬치 꼬치 물었습니다. 사촌 동생의 신앙생활에 대하여도 여러 조언을 하였습니다. 한 살 터울 사촌 형은 형수가 여의도***교회에 다니는 평신도 사역자인데 남들은 다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다고 하지만 자신은 할아버지와 큰 할머니와 작은 할머니(큰 할머니 직계가 한 살 터울 (작은 아버지 장남인) 사촌형이고, 작은 할머니 직계가 큰 아버지와 큰 아버지 막내 아들인 교수인 사촌형과 저임)가 꿈에 나타나서 자신의 절을 안 반기고, 고모 할머니가 고향 마을 다른 임씨 집에 검은 차를 가지고 들어가 담판을 벌여 그 집 목숨을 가져다 할아버지 본가에 들어가 자신에게 그 집 목숨을 빌어 주었다는 꿈 이야기를 들려 주며 조상들이 자신을 살려주었다고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집에서 형수와 구역예배는 드리냐고 물으니 자신은 '절대로 집에서 구역예배 못 드리게 한다고 한다. 아내에게 너의 신앙도 존중하니 나의 신앙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못 박아 두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야기(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 이야기, 아버지의 아들인 자식들 이야기)를 엮어 블로그에 올리고 책도 냈다며 자신의 전자책을 핸드폰으로 보여주길래 저도 제가 출간한 신앙 시집들을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계속 교회 문제, 예배 문제, 신앙 문제로 말을 끊는 저를 '너는 왜 자꾸만 엉뚱하게 뒷 북 치는 이야기를 해서 말의 흐름을 끊냐?'고 공격했습니다. 곁에 있던 사촌 동생이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제 변호를 해주었지만 사촌 형은 '그렇지 않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뒷 북 치는 말만 하고 있다'고 공격을 했습니다. 저는 한 살 터울 사촌형에게 사촌 동생 옆에서 대놓고 무시를 받자,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는 네 까짓 것이감히나를 무시해amprsquo속으로 판단하고 무시하였습니다. 냉랭하게 몸조리 잘하라고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했나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친척들을 의지하는 세상 모임에 나가지 말라고 끊어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상처받은 자존심과 분노로 인해 목요일날 목장 예배를 준비하면서도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께 하듯이 목장 식구들을 섬기라는 주일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세상 사람의 종이 되어 인정과 평판에 목말라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세상 왕의 인정과 칭찬과 평가에 목 매고 살다 망할 수 밖에 없는 100%로 죄인인 저의 실상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한 살 터울 사촌 형이 수고했다는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 송경희 집사와 함께 장도 보고 식사 거리와 간식거리 만드는 것을 도우면서 범사에 주께 하듯 해야 하는데 제가 여전히 세상 왕이 되어 저를 판단하고 무시하는 사촌 형을 같은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미워했던 죄를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정에서 처음 대접하는 새로 개편된 목장 식구들을 하나님이 보내신 종으로 여기며 이 분들을 하나님을 섬기듯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자 다시 섬기는 기쁨이 회복이 되어 마음을 다해 준비하고 저희 집으로 들어오시는 목장식구들을 한분, 한분,반갑게 맞아 기쁨으로 예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직도 '100%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제가 100% 죄인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가 자동적으로 나오지 않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여전히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저를 위하여 주님께서 날마다 새벽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말씀으로 찾아오심을 감사합니다. 이전보다 간절히 새벽을 깨워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날마다 한 말씀 붙잡고 적용하고 순종하므로,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 내면에서 우러난 복음을 가족들과 형제들과 목장 지체들과 이웃들에게 전하여 주님께 이끌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다른 사람들에게 책망이나 비난을 들을 때 제 안에 있는 죄악과 허물과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백함으로 제 안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