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되어지는 인생
작성자명 [나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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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07
요즈음 마태복음서를 큐티하려면 마음이 많이 복잡해집니다.
여러가지를 듣고 보고 해야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다시 듣고 책들도 조금 보고...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닫는 것은 좋지만 목장모임이 2주간 겨울방학도 했겠다,
어느새 저의 게으름과 나태함이 귀차니즘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습관처럼 해오던 경건의 훈련은 무섭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제가 예수님을 본격적으로 믿게 되면서 우리들교회로 인도되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이 어떻게 오늘 말씀과 같을까 싶을 정도로 눈이 번쩍 뜨였고
이렇게 큐티나눔에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12-13절) 예수님이 구원사역을 시작하시려면 먼저 세례요한이 감옥에 사로잡혀야 되고 예수님도 잠시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사신 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1985년 저는 고향을 떠나 해변가를 끼고 있는 부산에서 시집의 감옥에 사로잡혀서 2년동안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시집생활이 힘들어서 교회를 열심히 나갔으므로 저의 구원이 이루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그 때에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15-16절)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에 있는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 앉은 백성들이 큰 빛을 보았고 빛이 비취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부산과 주변 지역에 시간 강사로, 또 화실 운영을 하면서 힘들게 살았습니다. 대학에 이력서를 넣어도 잘 되지 않다가 한 대학에서 거의 다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총장 아들을 통해 낙하산 인사가 되는 바람에 남편이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대학교수 임용과정에 환멸을 느끼고 홀로 공부차 외국으로 나가버렸습니다.
혼자서 두 자녀를 키우며 화실을 운영했던 저는 시어머니의 엄청난 간섭과 압박을 받으며 흑암과 어두운 그늘에 있었던 제게 어느날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와서 한 선교단체의 선교사님을 소개해주고 일대일 양육을 6개월간 받게 해주었습니다.
17절)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십니다.
1986년 여름부터, 1주일에 한 번 씩 양육을 집에서 홀로 받으면서 말씀을 통해 저 자신의 죄를 보면서 울면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남편을 후원하던 화랑에 문제가 생겨 후원금이 끊기자 시부모님의 권고로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서울로 와서 화랑을 바꾸고 남편에게 부쳐야 할 모자라는 돈과 생활을 하기 위해 미술지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8-22절)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어부 형제 시몬과 안드레, 또 다른 형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니 그들은 그물과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 중에는 형제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4자매가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4째 언니와 저만 같은 교회에서 자매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생활을 위해 10년간 미술지도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병행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남편을 통해 물질을 주시고 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돈 버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자 형편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힘들었습니다. 기도한 것을 잊어버리고 돈을 벌려고 다시 시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전혀 일이 되지 않게 하셔서 기도했던 것이 기억나서 그 다음부터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힘들게 살았지만 때가 되자 주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처음 우리들교회에 오자마자 목사님께 제자훈련을 받을 때 형제가 자연히 비교당하고 서로 감출수 없는 어쩔수 없는 것들로 참으로 불편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때문에 저 자신의 악을 더욱 잘 볼 수 있었고 서로 견인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었고 서로 인정하고 섬기는 것이 얼마나 영적 훈련에 유익했던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형제를 제자로 선택하시는 것이 얼마나 탁월하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아닌 제자로 언니와 더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이고 싶습니다.
23-25절) 예수님이 온 갈릴리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들의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을 고치시니 온 소문이 퍼져서 각색병자,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자, 간질, 중풍병자를 데려오니 고치시니 갈릴리 뿐 아니라 데가볼리, 예루살렘, 유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1997년 열심히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어렵고 힘든 삶이 도저히 해석이 안되었습니다. 그럴수록 저의 의로운 성품과 인본주의적 생각들, 성품적 열심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야망을 가진 신앙심과 정죄감에 사로잡힌 회개에 평안치 못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속을 썩히며 공부를 하지 않자 저의 우상이 깨뜨려지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소문을 듣고 김양재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큐티 선교회 월요모임에 인도되어 말씀을 통해 제 속의 각색 병들을 보게 되었고 말씀으로 저의 삶이 해석이 되면서 목사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신 그해 크리스마스때부터 우리들교회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들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오셔서 말씀을 듣고 살아납니다.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이곳에서 허다한 무리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로 주님의 구원사역에 말씀대로 되어지는 인생이 되고 싶은 소망을 오늘 말씀으로 큐티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