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8.토. 누가복음 2장 25-39절 이스라엘의 위로자 예수님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는 長子(장자) 대신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둘로 하나님께 바치는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하여 부모가 성전에 데려간 아기 예수님을 평생을 기다린 두 선지자가 나옵니다. 그들은 왜 아기 예수님을 평생토록 기다렸고, 예수님이 누구이심을 어떻게 증거했을까요?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위로를 기다리는 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의 이름의 뜻은 ampldquo듣는다amprdquo입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는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 구원자, 왕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이 시므온 위에 계셨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니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왔습니다. 시므온에게 성령님이 그 위에 계셨다.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다는 증거가 계속 나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깨닫고 만나고 거듭나기 위하여는 이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하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야(be revealed) 합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을 때 예수님이 누구신 줄 깨닫고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성령님의 함께 하심과 지시하심(계시하심)과 감동하심이 있어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지 깨달을 수 있고 만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갈 때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 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오는 모습을 조우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에는 우연히 만나는 사건이나 일이나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님의 효과적인 도우심으로 마침 그를 만나고 그 사건을 만나고 그 일을 만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마침 그 사람과 일과 사건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은 그 사람과 일과 사건이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깨닫고 만나는 구속사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시므온의 찬송과 예언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까? ampldquo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amprdquo고 찬송하였습니다. 그는 마리아의 품 안에 있는 아기 예수를 보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기 예수님이 만민 앞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만민을 위한 구원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우리 집 안에서 나온다면, 또 내 집에서 나온다면 얼마나 가문의 영광이겠습니까? 인류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시므온의 말들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이에 시므온은 그 부모를 축복하고 그 어머니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예언을 합니까?
ampldquo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amprdquo하였습니다. 비방 받는 표적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에 세움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이방인 중에서도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들이 십자가를 통해 흥하게 되고 패하게 됩니까? ampldquo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amprdquo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칼이 마음을 찌르듯 하는 자가 살아나는 자요 흥하게 되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마음의 생각이 드러나 숨은 죄를 깨닫고 돌이키면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도 마음의 생각이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 죄를 숨기는 자는 결국 패하여 지고 죽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묵상하고 쓰는 큐티 말씀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기 죄를 보는 것이 내가 돌이키며 살아날 수 있는 흥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성모로서 자기 아들이 많은 사람의 비난의 표적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보고 칼이 마음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아파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 발견이요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주님 자신의 죄가 아닌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스스로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밝히 계시하여 주시고 깨닫게 하셔야 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안나의 감사
또 아셀 지파 비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안나는 한나의 그리스어 음역으로 은혜amprsquo,은총amprsquo이라는 뜻입니다. 은혜는 값 없이 주어진 선물, 조건 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나이가 매우 많았습니다. 그가 결혼한 지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84세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게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039주의 구원#039으로 보았는데 안나는 #039예루살렘의 속량#039으로 보았습니다. #039주의 구원#039은 곧 #039예루살렘의 속량#039이라는 것입니다. 속량은 노예시장에서 노예 상인에게 누군가 나타나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풀어줄 때 쓰는 말입니다.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해방이 필요할까요?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서 올까요? 인간이 부자유한 이유는 죄로 인함입니다. 죄로 인해서 사탄의 포로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이 안되고 사람들과 소통이 안되고 스스로와도 소통이 안됩니다. 속에 차 있어서 끌어 오르는 가래처럼 죄는 우리 안에 달라 붙어 있어서 부자유하게 하고 불편(불안)하게 합니다. 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우리를 죄에서 분리하게 위하여 필요한 贖錢(속전,노예의 몸 값)은 피 값, 죽음밖에 없습니다. 죄인의 피는 죄인을 속량하지 못합니다. 오직 의로우신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어린양(獨生子(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깨끗케 합니다. 나의 죄를 위하여 흘려주신 의로운 피가 나를 모든 사탄의 올무에서 자유케 합니다. 진정한 구원은 속량, 곧 죄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주님과 주의 부모는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렀습니다.
새로 편성된 목장에 참여하니 연령대가 50~60대에서 30~40대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죄를 보고 은혜를 나누면 된다는 생각에서 목장 예배를 참석했는데 거의 신혼에 불과한 젊은 부부들을 보니 말씀대로 사는 본을 보여야 한다는 영적인 부담감이 들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 말씀대로 제가 스스로 말씀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돌이켜 사는 것이 제가 살 길이요 목장 식구들이 살 길이라는 것이 인정되었습니다. 금요일 날 아내를 위하여 속죄 값을 받아오는 어려운 적용을 하기 위해 직장에 갔을 이혼 위기의 목장 식구를 위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긴장 가운데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돌이켜 회개할 때 신천지에 빠진 두 자녀 지헌이 하영이도, 가정불화와 이혼위기에 있는 목장식구도 돌이켜 살게 될 것을 믿고 날마다 큐티 묵상 말씀 앞에 돌이켜 사는 회개의 적용을 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큐티를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말씀 앞에서 돌이켜 살아가는 십자가 적용을 길로 놓고 가겠습니다.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