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1.토. 사무엘상 30장 1-20절 용기를 얻었더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다가 블레셋 가드 왕에게 빌붙었다가 이스라엘을 치러가는 블레셋 군대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적이었던 다윗과 함께 출군해야 하는 방백들의 반발과 임기웅변에 능한 다윗의 거짓말과 (over action)연기로 출병에서 벗어나 시글락 주둔지에 돌아왔지만, 땅 끝 같은 시험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땅 끝에서 어떤 하나님을 만났고 어떻게 땅 끝을 치고 올라올 수 있었을까요? 그가 땅끝에서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힘입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벡에서 75km를 걸어 사흘 만에 시글락 주둔지에 도착하였더니 어떤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까? 네게브 사막 아래쪽에 살고 있었던 아말렉 사람들이 네게브와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혀 간 것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다윗과 신접살림을 차렸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혀 갔던 것입니다. 이때 백성들이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주저앉아 울던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왜 잃어버린 마누라 때문이 아니라 자녀들 때문에 들고 일어난 것일까요? 마누라는 대체가능하지만 자녀는 대체불가능하다는 인식, 곧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분리불안과 애착의 끈이 떨어지는 땅 끝에 가니 원인제공자인 다윗을 죽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모든 탓을 자기들을 이끌고 시글락에 온 다윗 탓으로 돌려 다윗의 제거함으로 분을 풀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은 정신줄 놓고 땅을 치며 울다보니 어느새 돌을 들고 자신을 치려고 둘러선 백성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신줄을 놓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크게 다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온 마음으로 그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그의 입술에서 터져왔을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에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죽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돌을 든 성난 백성들에게 맞아 죽지 않게 기름부음 받은 자신을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어 자리를 툭툭 떨고 일어섰습니다. 사색이 되었던 다윗이 일순간 평안한 얼굴을 보이자 백성들이 흥분을 가라앉혔습니다. 절망하고 두려울 수 밖에 없는 땅끝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절망도 없어 보이는 평강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그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 믿어져 분노의 짱돌을 떨어뜨렸습니다. 이 짧은 극적인 순간 다윗은 어떤 하나님을 만났을까요?
시편 22편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가 땅 끝에 내려가 울부짖던 다윗의 원망 섞인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고 자신을 처지를 비관하였습니다.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네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고 죽음의 공포를 호소합니다. 심지어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시편 22:14,15)라며 그가 간 땅끝이 죽음의 진토(무덤 속)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진토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죽음의 형틀에 달리신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남의 탓 하나님의 탓하며 주님께 돌리는 모든 죄와 허물의 책임을 십자가에서 홀로 떠안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저주와 형벌과 심판을 당하시며 땅끝, 죽음의 끝자락에 떨어지는 공포를 호소하실 때, 시편 22편1절의 다윗의 호소를 인용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다윗은 자신도 모르게 메시야의 고난을 부르짖은 것이고 자신이 버림받는 땅끝에서 자신을 위하여 버림받는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끝까지 이르는 심판, 죽음의 형벌이라도 그곳에서 나의 하나님이신 나의 예수님을 만나면 죽음의 자리를 털고 일어설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시편22편 땅끝에서 다윗의 고백이 이스라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땅끝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치고 올라올 수 없는 절망과 두려움과 불신의 자리이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이스라엘 찬송 중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구원의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찬송 받으시고 영광 받으시는 찬송의 자리, 영광의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시험과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고난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나와 가장 가깝게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리고 하나님은 나의 소리를 듣지 않고 응답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순간에 하나님은 나의 작은 신음 소리를 옆에서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훗날 시편 18편1절에서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로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에봇을 가져오라
다윗은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원하건대 에봇을 네게로 가져오라고 지시합니다.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니 다윗이 여호와께 직접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하고 묻습니다. 사울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자기 판단과 의견대로 일을 벌려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이 일을 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이에 여호와께서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고 분명하게 응답하셨습니다. 다윗이 자기 생각과 판단대로 가사 왕을 찾아가고 시글락을 주둔지로 할양받았을 때는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을 치러가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참여하여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땅끝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보고 회개한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 길만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묻고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한시가 급한 추격전을 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하나님께 묻고 대답을 기다리고 응답 받고 순종합니다.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하였습니다.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명을 거느리고 쫓아갔습니다.
애굽 사람 하나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왔는데 다윗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여 말할 기력도 없어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자 다윗은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하고 심문하였습니다. 이에 그가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하고 이실직고하였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애굽사람 한명을 살려놓았더니 알고 보니 그가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고급 정보원이었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하고 물으니 그가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아말렉 진영으로 내려가니 아말렉 군사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으므로 말미암아 술판을 벌여 놓고 먹고 마시며 밤새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윗을 술먹고 해롱거리며 광란의 춤을 추던 아멜렉 군사들을 새벽부터 이튿날 날이 저물 때까지 칼로 쳤습니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400명 외에는 칼날을 피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이 약탈했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습니다.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하였습니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쓰러져 있었던 애굽 사람, 승리에 도취되어 밤새 술판을 벌이며 춤추는 아말렉 군사들의 방심, 낙타를 타고 야반도주한 400명을 제외하고는 원수를 줘다 진멸하고 다시 찾은 아내들과 자녀들과 양떼와 소떼.... 사람들은 이것을 다윗의 전리품이라며 방금 전까지 자기들이 돌로 쳐 죽이려 했던 다윗을 높이고 칭찬하였지만 다윗은 이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전리품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절절히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 18:6)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가리니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시 18:37,38)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시 18:50)
그가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시 22:24)
다윗의 고백들이 담긴 이 시편들은 땅 끝에 떨어진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회복되어 땅끝에서 올라와 찬양 드리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모든 땅 끝에 있는 자들에게 어떤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줍니까?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시 22:29)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서 예배하리니(시 22:27)
땅끝이 여호와의 긍휼과 은혜와 도우심을 체험하고 주님을 만나 예배하는 구원의 자리amprsquo니 땅 끝에서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라고 권면합니다. 그의 땅끝 체험이 또 하나의 구원의 필모그래피(같은 주제를 다룬 영화 목록)가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구원의 역사지만 다윗에게만 왜 이런 체험이 많은 걸까요? 15 광야를 지나며 구원의 필모그래피를 쌓은 비결이 무엇일까요?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시편 18:21,22)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시편 119:14)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시편 119:20)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편 119:25)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시 119:56)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 119:148)
이 고백들은 다윗이 원조 큐티하는 남자였음을 알게 합니다. 다윗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했고 적용하고 묵상한 말씀들이 고난의 사건 속에서 떠올라 진토에 붙어있던 영혼을 살아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환난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이 스승되시는 삶을 통해 말씀으로 고난의 사건을 해석 받아 살아나는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어찌 보면 다윗은 사울보다 흠결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처첩 딱 둘만 아내로두었으나 다윗은 전형적인 헌팅 맨(미녀 사냥꾼)이었습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 사울은 변명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왔지만 다윗은 거짓말과 속임수가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최측근 베냐민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지만 다윗은 최측근의 아내과 간음하고 충신의 아내를 가로채기 위해 충신 죽이기를 서슴치 않는이기적이고 음란하고 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것은 말씀 앞에서 자기 죄를 보며 끊임없이 진심어린 회개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땅 끝에 붙었을지라도 말씀을 떠올리고 붙잡고 일어서는 것이 다윗의 영성이었고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면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에게 있었던 수많은 땅 끝에 떨어지는 사건들이 사실은 하나님을 만났던 순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순간들이었고 하나님의 구원들 체험한 순간들이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전처와 장남의 갑작 스런 소천, 차남과 막내딸이 신천지에 빠지는 땅 끝에 이르러서야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고난이 축복 현재 고난이 내 삶의 결론이라는 구속사의 말씀 앞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 설교 제목과 대지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면 담임 목사님께 야단 맞았다는 부목사님의 새벽 설교 간증을 들으며제가땅 끝에 이른 지금도 말씀을 사모함과 경외함으로 듣지 않고 설교 시간에 졸음과 피곤으로 온 몸을 뒤척이는 되었다 함이 없는 연약한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다윗과 같이 주일 설교 말씀과 수요 설교 말씀, 새벽 설교 말씀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기(시편 119:127)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땅 끝에 붙은 저와 자녀들과 지체들의 영혼이 주의 말씀으로 살아나 여호와께 찬송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주일 예배 말씀을 정신 차리고 사모하여 들으므로 설교 제목과 대지 제목과 적용질문을 반드시 기억하고 말하고 살면서 적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