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아무나 하나?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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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05
제목 : 회개는 아무나 하나?
성경 : 마3:1-12
회개하라 천국이 가I까왔느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고난이 축복이랍니다.
쉬운 말 같은데, 쉽지 않은 말들입니다.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천국에 가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지만, 세례를 받지 못하고 책망만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더 동정이 갑니다.
그들도 세례를 받고 천국을 가고 싶어 할덴데...
도리어 도끼에 찍히고, 지옥불에 던져진다고 하니, 세례요한이 참으로 밉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어쩔 때는 화가 납니다.
저라고 인격적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저라고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영적인 역차별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도 회개해야 하고,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기 때문에
때때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답답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바리새인이고 사두개인일 것입니다.
광야에서 독설을 퍼 붓는 세례요한 인지라, 힘있는 자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당연한 일이고, 쌤통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복하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독설을 퍼 붓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이나 후련하게 말입니다.
회개는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는 아무나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이 주는 세례는 자신의 죄를 보는 수준이지만
예수님이 주는 세례는 죄를 태워 없애주는 수준입니다.
알곡인지 쭉정이인지는 요한이 정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정하는 것입니다.
저의 모습을 봅니다.
회개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회개한다 말하지만, 여전히 회개가 아닌 회개를 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죄를 자복하지만 입으로 자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이것이 저의 현주소이고, 저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요한처럼 말하는 사람이 싫습니다.
무조건 회개하라고 , 밀어붙이는 사람이 싫습니다.
신앙이 너무 좋은 사람도 싫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바리새인이고 사두개인처럼 살지 모르지만
회개다운 회개를 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처럼 10가지의 재앙이 있어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 있고
다윗처럼 한 마디의 말에 돌아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할 때에
회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인정하고 말씀 안에서 살고자 합니다.
공부가 쉬웠어요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듯이
회개가 쉬웠어요 하고 말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