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7.토.사무엘상 20장 24-42절 영원히 우리 사이에 계시리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언약은 맺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지키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언약은 지켜질 때 언약이 되는 것이기에 지키지 않는 언약이라면 언약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언약을 맺는 두 사람이 어떻게 행했는지 가르쳐 줍니다. 언약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언약대로 행한 두 사람
다윗이 요나단과 언약을 맺고 사전에 모의한 대로 왕과 왕실 친족들이 참여하는 월삭 조찬모임에 나가지 않고 들에 숨어있었습니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고 요나단은 서 있었고 사울의 삼촌 넬의 아들이었던 군대장관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마(왕의 사위)의 자리에 있어야 할 다윗 자리는 비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 보다amprsquo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튿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ampldquo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amprdquo하고 물었습니다. 요나단이 사울에게 ampldquo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amprdquo하고 보고하였습니다.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아버지에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대는 요나단을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윗과 요나단이 맺은 언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약에서는 #039헤세드#039라고 하는 데, #039헤세드#039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언약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039헤세드#039(히브리어: חֶסֶד, 로마자: Ḥeseḏ)는 계약관계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계약은 크게 계약을 맺는 당사자끼리 잘 대해주자는 뜻과 한 번 맺은 계약은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첫 번째 의미에서 헤세드는 인자, 자비, 사랑, 두 번째 의미에서 헤세드는 성실, 신뢰, 변함없음 으로 해석됩니다. 구약의 헤세드의 언약이 신약의 새 언약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을 아가페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 구약의 헤세드나 신약의 아가페나 어찌 보면 상호 간에 언약을 신뢰하고 지켜야 할 상호신뢰와 쌍방 간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듯 하지만 아가페는 자기 목숨을 친구를 위하여 내어주신 사랑이라는 점에서 결코 깨어질 수 없는 언약입니다. 헤세드의 본질 또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린 자기 희생적 사랑과 장차 오실 어린양 (예수님)을 번제물로 죽어야 할 이삭의 대속물로 맞바꾸신 하나님의 자기(독생자) 목숨을 내어주신 사랑이 만나 맺어진 언약이므로 결코 깨어질 수 없는 맹세가 되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맺은 언약은 이처럼 하나님의 헤세드와 그 자손 가운데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이 기초가 된 언약이기에 결코 깨어지지 않을 언약이고 최고의 법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법은 사랑입니다. 헤세드의 언약을 체험하고 언약관계에 들어간 사람은 옳고 그름을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인자, 자비, 사랑, 성실, 신뢰, 변함없음이 그 내면과 삶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최고이고,사람 살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선한 거짓말도 할 수 있습니다. 나치 시절 내 방에 유대인이 숨어들어왔다면 뒤따라 들이닥친 게슈타포에게 ampldquo내 방에 유대인이 숨어 있다amprdquo고 참말 하는 것이 악이요, ampldquo들어온 자가 아무도 없다amprdquo고 거짓말 하는 것이 선일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 기준이 되니 우리나라에도 정쟁이 끊이지 않고 이혼소송과 가정불화, 노사분규, 좌우 이념대립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기준이 되고 사람 살리는 것이 목표가 될 때 이기심에 기초한 옳고 그름의 갈등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 통합과 가정통합, 사회통합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기심을 기초로 이루어 지고 자기 유익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결국 옳고 그름을 따지다가 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 또한 저의 이기심을 좇아 학벌과 지연과 혈연을 앞세우며 살다가 결국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고 말 죄인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자기에게 유익이 되냐? 손해가 되냐? 자기 편에, 자기 가족에게, 자기 지역에, 자기 정당에 유익이 되냐 하는 이기심이 기저에 뿌리박혀 있습니다. 제가 자기를 뛰어넘는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말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기를 기도합니다.
화를 내는 사울
사울은 요나단이 다윗을 대변하는 말을 듣자 화를 내었습니다. 그의 본심을 어떻게 드러냈습니까? ampldquo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발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할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여야 할 자이니라.amprdquo하였습니다. 그가 왜 이토록 분개하였을까요? 첫째 자기 아들이 자기 편을 택하지 않고 다윗 편을 택한 것을 분개하였습니다. 둘째는 그는 자신의 정권을 당대에도 유지하기 원하였지만 자기 장자인 요나단이 자신의 왕위를 계승하여 사울 왕조를 이어가기를 바랬는데 이 요나단이라는 놈이 속도 없이 다윗에게 자신의 왕위를 헌납하려고 하는 것에 분개하였습니다.
그가 이 선택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가 되리라'고 한 말은자식을 끔찍이도 생각해서 나온 말같지만 자식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고 자식의 수치를 자신의 수치로 여기는 지독한 사울의 자기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기심과 상처받은 이기심에서 폭발하는 분노와 증오와 혐오를 느끼게 해줍니다. 이때 요나단은 어떻게 항변하였습니까? ampldquo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amprdquo하고 자기 아버지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던졌던 단창을 들어 요나단에게 던져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아마 곁에 있던 아브넬이 사울의 팔을 붙들어 강하게 제지시키므로 던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변호하는 자기 아들마저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내밀한 분노와 이기심이 광기로 폭발하는 것을 보자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게 되었습니다. 심히 노하여 식사자리를 박차고 식탁에서 떠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같이 먹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습니다. 그가 들은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이라는 욕은 사실 아버지가 이새의 아들에게 퍼붓고 싶은 말인데 다윗을 싸고 도는 자기 아들에게도 싸잡아 퍼붓은 것입니다. #039왜? 아버지가 사위인 다윗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하고 증오하는가?#039 그 이기심과 증오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요나단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고 증오와 살해의 타겟이 된 다윗이 한없이 불쌍하여 슬퍼했습니다.
이처럼 한없이 이기적인 아버지에게서 한없이 이타적인 아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逆(역)으로 한없이 선한 아버지에게서 한없이 극악한 아들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구속사입니다. 누구는 진노의 그릇으로 지어져 쓰임 받다 토기장이의 손에 붙들려 깨어지고 누군가는 영광의 그릇으로 택함을 받아 쓰임 받습니다. 그러나 깨어질 수 밖에 없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존재할 수조차 없는, 악하고 음란한 죄인이라는 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내 그릇 안에 가득한 자기 죄를 보고 덜어내는 회개의 적용만이 나의 빈 그릇에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공과대학 4학년 2학기 중에 소천한 장남을 생각할 때 사울같이 표리부동하게 그를 양육했던 저의 죄를 보게 됩니다. 장남 명철이는 어렸을 때부터 심성이 착하고 여려 약한 사람들을 잘 챙겨 다리가 불편했던 할머니와 가족들이 외출할 때면 아들인 저는 앞서 가고 장 손자인 초등학생 명철이가 할머니 손을 붙잡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저는 장남이 똑 부러지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그가 가족 외출 때 사소한 불평을 하며 고집 부리면 사정없이 등짝을 때리거나 성탄 행사 때 초등학생 태권도 시범에서 품새를 성의없이 하면 복도에 불러 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부인하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한다고 사정없이 등짝을 때렸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으로 양육한다 인성을 중시한다며 학교 성적으로 야단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아들이 공부 잘하여 세상에서 성공하고 결혼 잘하여 신앙 명문가를 이루기를 바라는 기복의 가치관으로 가득찼기에 하나님이 아들을 손보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은 중학교 3학년때부터 일탈하기 시작하여 '매가 미련한 것을 쫓아낸다'는 잠언 말씀을 읽어주며 야동을 끊기 위해 ampldquo몇 대 맞을래?amprdquo 하는 저의 물음에 아들이 8대 맞겠다고 하자 ampldquo하나님의 백성(12지파, 12사도)이 되기 위해서는 12대를 맞는 것이 좋겠다amprdquo며 혁대 버클이 풀어져 몸에 박힐 정도로 정신없이 채찍질하여 아들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고1 때는 가수가 되겠다며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를 공부 책상 유리 깔판 밑에 끼어 놓은 것을 꺼내 방과 후에 자기 방에 누워 자고 있는 아들을 사정없이 둘둘 만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로 때려 아들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고 2때도 가을 수양회 가기 싫다는 아들을 아빠도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있어 직장가기 싫어도 자기를 부인하고 가고 있다며 자기 부인하고 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고 억지로 독려하여 수양회에 같이 갔는데 수양회 내내 말씀을 인도하는 고등부 목자님을 쏘아본 이후 아들은 더 이상 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겸상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대학을 아버지와 가장 떨어진 지방대학에 가기위해 고3 내내 책상머리에 앉지 않자 아들과 말도 못 붙였던 저는 철야 기도를 무리하게 하다 업무기간에 깨어있기 위해 객장에 비치된 고객용 사탕을 주구 장창 먹다가 당뇨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군대 가서 하나님을 만나 극적으로 관계가 회복되었고 제대하고 인도(India)에서 열린 대학생 수련회에 참석하여 성령 체험도 하였지만 친모가 우울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니 친모를 고쳐보겠다며 증산도에 속아 많은 공물과 기도를 바치기 위해 가출을 한 상태로 저를 속여 많은 돈을 뜯어 갔습니다. 엄마 소천 후 새 엄마의 권유로 저와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깊이 영접하고 한달 정도 조현병 고통을 하나님께 기도로 호소하다가 소천하였습니다. 소천한 아들의 방황과 가출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똑똑하였던 둘째 동생과 막내 여동생이 신천지에 들어가 아들과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앙 명문가를 이루고자 하였던 내 속의 기복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자 구원의 사건이 되어 도저히 떠날 수 없었던 선교단체를 35년 만에 떠나 나의 사건을 해석해 주는 구속사의 말씀이 있는 우리들교회에 재혼한 아내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문득, 목장 모임을 하면서도 옳고 그름이 기준이 되고 여전히 내 유익과 이기심이 동기가 되어 갈등하고 있는 사울이 제 안에 살아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해달별이 떨어져도 죽지 않는 내 안에 사울을 볼 때 변하지 않는 나로 인해 자녀들의 구원이 지체 되어 여전히신천지에 다니는 것 같아애통한 심정이 듭니다. 주님의 긍휼만이 저와 자녀들을 살릴 수 있사오니 제게 주신 헤세드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ampldquo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amprdquo ampldquo다 이루었다(요 19:30)amprdquo 하신 십자가의 언약, 아가페의 언약으로 저와 자녀들을 살려 주옵소서. 자녀들과 지체들을 살려 주옵소서.
평안히 가라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아이에게 ampldquo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찾으라amprdquo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화살을 그의 위로 높이 지나치게 쏘았습니다. 아이가 요나단이 쏜 화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ampldquo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amprdquo고 화살이 떨어진 위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ampldquo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amprdquo고 외치자 아이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그 아이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내 아버지가 너를 죽이려 하는 의지가 확고하니 이제 네 앞 길을 찾아 떠나라amprsquo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요나단이 그의 무기를 아이에게 주며 ampldquo이것을 가지고 성읍으로 가라.amprdquo하니 아이가 갔습니다. 그제야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요나단에게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였습니다. 다윗이 심히 울었던 것은 그 화살이 사울에게 있었으면자신을 죽이려고 날아들었을 터였지만 요나단이 쏘았기에 자기를 살리고 본인 스스로는 죽음으로 몰아놓게 될화살이었음을 감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후계자, 두 왕은 있을 수 없기에 요나단은 훗날 블레셋의 활과 창에 맞아 전장에서 죽고 왕위는 다윗에게로 계승이 됩니다. 이런 헤세드의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요나단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북받치는 슬픔과 설움이 되어 울었고 자신을 위하여 왕위까지도 희생하는 그 사랑을 알았기에 고맙고 감사하여 세 번이나 절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이미 왕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기에 담담한 심정으로 다윗에게 ampldquo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amprdquo하며 주체할 수 없이 흐느끼는 그를 붙잡고 위로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었고 여호와 때문에 서로 사랑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영원히 계셨습니다. 그 결과 사울일족이 멸문지화를 당했을때도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거두어 왕의 식탁에서 평생 겸상하게 하였습니다. 열 지파가 다윗 지파인 유다 지파를 배반하여 북이스라엘왕국으로 독립했을때도 요나단의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만은 유다 지파에 남아 유다 멸망과 바벨론 포로시절과 귀환을 함께 하였습니다. 이 관계가 정점에 이른 것이 예수님과 바울의 관계였습니다. 원래 이름이 사울이었던 바울은 예수님을 극도로 혐오하고 미워하여 주 예수를 추종하는 이단무리를 죽여 이 땅에서 박멸하고자 혈연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 빛 가운데 나타나셔서 ampldquo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amprdquo고 물으셨고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빛과 음성 앞에 ampldquo주여 뉘시니이까?amprdquo 외마디 외침과 함께사울은 눈 멀고 고꾸라져 쓰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아나니아에게 주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눈을 뜬 사울은 바울로 거듭나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불살라 바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 가운데 계셨던 주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십자가 사랑으로 사울을 살려주시고 부활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거듭난 후 바울로 개명한 사울은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에게 유익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 되어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언약의 사랑을 알리고 그리스도께 뭇 영혼을 돌이키기 위하여 일생 달음박질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사울 같기만 한 제 안에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님 때문에 요나단 같은 사랑의 씨앗이 심겨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는 다윗을 향한 사울과 요나단 같은 상반된 양가감정이 있고, 내 안에는 여전히 사울도 있고 바울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심긴 요나단의 씨, 예수 씨가 불멸의 언약에 기초하여 심겨진 씨이기에 저도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이고, 어떤 내 안팎의 악에도 지지 않은 헤세드의 사랑의 언약으로 거듭났기에 저도 요나단처럼 바울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다른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로 자라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미 불멸의 언약의 씨 헤세드 언약의 씨가 지헌이 하영이에게도 모태로부터 유아기부터 대학시절까지 떨어져 심겼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와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회복될 것을 믿고 감사 찬송드립니다.
적용하기) 제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을 기초로 옳고 그름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긍휼과 구원의 관점으로 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