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3.토.사무엘상 14장 24-35절 여호와를 위한 제단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피곤케 하는 지도자
요나단과 그의 무기 든 병사가 단신으로 블레셋 적진으로 들어가 20명을 죽이자 블레셋 진영에 큰 두려움이 임하여 같은 편끼리 찌르고 쳐 죽이는 자중지란이 일어났습니다. 석류 나무 아래와 땅굴 속에 숨어 있다가 이를 본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투에 합류하여 기브아에서 벧아웬까지 지나가며 패주하는 적군을 쳤습니다. 이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떤 엉뚱한 맹세를 시켰습니까?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하고 저주 맹세를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하루 종일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숲 사이로 흐르고 있는 꿀을 보고도 사울이 시킨 맹세를 두려워하여 꿀 묻는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그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을 목격하고서도 내가 내 원수를 보복할 때까지 저녁때까지 먹지 않고 자신의 복수에 동참하지 않으면 저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에게는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하여 친히 싸우시는 싸움을 보고도 그동안 왕인 자신에게 수치와 치욕을 안겨주었던 블레셋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에 집중하느라 백성들이 얼마나 배고픈지 밥도 안 먹고 싸우느라 얼마나 피곤한지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지도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지도자와 함께 있을 때 백성은 힘들고 피곤해집니다.
행원 때 조용하고 인격적인 팀장이 있어서 마음에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업무시간에 펼쳐 놓고 열심히 읽고 있는책 제목이 내 부하 직원 100%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알고 그 밑에서 일하는 것이 정나미가 떨어지고 힘들게 여겨졌습니다. 내 등골을 빼서라도 자신의 성과와 성공과 승진을 위하여 나를 철저히 이용해 먹으려는 팀장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이 느껴져진저리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팀장 자리에 올라가니 저 역시 부하직원들의 약함이나 부족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철저히 부려 먹고 성과만을 창출하려는 소통이 안 되는 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경영평가 상위권에 들기 위해 일 못하는 기업대부 담당 여직원을 독려하고 닦달하니 여직원이 울먹이며 지점에서 나가 몇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는 일이 생겨 하나님 앞에서 저의 교만을 회개하며 몇 번의 통화 시도 끝에 전화로 사과를 하며 어서 돌아오라고 설득한 적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근무 지점에서는 지점 환경 개선에 꽂혀 서무 담당 직원들에게 끊임 없이 개선 사항을 지적하고, 특히 청소하는 여사님에게는 화장실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남자 화장실 변기를 제가 어떻게 닦냐?는 여사님 앞에서 직접 호스로 물을 뿌리며 솔로 닦는 시범을 보여주며 여사님을 피곤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완벽주의와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심이 충만하니 제가 과거 선교단체 시절 대학생 제자 양성 사역한다면서 자녀들을 돌보지 않고 예배와 수련회 참석과 성경 공부와 모시고 있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께 대한 순종을 강요하니 자녀들이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안 들었어도 이미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숨 막혔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천한 장남 명철이가 중3 때, 퇴근해 돌아온 제게 집 건너편에 있는 연대 운동장 가서 축구하자고 하였을 때 피곤하니 다음에 하자고 하면서도 그가 밤새 야동 보는 것을 끊게 해주겠다며 혁대 버클이 벗겨져 온 몸에 찍히도록 정신없이 채찍질하기도 하였습니다. 고1 때는 가수 되겠다며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를 공부 책상 유리 깔판 밑에 깔아놓은 것을 꺼내 둘둘 말아 낮잠을 자고 있던 장남을 사정없이 때려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소천한 전처를 캠퍼스 제자양성 사역을 위한 동역자로만 여기고 끊임없이 제자양성과 제자들을 잘 돌보도록 독려하므로 숨 막히게 하였습니다. 이런 결과로 해달별들이 떨어져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씀을 유튜브로 듣고 전처, 장남 소천과 둘째 아들, 막내딸이 신천지 들어간 사건으로 해체되고 재혼한 가정을 중수하고자 우리들교회에 오고 신대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기적으로 살지 않고 이타적으로 사는 것이 십자가 지는 적용이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이 거룩과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삶이라는 말씀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저의 관심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명성과 부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을 향하고, 아름다운 이성의 외모에 여전히 마음이 끌리는 속물적인 속성이 여전히 제 안에 남아있습니다. 목장에서도 연약하고 부족한 지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어떤 사건이 생겨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유익 편에서 해석하는 것이 전자동으로 작동됩니다. 저야말로 백성을 피곤하게 하는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제가 나를 위하여 내 원수 갚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의 원수 갚는 이타적인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기도합니다.
눈이 밝아졌더라
한편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숲 사이를 흐르는 꿀을 보고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니 눈이 갑자기 환히 밝아졌습니다. 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하고 알려주었습니다. 이때 요나단이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육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고 탄식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식사도 거르고 열심히 싸워 허기졌던 요나단이 꿀을 찍어 입에 대어 빨아 먹으니 순식간에 생기가 돌아와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복수 갚을 때까지 먹지 못하게 저주하여 백성이 피곤하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이 땅을 곤란하게 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탄식합니다. 저주로 먹는 행위를 금하고 백성들을 피곤하게 할 때 이 땅도 곤란을 겪게 된다는 통찰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이후 짐승을 피 채 잡아먹는 저주스런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 온 백성이 피곤하고 이 땅의 피조물 전체가 곤란을 겪고 탄식합니다(롬8:19~22).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막둥이로 자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이 몸과 정신에 베여 있는 죄인입니다. 제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4) 말씀 앞에 깨어져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교만하고 정욕된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후 사명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처럼 저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정욕적이고 욕심많고 교만한 성품이 끊임없이 제 주변의 가족들과 지체들과 동료들을 괴롭게 하고 이 땅을 곤란하게 했음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제가 매 순간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생각과 선택을 하는 것이 십자가에서 죽고 저 자신과 제 이웃과 이 땅을 살리는길임을 알고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겠습니다.
처음 쌓은 제단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하였습니다.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 채 먹었습니다. 백성들이 너무나 배가 고파 레위기 17:12, 14에서 금하신 규례를 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노라,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백성 중 한 무리가 사울에게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 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고 고발하였습니다. 이에 사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사울은 자신이 믿음이 없이 행한 결과로 이 모든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백성들이 믿음 없이 행했다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그리고 큰 돌을 굴려 와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 채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았습니다.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습니다. 사울이 제단을 쌓은 것은 왕이 된 지 몇 년 뒤에 쌓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택하심 받고 부르심 받은 것에 감사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구원자로 쓰임 받았을 때도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지금 감사의 제단을 쌓았다고 하나 이것은 자기가 직접 은혜를 체험한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말미암아 은혜를 체험하였고, 아들이 나서기 전까지는 졸보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지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마지못해 제단을 쌓은 느낌이 듭니다. 이 사건 이후 사무엘상 15장 12절에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말렉과의 전투승리를 철저히 자신의 공로로 돌리는 사울의 모습을 통해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높이는 자라는 것이 만인 앞에 드러납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분의 영광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나 자존적으로 교만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옳음과 나음을 드러내고 자신을 높이고자 합니다.
이런 사울의 자존적 교만이 제게도 있습니다. 제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진리임을 알면서도 교만한 본성 때문에 잘 안됩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여드리는 것이 예배임에도 저는 사울처럼 어설픈 예배중독자가 되어 예배 이전의 삶과 예배 이후의 삶이 달라지지 않고, 예배와 예배 후의 삶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교회에 와서 인사부 블랙리스트를 깨고 부지점장 승진도 하였고, 신천지에 빠졌던 장인 어른도 돌이켜 구원받고 천국에 가셨고, 장모님도 작년 초 신천지에서 자진 탈퇴하시고 온라인 예배를 회복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성령의 광풍, 성령의 안심, 성령의 기다림, 성령의 구조 말씀이 연달아 선포된 주간에 양도세 체납 과태금을 5천만원 통보받고, 50만원으로 경감받은 일은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들 호에 구원 받은 죄수의 일원으로 승선시켜주신 구원의 사건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심하라 말씀을 들었어도 아들과 딸이 신천지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때문에 온전한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예배중독자가 되어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강요해 온 가정예배를 담임목사님의 요한계시록과 로마서와 마태복음 강해안 시리즈를 읽고 나름대로 풀어 강해하며, 적용 질문하는 것으로 스스로 아비로서 할 일 다 한 것처럼 자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가 강해 안을 읽고 준비한 말씀 앞에서 철저히 깨어져 회개하여야 함을 인정합니다. 제가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이 될 때 자녀들에게도 말씀이 들려 온전한 예배자로 서게 될 것을 믿고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가정 예배 말씀과 적용 질문을 주일 저녁 9시 가정예배 시간에 촉박하게 준비하여 오늘도 해치웠다는 식으로 예배드리지 않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미리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