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탄생일까요? 자식고난의 시작일까요?
작성자명 [정브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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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5.12
일대일 양육 과정 제 1과 생활 숙제인 간증문을 아직 제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 년 전에 이 큐티나눔을 통해 오픈 해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시작만 해놓고는 더 이상의 기억조차 너무 벅차고 힘들고, 영육의 폐부를 마구 찔러대는지라 다음에 계속하지!! 멈추곤 했었던 터 이기도 합니다.
제 양육 교사이신 오중완 집사님이, “천천히 하세요. 양육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하신 덕분에 벼르고만 있어 왔지요.
제 6과 생활숙제 <지금까지 기도응답 받지 못한 기도의 제목 중 그것이 응답이라고 깨달아진 것 써오기> 에 이렇게 답을 썼습니다.
‘자살에 대한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께서 친히 내 아이들을
내 정신적 철권과 무수한 발길질 속에서
되돌려 온전히 빼앗아 가지 않으셨다면
아이들의 강한 성격으로 보나 배경으로 보아
그 애들의 갈 길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었음을
형형히 보여주시는 것이었지요’
그 다음 다음날 큐티 구절 속에 “여호와께서 갈 길을 보여주신다”
그렇게 적혀 있질 않습니까, 글쎄?
이 간증문 꼭 끝내서 제출하라는 명령이신가 봐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나의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나의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이 이러하거늘 내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숨을 헐떡대며 찾아간 광화문 교보문고에선 책이 동이 나 있었어요.
로스쿨 입학 에세이 쓰기 교본으로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데다가
마침 한국에도 로스쿨 제도가 태동하기 시작했으므로
이 “하바드 로스쿨 에세이 책”이 더욱 핫케익처럼 불티나게 팔린다는
외서 담당자의 설명이었습니다.
컴퓨터로 조회해보더니, 강남점에 몇 권 있다고 그리 가보라 합니다.
세 권이 딱 남아있었어요.
얼른 한 권을 집어 들어 목차를 훑어봤지요.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잠시 파르르 떨려요.
노을이의 이름을 찾아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54쪽에 그 애의 에세이가 실려있었거든요.
다음으로 시작되는 글에는
동부에서 태어나서 여덟 살에 서부로 이사 가, 거기서 자라나면서 이뤄낸 제 자신의 업적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 상세히 (평을 쓴 하바드 사정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painstakingly’)
묘사해놓고 있었습니다.
I grew up in a small town in Eastern Washington. As a preteen making the social rounds in junior high, I began supplementing my academic diet with classes at three local colleges. By the time I was thirteen, I had garnered enough credits to earn an associate-of-arts honors degree with a 4.0 GPA from Walla Walla Community College. I was nominated for student speaker at graduation. But the school’s nominating committee, fearing that my exceptionally young age would upset the “traditional” student population, rescinded that nomination.
Though I realized that my relative youth and inexperience might continue to cause many such setbacks, I decided to use this situation to my advantage. I put off graduation to spend another year exploring all the disciplines the school had to offer. I also campaigned for the seat of associated student body president, declaring that my age made me no less capable of fulfilling the duties of the office. To everyone’s surprise, I won the election. I then went onto serve the five-thousand-plus student body in a position of leadership that allowed me to contribute to the school community on a scale I could not have achieved otherwise.
(나는 동부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났다. 틴에이저가 되기도 전에 나는 중학생 신분으로 근처에 있는 3곳의 대학에 다니며 일찌감치 내 왕성한 학문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13살에 왈라왈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4.0 만점으로 수석 졸업하며 AA 아너스 (Honors) 학위를 받게 되었다. 졸업생 대표 연설자 후보로 뽑혔으나, 너무 어린 아이가 다른 “어른” 학생들의 대표연설을 하면 그들의 심사를 언짢게 할까 걱정스러운 학교 관계자들이 퇴짜를 놨다. 내 어린 나이와 미숙한 삶의 경험이 내가 살아갈 동안 언제나 장애물로 나를 주춤거리게 할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경험이었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졸업을 일단 멈추고 AS 학위를 1년 안에 더 받기로 작정했다. 그 뿐 아니라 총 학생회장에 출마 하기로도 마음먹었다. 내 어린 나이가 학생회장 임무를 수행하는데 전혀 지장이 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고,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래 키며 드디어 나는 5천명이 넘는 대학의 총 학생회장에 당선 되었다. 나는 그 1년 동안 학문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엄청난 경험과 리더십을 배우게 된 것이다.)
천재의 탄생일까요?
자식고난의 시작일까요?
노을이가 제 손으로 설명한 저 같은 상황을
저는 제 관점에서 이렇게 보았습니다.
2007년 2월 11일 큐티 나눔에 “심장 속에서 폭발하는 미가서 QT” 라는 제목으로 올렸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