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고자 하는 어제와는 다른 길...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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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1.03
내가 가고자 하는 어제와는 다른 길...<마>2;1~11
어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길을 가고자 합니다.
그 길은 좁은 길이요,
그 길은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 일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소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소동합니다.
술집 등 환락가와 유흥가에서 발 빠르게 소동합니다.
요란한 트리가 장식되며 케롤송이 교회들보다 한 발 앞서서
먼저 거리를 차지합니다.
많이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자고 맹렬하게 타락을 부추깁니다.
산타가 주인공이 되고 루돌프 사슴 코가 발갛게 이벤트로 등장하고
대형 백화점과 작고 큰 마트들이 앞 다투어 상술을 발휘하며 소비하라고 충동합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거리거리를 뒤덮고
어둠의 타락한 문화가 사람들을 공연히 들뜨게 하고
십자가 사랑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질 나쁜 밤의 문화는 안방에까지 침투하며 소동합니다.
나도 한 때는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예전의 어제 나의 발걸음은 분명 그 길을 향해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길과 장소를 향하여
황무한 이 땅에 거룩한 부흥을 허락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어제의 그 곳과는 분명하게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를 통해 비추어진 영적인 반응은 확연하게 구별됩니다.
1,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10절)
2,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함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11절)
3,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가니라.(12절)
그랬습니다. 주님!
예전의 그 길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하게 다른 길이었습니다.
믿기 전에 행하던 그런 삶의 길이 아니고
내 안에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매 그 분께 경배하고 구별된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주님! 저의 입술로 고백합니다.
그 길이 좁은 길임에도 저는 그 길이 좋습니다.
구별된 길이요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좋습니다. 라고
그것은 또
내 삶의 주인공이 바뀌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고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친 마리아가 먼저 등장하지 않고 아기 예수님이 먼저 등장하십니다.
<아기와 모친 마리아~!> 11절 한 줄이 아니었습니다.
13절, 14절, 20절, 21절에도 반복해서
주인은 아기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삶의 중심이 예수님이시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가는 길이 어제와는 다른 좁은 길이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친도, 헤롯도, 동방박사도, 세상도 주인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동방박사가 몇 명이었느냐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 어디에도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냥 박사들이라 했지...
아마 드린 예물이 세 가지여서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라고
그렇게 추론하여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비본질적 요소는 관심이 없습니다.
본질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가 가야 할 그 길은 세상과는 분명하게 구별 된 다른 길이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그 다른 길은 좁은 길이기에...
십자가의 그 길은 좁은 길이지만 내 영혼이 소생하는 길이요
궁극적으로는 본향에 이르는 길이기에
어제와는 다른 좁은 길을 사모하며 걷고 또 걷겠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