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6.토.사무엘상 10장 1-16절 새 사람이 되리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기름부음 받는 사울
사환을 앞서 가게 한 후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 맞추며 ampldquo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amprdquo고 선포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경우는 기름부음으로 제사장직을 위임하는 경우였습니다(출 29:29). 그런데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기름을 사울의 머리에 붓고 ampldquo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셨다amprdquo고 선포하였습니다. 이 기름부음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기름은 출30:23-25에 의하면 유질 몰약 500 세겔, 육계(肉桂(⦗한의⦘ 5-6년 이상 자란 계수나무의 두꺼운 껍질《건위제ampmiddot강장제로 씀》)250 세겔, 창포(菖蒲,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잎은 창검같이 뾰족하고 길며, 초여름에 황록색 꽃이 남. 단옷날에 창포물을 만들어 씀. 못가나 습한 곳에서 자람.⦗한의⦘ 창포의 뿌리《건망증과 번민증에 약으로 씀)250 세겔, 계피 500 세겔 그리고 감람 기름(올리브 유) 1 힌을 섞어서 만들었는데,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직무수행을 위해 거룩하게 성별한다는 의미로 부어졌습니다.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하였고, 기름부음은 성령님이 그 사람 안에 임재하시고 내주하셔서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수행하신다는 의미로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업 이스라엘의 왕이신데 이제 사울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그의 기업의 지도자 역할을 대행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일을 하는 것도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면 감당할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큐티를 하는 것도 내가 말씀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임하사 나의 영혼에 기름부으실 때 말씀이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발견과 죄 고백을 통한 회개, 말씀에 대한 믿음도 성령님께서 기름부으실 때 비로소 사람의 인위적인 행위가 아닌 성령님의 역사로 열매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구원자가 되셨다는 믿음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부어주지 않으면 인간으로서는 깨달을 수도 믿을 수 없기에 기름부으심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필요불가결합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7).'기도도 봉사도 기름 부으심으로 해야 하고, 내 힘과 지혜와 열심이 동기가 되어서는 ampldquo내가 했다!amprdquo는 자기 자랑의 악한 열매 밖에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목장에서 나눔을 할 때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를 높이고 세우고 자랑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지체들의 나눔이 한없이 말씀과 동떨어져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과연 이런 나눔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제가 기름부으심을 구해야 할 순간이지요. 성령님께서 기름 부어 주실 때 저의 나눔과 지체들의 나눔을 바로 잡아 주시고 말씀에 따른 올바른 적용으로 이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 가지 징조
사무엘은 사울을 기름 부어주면서 기름 부음에 따른 세 가지 징조가 따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기름 부음이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성령님께서 사울의 삶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심을 말해줍니다. 기름 부음은 사울은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킵니까? 또 우리 삶에는 어떤 역사를 일으킵니까?
첫째, 사울은 사무엘을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설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사울에게 ampldquo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amprdquo하는 소식을 듣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냐민 경계 설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잃어버렸던 암나귀들을 찾았다는 것은 라헬의 직계 후손이었던 베냐민 지파 사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라헬은 뛰어난 미모로 야곱을 사로잡은 외모와 남편과 자식을 최고로 여기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베냐민을 낳다 ampldquo슬픔의 아들, 베노니로 하라amprdquo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슬픈 종말의 어머니었습니다. 사울도 라헬 못지 않은 외모와 큰 키가 자랑이 된 외모지상주의자요 인정중독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와 인정중독 같은 세상 자아가 죽어야 잃어버렸던 암나귀같은 잃어버렸던 생명이 회복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내게 성령이 임한 구체적인 증거는 외모지상주의, 인정중독 같은 죽음과 상실의 병을 앓고 있는 옛 자아가 죽고 생명을 낳고 회복하는 가치관과 생각과 내면으로 자아가 새로 태어난 것을 통해 확인될 수 있습니다.
제가 세 자녀들을 성적으로 야단치지 않았고, 오직 신앙과 인성으로만 교훈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어 외모와 조건이 좋은 배우자감을 만나게 하려는 기복으로 가득하여 철야기도 심지어는 철야 산 기도를 2년 동안 한 외모지상주의자요 인정 중독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산당을 폐하시고자 막내 딸의 재수 수능 보는 전 주 토요일에 전처 소천을 허락하시고, 동시에 둘째 아들 지헌이와 막내 딸 하영이가 이단에 빠지는 사건, 연이어 장남 명철이가 소천하는 사건을 허락하신 것이 인정이 됩니다. 일대일 양육받고 있는 아내 송경희 집사님에게 담임목사님의 구속사를 설파하다가 목장 모임 후에 여전히 한강, 임윤찬, 봉준호 같이 세상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이나 세계대학랭킹을 조회하기 좋아하는 제가 철저히 외모지상주의와 세상 인정과 타이틀에 물 든 속물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런 때는 제가 성령받은 자, 기름부음받은 자 맞나? 하는 부끄러움이 듭니다. 제가 외모와 세상의 인정을 중시하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회개하여 버리고 사람 살리고 회복하는 구속사의 관점을 가지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내 우상이 죽고, 산당이 폐하여질 때 암나귀처럼 이단의 숲에서 방황하는 자녀들이 돌아오게 될 것을 소망하고 기대하고 확신합니다.
둘째, 사울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러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는데 각각 염소 새끼 셋과 떡 세 덩이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지낸 자들인데 그들이 사울에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들은 벧엘로 제사 드리고 예물을 제사장에게 바치러 가는 일행들이었는데 그들이 사울이 스스로 선전하지도 않았는데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예물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사람은 ampldquo나,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종이야amprdquo하고 스스로 자랑하고 드러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대접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ampldquo이래 봬도 나,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야, 나한테 까불면 다쳐amprdquo하며 자뻑하는 자들은 자아도취에 빠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교만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름부음은 평범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 설레발친다고 드러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제가 과거에 이렇게 ampldquo나,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야. 나 건들면 다쳐!amprdquo 하며 속으로, 은연중에기름부음을 자랑하며 교만을 떨었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셋째, 그 후에 사울이 하나님의 산에 이르는데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울이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때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여 그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 있을 때 원수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가까이 있는데도 하나님의 산에서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고 내려올 수 있게 됩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선포할 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여 사울도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한다는 것은 주님의 기름부으심이 철철 넘쳐흐른다는 의미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기름부으심이 크게 임할 때 말씀이 크게 깨달아지고 믿어집니다.
ampldquo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느니라(겔 1:3).amprdquo 말씀대로 적용할 수 있고 말씀을 누리고 나누고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육적인 사람이 새 사람으로 변하여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육신의 것을 사모하고 추구하던 사람이 영적인 것을 사모하고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 가지게 되고 이웃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039아버지 집으로#039전도축제에 꼭 오겠다고 다짐을 했던 신대원 임원진으로 같이 활동했던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원우께서 갑자기 추수감사절에 가족모임이 생겨 못 오시겠다고 하시면서 다음 초청 때는 반드시 오겠다고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 분 약속만 철썩 같이 믿고 있다가 초청이 불발이 되자 평소 전도 대상으로 기도하였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전화와 문자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약속이 있다거나, 사정이 있다거나, 종교에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지헌이는 아프리카 말라위에 UN-V(olunteer) 프로그램으로 1년 동안 가 있어서 집에 있는 하영이에게 ampldquo아버지 집으로amprdquo에 초청했지만 초청장을 방 밖으로 내 놓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구원에 관심을 갖고 칼 날 위에 물방울같이 살지 못한 결론임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최근 직장 다니는 하영이가 연락을 끊고 새벽에 귀가하는 일 2주 연속으로 있었습니다. 이번 주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옆 집 쪽문에 卍(만)字(자)와 핸드폰 번호가 큰 종이에 인쇄되어 붙여 있었습니다. 점집이나 개인 사찰을 시작하려는 듯이 보였습니다. 블레셋의 영문처럼 사단이 집 안밖에서 기세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QT 하면서 집 떠난 내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말씀이 눈에 들어왔을 때 하영이가 새벽 5시에 들어와도 묻지도 않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위기 의식을 느끼고 기도하니 저녁에 돌아와 옆 집 쪽문을 보니 붙여놓았던 卍字(만자) 써 놓은 A4용지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위기의 때, 문제가 생길 때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새기고 증거할 때입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기름부으심으로 크게 임하사 나팔소리처럼 들리는 말씀을 듣고 전하게 하시고 저와 제가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영혼들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역사가 일으켜 주십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ampldquo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amprdquo고 하였습니다.
새 마음을 주셨고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길갈에 앞서 내려가 7일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듣고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의 징조도 다 응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 순종하는 순간에 성령님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임하사 새 마음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듣기만 하고 떠나려고 몸을 돌이키지 않으면 절대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지만 먼저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족속에게 가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명령을 듣고 순종하여 가보지 않은 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항상 함께 하셔서 그 따르는 표적으로 내가 증거하는 말들을 확실하게 보증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새 마음은 말씀을 듣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듣고 적용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듣기만 적용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어 아무런 마음의 변화도 아무런 일상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선교단체에서 35년간 훈련받고 평신도로 사역도 하면서 말씀을 듣고 전하는 훈련을 많이 받았고, 목회학대학원 M.Div.과정에서 연구하고 전하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돌이켜 말씀대로 적용하지 않으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동일한 죄 고백과 회개가 반복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마음과 가치관이 여전히 외모지상주의와 성공지향과 세상 최고의 것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가 외모지상주의 성공지향, 세상 최고의 것에 대한 동경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서 돌이켜 말씀과 거룩과 구원을 사모하는 새 마음을 받고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는 평범한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기를 기도합니다. 은행식당에서 점심배식기다릴 때, 출퇴근 통근 때 뉴스 검색과 유명인들, 대학평가 순위 검색을 절제하고 자제하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출퇴근 통근 때나 대학원 통학 길에 핸드폰 뉴스 검색이나 유명 인물, 대학순위 검색을 자제하고 말씀이나 良書(양서) 한 자라도 더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