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심병
작성자명 [박영태]
댓글 0
날짜 2006.01.02
2006-01-02 마태복음 (Matthew) 1:18~1:25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의심병
“믿을수없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 하지 않는가?
성령으로 어떻게 아기가 태어 날수 잇단 말인가.
황당한 이야기다.
그것도 처녀가
.....................
.....................”
어느 성경 공부반에서 이 본문을 공부 하다가 계속해서 의심의 질문을 쏟아내므로 진도를 나갈수 없자 옆에서 가만히듣고만 있던분이
한마디 하여 논쟁을 잠재운 말은
… “지 서방이 괜찮다는데 니가 왜 생 난리고” 이다.
이 일을 곰곰히 생각할 때에
의심이란 중대한 병이 되기도 함을 묵상해본다.
누군가 말했듯이 사람의 의심은 까도 까도 다마네기라나(양파)
한번 의심하게 되면 힘든 관계성이 된다.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된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전지 전능에 해당 되지않는가.
의심병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속에 나타나서 관계성을 악화 시킨다.
지난주 목요일 아들의 테니스 토너먼트가 있었다.
4강에서 1살 위인 선배와 대결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결승전 보다 더 큰 고비가 될거라고 예상 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경기가 잠시 연기된 틈을타서 아들이 좋아하는 subway 에서
간식을 준비하러 갔다. 그리고 연습 파트너인 친구 Nick 것도 함께 준비하면서 잠시 망설였다.
아들이 싫어 하는 오이가 큰 빵 사이로 막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음식을 골고루 먹지않고 토마토도 빼고, 올리브도,피컬도 빼다보니 속이 부실하기에
친구와 함께먹는다면 아빠의 체면을 위해서도 먹어 주리라는 나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나의 생각이었다.
친구는 댕큐 영 하면서 감사하게 잘먹는다. 아무리 나이차이가 나더라도 조금만 친하면 이름을 마구 부르는 이들의 습관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나 보다 이제는 .
그러나 아들은 빵 사이에 들어 있는 오이를 일일이 꺼집어 내어 디스꺼시팅 을 연발한다.
그리고 훈계도 하는데 오이 싫어하는것 아직도 모르느냐고 야단까지 친다.
하고 싶은 말은많았지만 시합을 코앞에 두고 기분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결국은 자기 실력도 발휘 못해보고 첫세트를 그냥 내주고 말았다. 틈틈히 알려준 정보와 준비 사항이 물거품이 된 순간 마음속엔 아들에 대하여 화가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모를 대하는 태도는 불손 그 자체다. 경기를 진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교만한 마음과 부모에 대한 무시함 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큐티 본문도 영 마음에 안들었다.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시작하는걸 봐서
패배를 감지 못한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에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반드시 고쳐야 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발동을 하였다.
아버지의 마음은 아들에게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게임을 진후 부모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죄송합니다. 다음에 더 잘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더 큰소리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빠는 코치가 아니라는 말은 인정하겠는데 이민올때 사고가 키위를 닮아가는것 예상못했냐 라는 질문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기에 부모에게 무례하게 해도 당연 하다는 논리인데 이것만은 용서가 안된다.
어디까지나 한국 사람이고 한국사람의 예의를 배워야 하기때문이다.
아내도 같은 생각인지라 아내의 지원을 받아
바른교육의 이름아래 결국은 폭언과 조폭의 흉내도 보여주었다.
사실은 좋은 말로 타일러도 되는 일이지만 경기에 임하는 자세나 게임을 진것에 대해 더 화가 났다. 나쁜 습관이 생기는것도 염려가 되었다. 자기보다 못한 닉은 18세 이하에서 결승전 까지 갔지만 너는 16세 이하에서 겨우 4강이냐?...c 벌렁 c 벌렁...쭝얼 중얼......
아들생각은 작은 토너먼터에서 진것 때문에 뭐 그리 대단하다고
실망했다니 심각하다니 함부로 말 하지 말라는것이다.
코치와 다 이야기 했고 진 이유도 다 알고 있단다.
아 그래 내가 믿어 줄께 라고 화답 해야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의생각은 2년 전에 애기 했던걸 아직도 고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소위 나의 의심병은 멈출줄 모르고 계속해서 아들을 공격 한다.
큐티 앞에 서는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라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지난 한해 동안 말씀의 막대기로 수없이 찾아왔고
택한 지체들을 많이 너에게 보냈는데 .....
너도 마찬가지가 아니니?
그날 이후 난 아이에대한 지나친 관심을 버려야 함을 느꼈다.
그길이 내 하나님, 내 하나님이 말씀의 지팡이로 찾아오셔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길임을 알게 되었다.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버려야 할 것도 적용 해봅니다.
작년 한해 동안도 주의 막대기는 수시로 찾아오셨다.
푸른초장으로 인도하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이 눈물겹다.
나의 아들은 아버지인 나의 사랑을 싫어 하니 어쩌나
나의 막대기가 효과를 잃은것 같다.
올해는 나의 막대기를 접고
하나님의 막대기나 몽둥이를 빌려 사용 해야겠다.
마태복음 1장의 낳고 낳고…를 묵상하면서
새해에는 새롭게 변화되어야 하는 모습 중에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적인 나의 말이 아니라 말씀이 되어야 한다고 적용해본다.
영적인 아들로 다시 낳기 위해서다.
그리고 좀더 순수해져서 말하는 그대로 믿어주는 것도
나의 작은 변화가 되어야겠다.
의심병도 습관이 들면 중병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