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9.토.예레미야 22장 20-30절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어떤 멸망을 선포하십니까? ampldquo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라amprdquo고 하십니다. 레바논은 헬몬산 기슭으로 백향목이 수종을 이루는 이스라엘 최북단 국경지대를 말합니다. 바산은 골란 고원으로 유명한 해발 770㎡의 고지대로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과 아르묵강에 둘러싸인 초원이 펼쳐져 있어 최상급 암소를 방목하여 기르는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아바림은 느보山(산)과 비스가山(산)이 있는 요단 동편 산맥으로 그 아래 펼쳐진 요단 건너 가데스 바네아는 오아시스로 유명합니다. 세 곳에 올라가서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다고 선포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레바론産(산) 백향목과 바산의 암소 스테이크와 가데스 바네아의 오아시스는 유다가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었고 유다가 사랑하는 最高峰(최고봉)의 것들이었습니다. 동남북으로 둘러싼 높은 산과 고원과 산맥이 유다를 지켜줄 천혜의 방어벽이라고 믿고 의지하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던 최고봉에 올라가 그것들을 사랑하던 유다가 다 멸망당하였다고 선포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들에 대한 멸망의 선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멸망을 선포하시는 이유는ampldquo네가 평안 할 때에 내가 네가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다amprdquo는 것입니다. 백향목 집에서 암소살을 뜯으며 食後(식후)에는 오아시스 속 해먹에 누워 평안함을 즐기니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amprsquo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ampldquo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amprdquo고 하십니다. 어렸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출애굽 직후 광야에서 배회하던 40년을 말합니다. 어렸을 때 이스라엘의 주제가는 조금만 고난이 와도 ampldquo애굽에 있을때가 좋았어~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amprdquo였습니다 물이 없으면 ampldquo목말라 죽겠다~amprdquo 길이 험하면 ampldquo힘들어 죽겠다~amprdquo 식물성 음식만 질리게 먹으면 ampldquo애굽 부뚜막에 앉아 후추 뿌려 마늘과 함께 쌈 싸 먹은 고기가 그립다~amprdquo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는 ampldquo네피림 거인족 앞에서 우리를 장사지낼 일 있냐~ 애굽으로 돌아가자~amprdquo고 끊임없이 불신,불평,불만,원망을 쏟아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었습니다. 고난이 있는 광야가 말씀이 들리는 구조인데 온몸과 마음으로 평안과 기복을 원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안들리는 구조속에 거하기를 오히려 좋아했던 것입니다. 결국 어떤 심판이 임합니까? 기복과 평안을 가르치는 ampldquo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amprdquo, 기복과 평안에 거하던 ampldquo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내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amprdquo고 하십니다. 주님은 ampldquo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amprdquo 부르십니다. 그들은 레바논에 살면서 튼튼하고 향기 나는 백향목 팬션에 거하며 삶의 여유와 만족을 즐겼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백향목에 깃들여 사는 새 같다amprsquo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ampldquo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amprdquo고 탄식하십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보이스가 아닌, 귀와 마음에 거슬리는 사운드로 듣는 그들의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는데 그 고통이 해산한 여인에게 임하는 고통같은 고통이라고 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를 사랑하는 보이스로 듣지 않고 귀에 거슬리는 사운드로 듣는 것이 저의 어릴 적부터 좇았던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세상 자랑을 추구하는 기복과 성공과 쾌락주의 가치관에 절어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지난 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자 동향, 동문이 노벨상을 탔다며 유튜브 동영상과 인터넷 뉴스 백향목에 깃들여 인정과 대리만족의 단물을 쪽쪽 빨며 평안과 자족에 거하였습니다. 때마침 모교에 개교이래 처음으로 터진 입시문제 사전 노출사고는 하나님보다 여전히 세상 인정과 명예와 쾌락을 사랑하는 제 악 때문에 생긴 수치와 욕임을 고백합니다. 또 거리나 지하철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이성에게 눈길이 가는 제가 얼마나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기를 좋아하는 새 대가리 같은 자인지, 그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해산하는 고통과 같은 고통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모르는 자인지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제가 세상의 인정과 여성의 외모보다 성경말씀과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에 더 관심갖고 집중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사운드가 아닌 하나님의 보이스(음성)로 듣고 즐거워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고니야에 대한 심판
여호와의 말씀은 이제 여호와의 사심으로 유다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에게 어떤 심판을 선포하십니까? ampldquo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amprdquo고 하십니다. 오른손의 인장 반지는 왕의 손가락에 끼는 어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ampldquo내가 네 자손이 이스라엘 가운데 영원히 다스리게 하겠다amprdquo는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이언약의 촛불을 꺼뜨리지 않으시기 위하여 얼마나 노심초사하셨는지 모릅니다. 므낫세같이 선지자를 톱으로 썰고 우상에게 인신제사를 봉양하던 극악무도한 왕도 회개하면 다윗과 맺은언약을 기억하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런데 ampldquo고니야는 내 오른손의 인장반지라도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두려워하는 자의 손에 줘어 줄 것이라amprdquo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그 아버지 여호야김의 아들이라고 아버지의 이름을 특별히 거명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여호야김이 예레미야가 쓴 하나님의 심판이 담긴 말씀의 두루마기를 서기관이 읽을 때마다 한 장씩 찢어 불쏘시개로 쑤셔 넣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고난의 말씀을 온 몸과 마음과 영으로 증오하고 거부하는 악의 표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쇠사슬에 묶여 감금당하였다가 그 시체는 나귀처럼 열린 동굴에 내던져지는 심판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세운 여호야긴(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식으로 지어준 이름이 여호야킨임) 고니야(여고냐)도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다가 3개월 만에 바벨론 왕에게 재침공을 당해 사로잡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갑니다. ampldquo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으리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amprdquo는 심판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에 대한 고의적인 불신과 반발과 거역과 불순종을 얼마나 싫어하시고 미워하시고 분노하시는지 깨닫습니다. 네가 내 인장 반지라도 내 손가락에서 빼어내어서 네 생명을 찾는 원수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하실 정도로 철저히 심판하십니다.
저는 제가 선교단체에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우리들 교회에 와서도 말씀을 인격적으로 많이 받아 하나님의 언약의 인장 반지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내가 부족해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아도 정도가 심하지만 않으면 하나님이 언약대로 지켜주시고 넘어가 주시고 도와주시기도 할거야amprsquo 하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네가 내 인장반지라도 너를 빼서 원수에게 넘어주겠다고 하십니다. 제가 언약의 백성이라도 여전히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자라고 하십니다. 제가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이 저의 죄에 대한 무조건적인 면제부가 될 수 없음을 영접합니다. 제가 언약의 백성이기에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기 죄를 보고 회개하는 것이 저에 대한 언약을 이루는 참된 언약 백성의 길임을 알고 말씀 앞에 대면하며 자기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하는 적용하기를 기도합니다.
고니야 후손에게 임할 심판
주님은 고니야의 자손에 대하여 어떤 심판을 선포하십니까? ampldquo이 사람 고니야는 천하고 깨진 그릇이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의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amprdquo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고니야와 함께 바벨론에 끌려간 7명의 아들들은 거세를 당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는 환관이 되었고, 고니야는 바벨론의 옥에 수감되어 대가 끊어지는 수치와 욕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반전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흥망성쇄를 다룬 역대기하 마지막 25장 27~30절을 보면 ampldquo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37년 곧 바벨론 왕 에윌 무르닥이 즉위한 원년 12월 그 달 27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amprdquo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던 므르닥은 37년 전에 일어났던 유다정복과 포로로 끌고 온 유다 왕이 37년 동안 수감되어있는 사실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알았다 해도 별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옥에 있던 여호야긴을 풀어주고 바벨론의 제국 내의 모든 섭정왕들보다 높이고 죽을 때까지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학자들은 여호야긴의 복권을 이스라엘 회복의 사인으로 봅니다. 37년간의 수감생활은 하나님께서 여호야긴에게 주신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여호야긴은 어머니와 아내들과 딸들은 몸종이 되고 아들들은 환관이 되어 완전히 씨가 마르게 되자 이 모든 화를 자취한 자신의 악을 감옥 속에서 평생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를 육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대가 끊어진 그를 영적으로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마태복음1장 족보를 보면 요셉의 조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ampldquo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마 1:12)amprdquo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여고냐는 자신에게서 대가 끊어지자 먼 친척이었던 네리(솔로몬의 同腹(동복)동생 나단의 후손)의 맏아들을 양자로 삼았는데 그 맏아들이 죽자 그 동생이 형사 취수해서 낳은 아들이 스알디엘이고 스알디엘의 아들이 스룹바벨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의 자자손손에서 요셉이 나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 상의 조상이 아니라 법적인 조상 즉 언약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씨는 육적인 혈통이 아니라 언약으로 이어져 내려가는 언약의 혈통이요 약속의 씨, 말씀의 씨인 것입니다. ampldquo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amprdquo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요 1:13).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되었습니까? ampldquo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 1:12)amprdquo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말씀을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ampldquo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amprdquo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양이 된다는 것은 말씀을 극도로 혐오하고 거부하던 여호야김 같은 자가 감옥같은 환경을 통해 음성으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순종하여 사는 여고냐(고니야)같은 자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 제가 백향목에 깃들이는 새 깃털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과 쾌락과 안정을 추구하였는데 그것이 말씀이 안 들리는 심판과 저주의 환경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감옥같이 모든 소망이 끊어진 고난의 환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자기 죄를 보고 회개하여 언약 백성으로 세워지는 축복의 환경임을 고백합니다. 제 심령에 진정한 ampldquo붙회떨감amprdquo의 인식전환이 이루어져 고난과 패배 속에서도 말씀을 즐거워하며 말씀대로 살고 누리고 전하는 언약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신천지에 빠져 있는 지헌이, 하영이를 육적 혈통의 계승관점에서 예수씨로 보지 않고 철저하게 언약의 관점에서 예수씨로 보고 말씀이 자녀들을 뚫고 들어가 예수 씨가 심겨지고 언약백성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적용하기) 세상 쾌락과 인정과 자족의 백향목에 깃들이지 않고 실패와 고난의 환경 속에서 말씀을 즐거워하며 자기 죄를 보고 애통히 회개하며 적용으로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