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2.토.예레미야 18장 13-23절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소서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내 백성이 나를 잊고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039그러므로#039는 #039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039 하며 #039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므로#039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일은 여러 나라 가운데 물어보아도 없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고 하십니다. 처녀 이스라엘은 순결하고 아름다운 처녀로 이스라엘을 보시는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시온의 딸, 처녀 이스라엘은 너무나 아름답고 순결해 ampldquo평생 너만 바라 볼 거야amprdquo 하는 어느 퇴직연금광고 카피 처럼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믿고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가 딴 놈에게 눈을 돌리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고 분노하십니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고 하십니다. 레바논의 산은 헬몬 산으로 레바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북단 갈릴리,단 지역에서도 만년설을 이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크고 높은 산입니다. 그 정상에서 눈 녹은 찬 물이 바위를 타고 계곡으로 흘러내려 빌립보 가이사라는 마치 제주의 원시림처럼 울창한 숲사이로 시냇물이 흘러 갈릴리 호수를 바다같이 풍성하게 채웁니다. 그 눈은 만년설이기에 들의 바위를 떠날 수 없고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은 태고적부터 여전히 마르지 않고 흐릅니다. 그런데 바위를 떠날 수 없는 눈같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이 문제고 먼 곳에서 흐르는 찬물은 마르지 아니하는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마음에 사랑이 말라 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왜 마음이 떠나고 사랑이 말라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까? 무릇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 분향하거니와 이런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며...눈에 보이는 허무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상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만 영원히 살아계신 창조주 구원자요 우상은 눈에는 생생하게 살아있으나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들일 뿐입니다. 우상은 퇴직연금 카피에 나온 베레모를 쓴 모델처럼 매력적이고 평생 행복과 만족을 보장해 줄 것같지만 결론은 허무한디...로 끝나버립니다. 이는 미모와 젊음과 재물과 명성과 권력 등 세상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통기간이 지나면 썩고 부패하고 냄새나고 벌레가 끓고 결국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세상 모든 우상들의 결말입니다. 그런데 결말을 보이지못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고 허무한 것에 열심히 분향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스라엘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준 코스에서 넘어지게 하고 곁 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였습니다. 곁길로 샛는데 가시 구렁이와 절벽과 천길 낭떠러지였습니다. 결국 그들의 죽음이 널린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거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눈 발이 바람에 흩어지듯 원수 앞에서 흩어져 날라가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으니 그들의 재난의 날에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을 잊고 허무한 것에 분향하는 죄인인 것을 고백합니다. 제가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고 임윤찬 피아니스트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한 사람은 Y대 출신이고 한 사람은 맡길 任(임)씨라는 저와 공통점이 있고 그들이 세계 최고의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였습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Y대에다 호남 출신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자 새벽에 큐티하는데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아 노벨상 수상 작가 뉴스기사를 읽어가는데 마른 논이 단비를 빨아들이듯이 읽혔습니다. 학연, 혈연 그리고 지연으로 얽혀져 있는 성공 우상, 알고 보면 나도 이런 사람이다amprsquo는 자기 과시, 자기애, 외모를 밝히는 외모지상주의가 저의 끊어지지 않는 우상입니다. 이 우상이 하나님을 잊게 하고 허무한 데 분향하게 하였고 전처와 장남의 소천과 차남과 막내 딸이 신천지에 미혹되는 재난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는 심판을 자취하였음을 고백하고 학벌 우상, 혈연 우상, 지역감정 우상, 외모지상주의 우상, 성공주의 우상을 회개합니다.
기억하옵소서
그들이 재난을 자취하면서도 예레미야를 어떻게 조롱했습니까? ampldquo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amprdquo 이스라엘은 선지자에게서는 말씀이 끊어지지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는 극단적인 내거티브 반응으로 나왔습니다. 마치 니가 하는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말이라도 안들을 거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통, 똥고집인 것이죠. 예레미야는 급기야 여호와께 어떻게 호소합니까? ampldquo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 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amprdquo 예레미야는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하였는데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와 끊임없이 다투고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파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제가 지헌이와 하영이를 신천지에서 돌이키려고 방 청소 등 갖은 애를 쓰고,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매주 가정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권면과 회유와 책망을 하였지만 아직도 제 안에 진정한 회개가 없기에 아이들이 돌이키지 않음을 봅니다. 주님께서 안되는 회개를 하려고 몸부림치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억하사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저의 부족한 회개에도 아이들이 돌이켜 주 앞에 바로 서는 은혜 베푸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그 악을 사하지 마옵소서
예레미야는 회개치 아니하는 이스라엘에게 극단적인 저주를 쏟아붓습니다. ampldquo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임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게 하사 그들의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amprdquo 왜 이런 극단적인 심판을 청구하는 것입니까? ampldquo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니이다.amprdquo 이는 그들을 멸망받을 심판에서 돌이키려고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의 말을 조롱하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구덩이를 파고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ampldquo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서 넘어지게 하시되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amprdquo 기도하였습니다. 흔히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하는데 이런 예레미야는 분노의 선지자라 불릴 만 합니다. 왜 이렇게 분노하였을까요? 그만큼 백성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 분노는 심판이 막상 임하자 애곡이 되었습니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분노가 눈물로 변해 타조처럼 울며 통곡했습니다.
죄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죄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 이 성립할 수 없는 양가감정이 동시에 폭발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내 죄 때문에 나를 죽일 만큼 미워하셔서 대신 외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고통스런 사랑이 예수님을 내 죄 대신 십자가에 못 박게 했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용서하게 하고 내 죄를 그치게 하였습니다. ampldquo그 악을 사하지 마옵소서amprdquo 예레미야의 기도가 십자가에서 ampldquo아버지여 저희를 사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amprdquo 예수님의 탄원으로 극적 전환이 됩니다. 저는 결코 죄를 끊을 수 없는 죄의 공장, 우상을 결코 끊을 수 없는 우상 중독자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의 사랑이 결국 저란 自己(자기)우상을 이기고 저의 죄를 이기게 하실 것을 믿고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저를 이스라엘의 처녀, 시온의 딸로 영원히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지헌이, 하영이와 가족들과 목장지체들을 이스라엘 처녀 시온의 딸로 회복시켜 부르실 것을 믿고 소망하며 감사 찬송드립니다.
적용하기) 학벌, 지연, 자기애를 뛰어넘는 적용으로 이번 서울시 교육감선거에서 구속사 관점에 기반한 공정한 투표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