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5.토.예레미야 15장 10-21절 나의 입이 될 것이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신세를 어떻게 탄식했습니까? ampldquo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amprdquo 친한 사람들끼리 돈을 꾸기도 하고 꾸어주기도 하다가 돈을 갚지 않으면 돈 때문에 원수가 되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누구에게 꾸어 주지도 않았고 꾸이지도 않았는데 보는 사람마다 다투고 싸우고 저주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속에서 아이고,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amprsquo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왜 사람들이 준 것도 없이 미워하는 것입니까? 이는 예레미야가 우상을 섬기며 죄를 짓는 백성들에게 멸망과 심판을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선지자가 복과 구원과 평안을 외치면 사랑을 받을 텐데 망하고 죽는다고 선포하니 좋아할 사람이 없었지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저주와 심판과 멸망에 대하여 외치면 자신을 죽일 듯이 미워하고 싸우고 다투니 예레미야가 죽을 똥을 쌌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예레미야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위로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ampldquo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amprdquo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미움과 공격으로 연약해진 예레미야를 강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 너에게 복을 받게 하신다는 말씀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저주가 흘러나오는 저주의 근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이 흘러나오는 복의 근원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복 받은 존재이기에 예레미야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가 선포하는 말이 비록 ampldquo저주의 말amprdquo이라도 들으면amprsquo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은 그를 미워하고 죽일 듯이 달겨 드는 원수같은 사람들일지라도 재앙과 환난의 때에 예레미야가 참된 선지자임을 깨닫고 그에게 간구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서 나오는 ampldquo너amprdquo는 예레미야amprsquo가 아니라 네 백성들amprsquo에 대한 예언입니다. 저주와 심판의 말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 누구도 능히 철 곧 북방 바벨론의 철과 놋의 무기를 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하시고 원수 바벨론과 함께 그들이 알지 못하는 땅인 바벨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듣지 않을 때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우리를 사를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속이는 시내 같으신 주님
예레미야는 이제 ampldquo아이고, 어머니amprdquo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amprsquo께 어떤 호소를 합니까? ampldquo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amprdquo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멸망과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억하시며 돌보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줄을 알아달라고 호소합니다.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해달라는 것은 그래도 백성들의 선지자인데 좀 심한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하는 호소에는 그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어떤 자기 인식입니까? 그에게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자amprsquo라는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또 ampldquo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amprdquo는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또 ampldquo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다amprdquo는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다수를 좋아합니다. 다수가 다수의 즐거움과 기쁨을 위하여 모임을 갖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주의 손에 붙들려 다수가 아닌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거룩한 왕따amprsquo였습니다. 다수는 홀로 앉아 있는 예레미야를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노의 말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에 ampldquo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라amprdquo고 고백합니다. 다수의 공격과 분노를 집중적으로 끊임없이 받을 때 아무리 멘탈이 강한 선지자일지라도 고통을 느낍니다. 그 고통은 계속되었고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하였는데 또 다른 공격과 분노가 쏟아졌습니다. 이에 ampldquo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amprdquo고 질문이 예레미야의 심중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가보니 요단강은 우리 한강처럼 풍성하고 시원스럽게 흐르는 강이 아니었습니다. (요한, 예수님의) 세례 터로 알려진 곳만 물이 풍성하게 모여있었고 차로 따라간 시냇물은 거의 실개천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우기가 아닌 건기에는 그 실개천마저 말라버렸습니다. 사슴이 목이 말라 시내를 찾았는데 물이 바짝 말라있다면 믿었던 시내에게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임은 단순한 속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것같은 고통에 이르게 하고 결국 갈증과 탈수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믿고 바랐던 하나님이 자신이 지속적으로 공격받고 원수들의 분노로 태움을 당하는데도 안 도와주시니 하나님이 속이는 시내 같지 않으십니까?amprsquo 하고 반문한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여
이때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까? ampldquo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amprdquo 하나님은 자기가 하나님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예레미야에게 ampldquo돌아오라amprdquo고 하십니다. ampldquo돌아오면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라amprdquo고 하십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사람들 사이에 있고, 자기 고통 속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줍니다. 원수들만 크게 보이고 자기 고통만 크게 보이니 ampldquo아이고 하나님amprdquo이 아니라 ampldquo아이고 어머니amprdquo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고통 속으로 예레미야를 몰아붙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수에게 에워싸여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고 분노의 타켓이 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음성인 것입니다. 전심으로 돌아올 때 주님이 다시 이끌어 주님 앞에 세우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 주님은 ampldquo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amprdquo고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버려야 할 헛된 말은 무엇입니까? 재앙이 임할 때 ampldquo아이고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amprdquo ampldquo사람들이 왜 나만 미워하고 저주하나요?amprdquo ampldquo나를 박해하는 자를 보복해주세요amprdquo ampldquo하나님이 어찌 나에게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신가요?amprdquo 하는 말이 헛된 말입니다. 한마디로 원망과 불평과 불신과 미움과 복수의 말들입니다. 하나님에게가 아닌 사람에게 하는 하소연, 축복하는 말이 아닌 저주의 말, 용서의 말이 아닌 보복의 말,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닌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말, 하나님의 신실함과 도우심과 구원을 의심하는 말들이 다 헛된 말입니다. 그러면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ampldquo저는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주께로 돌아갑니다. 오직 주님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소망하고 기대합니다amprdquo 는 죄 고백과 회개와 감사와 용서와 사랑과 소망과 믿음의 고백이 귀한 것입니다.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할 때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마음과 혀에 두어 말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그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전처럼 받은 말씀도 없는데 예레미야의 자기 열심으로 그들에게 돌아가서 저주와 심판을 말하다 괜히 미움받고 욕 먹을 일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얼마나 강합니까? ampldquo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amprdquo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어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놋성벽같은 말씀의 종을 때리는 자가 다치게 될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죽을 때까지 홀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 전도하러 다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동네 깡패들에 둘러싸여 죽도록 맞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기를 몽둥이로 때리던 깡패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다 나 뒹구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으로 놋 성벽이 된 자를 치니 그 주먹이 성할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를 구하여 건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받은 자는 원수들이 아무리 달려들어 칠지라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요, 하나님께 반드시 구하여 건지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예레미야는 자기를 죽이려는 악한 여호야김, 시드기야같은 유대 왕의 손에서 건짐을 받았을뿐 아니라 무서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서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제 하영이가 제 환갑기념 생일 선물로 주문해준 백팩 책가방이 도착했길래 안뜯어보고 목장 모임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 하영이가 보는 앞에서 뜯었습니다. 그런데 가방이 제가 원하는 모던스타일이 아니라 등산가방 스타일이어서 하영이에게 '야 이게 뭐냐? 등산가방 아니야?' 하고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의 기뻐하는 반응과 칭찬을 기대하고 방에 나왔던 하영이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그러면 환불해!' 하고 방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닫고 말았습니다. 하영이는 아빠 환갑이라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횟감도 떠오고 매운탕도 손수 끓여주고 가방선물까지 했는데 하영이가 선물한 가방에 대한저의 욕심과 욕구와 기대가 차지 않는다고 상처주는 말을 한 것이 금새 후회가 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가 말에 실수가 많아 아내인 송경희 집사님하고 실없는 농담을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지금은 잠비아에서 말라위 UN-V 본부로 이동해 파견 중에있는 지헌이가 집에 있었을 때에도 실없는 말을 하여 말씀의 종으로서 신뢰를 떨어뜨려 한 소리 들을 때가 많았습니다. 목장에서도 정체된 말로 처방을 하여야 하는데 저의 감정이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날선 처방을 하여 지체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었습니다. 목회학대학원 다닐때도 같은 찬양 팀 동료 원우 여목사님이나 후배 여전도사를 하나님의 종들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생각하여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거나 반말로 이름을 부를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인본주의와 정욕과 욕심과 이기심 교만과 자기중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돌아가겠습니다. 헛된 말을 버리고 하나님이 옳으시다고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는 귀한 말을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저를 주님의 입이 되게 하시고 저로 이 거스리고 패역한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지헌이 하영이가 신천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제게로 돌아오려니와 제가 자기 열심으로 그들을 신천지에서 구원하겠다고 신천지에 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않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고 저를 구원하여 건지심으로 어떤 원수가 저를 칠지라도 저를 이기지 못할 것을 믿고 감사 찬송드립니다.
적용하기) 자녀들과 아내와 목장 지체들과 은행과 신학대학원 동료들과 말을 할 때 정욕과 욕심에서 나오는 헛된 말을 하지 않고 구원을 위하여 칼날 위에 서 있는 물방울처럼 신비한 표정으로 귀한 말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