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미 신앙
작성자명 [김강길]
댓글 0
날짜 2010.05.01
제목 : 진선미 신앙
성경 : 렘38:1 - 13
아주 오래 전(13년)에
일본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의 설교가 기억난다.
간증과 함께 말씀을 전하셨다.
어떤 말씀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진선미 라는 단어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미스코리아를 뽑을 때에
1등을 미스코리아 진
2등을 미스코리아 선
3등을 미스코리아 미 라고 한다.
사람들은 진선미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한다고 하셨다.
진리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사람
선으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사람
미로 아름다우냐 그렇지 못하냐를 판단하는 사람
그 때에, 난 옳고 그름이란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판단했다.
선의 영역에서 옳은 일이냐 아니냐로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반응했다.
옳지 않은 것을 보고 거침없이 말했다.(비판일수도 있고, 비난일 수도 있다)
그것이 관계의 갈등을 가져왔다. 힘 들었다.
그 진선미의 설교를 들으면서 선으로 판단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몇 번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영역에서, 영적인 영역에서 판단을 하고 행동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선, 옳고 그름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판단하니 피곤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선의 영역 뿐만이 아니라, 미의 영역으로 사람을 보는 나의 모습도 보인다.
결혼을 위해 여자를 소개 받고 만날 때에,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얼굴이 얼마나 이쁘냐에 따라서 내 마음이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쁘면 플러스 점수를 그렇지 않으면 마이너스 점수를 나도 모르게 매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 신앙적인 면도 많이 보지만 말이다.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았을 그 자매들에게 말이다.
지금 나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영역, 진의 영역으로 살고 있는가?
그렇치 못하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폭 빠져 살고 싶지만, 현재의 모습을 그렇치 않다.
성경을 묵상하는 것은 좋아 하지만, 그것이 진리로 다가오지 못하고 가치관으로 다가온다.
머리의 즐거움은 있지만, 영적인 안식은 메말라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다시금 진선미의 신앙을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진리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예레미야의 신앙
비록 죽음의 구덩이에 들어가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는 예레미야.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구스 사람 에벳멜렉의 모습도 본다.
악한 일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함으로 예레미야를 도움 사람
때로는 옳고 그름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비판과 비난과 정죄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고자질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죽게 하려는 스바댜와 방백들의 모습도 본다.
미의 영역, 겉으로 들어난 삶과, 자신의 손익에 민감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냐의 진리도, 옳고 그름의 선도 그들의 손익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다른 사람이 죽어도 자신이 배부를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그들의 모습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서 진의 신앙이냐, 선의 신앙이냐, 아니면 미의 신앙이냐를 따질 이유는 없다.
문제는 나에게 진의 신앙이 메말라 있다는 현실이 나를 답답하게 한다.
앞으로도 성경을 묵상하는 즐거움은 계속 될 것이다.
다만 나의 가치관이 아니라 나에게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진리로 다가오길 기대한다.
그 안에서 살고 싶다. 그 안에서 풍성함의 구덩이에도 고난의 구덩이에도 빠지고 싶다.
믿음의 선진들이 진리의 영역에 폭 빠져 살았듯이 말이다...
기대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살아갈 것이다. 진리의 영역, 하나님의 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