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7.토.예레미야 3장 1-18절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주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악을 어디에 비유하셨습니까?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부부관계의 핵심은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사랑과 진실함을 지켜주는 보루가 성적 순결입니다. 그런데 남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 사람을 남편이 다시 받아준다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진다고 하십니다. 음행으로 인해 성적인 순결이 파괴되고 진실한 사랑은 없어지고 짐승처럼 말초적인 쾌락과 욕망에 의해서 헤어지고 만나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백성들의 음란과 행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발하십니까?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산악지대가 많습니다. 성지순례 가보니 제법 숲이 울창한 산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산들이 헐벗었다고 하십니다. 이는 산당을 만들고 제사드리기 위하여 나무들을 베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돌로 물질 우상인 바알과 나무로 쾌락 우상인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놓고 노골적으로 물질의 복을 구하며 제사 의식의 일환으로 행음을 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구하고 종교적인 형식을 갖추었으나 길가에 앉아 음란과 행악을 저지를 대상들을 찾기 위해 눈 사냥을 하는 아라바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에 정착하였을 때 광야 유목생활을 그치고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올리브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에서 10월 파종기의 단비(이른 비)와 4월 수확기 전에 내리는 늦은 비는 그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농경의 신 바알과 그 짝인 쾌락의 신 아세라에게 빌고 빈 결과는 단비와 늦은 비가 그치는 심판같은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긴 결과로 심판같은 재앙을 당하고도 창녀의 낮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내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보라 이같이 말하여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와 부르짖었지만 근본적으로 악과 욕심에서 돌이킬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고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예레미야에게 어떻게 이르셨습니까?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고 하십니다.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주님은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주님께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서 떠나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과 산당제사로 행음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는 심판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배반과 심판의 사건을 지켜본 그의 반역한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심판의 사건을 보면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주님이 보았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다고 하시면서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유다는 진심으로 주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더 의로움이 나타났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 우상에 집착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파괴하고 생존을 위하여 스스로 살아보려는 배역이었다고 한다면 유다가 하나님 대신에 산당 제사에 집착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누리면서도 그것을 반역하고 스스로 주권자가 되고자 하는 반역이었습니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너는 북을 향하여 어떤 말을 선포하라고 하십니까?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주님은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시는 긍휼이 있으신 하나님이시기에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회개하고 자복할 죄까지도 적시해주십니다. 그들이 회개해야 할 죄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도움을 구한 것이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기복과 욕망의 음성을 듣고자 한 죄였습니다. 주님은 배역한 이스라엘을 향해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다고 하십니다. 배역한 자 중에 남은 자들, 곧 택자를 데려오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통해 어떤 새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하십니까?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은 사무엘이나 다윗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목자들을 말합니다. 사무엘과 다윗같은 목자들도 죄와 허물이 있는 연약한 죄인들이기에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신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지식과 명철로 하나님의 양떼인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시고 부활과 생명의 말씀을 우리에게 심으사 살리시고 세우시고 건설해 가십니다. 또한 목자들은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공동체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지체들이 목자가 되어 지식과 명철으로 우리 죄를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세우고 건설하는 양육을 해주는 것이니다. 그 때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라고 하십니다. 언약궤는 십계명이 들어있는 나무상자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부적처럼 전쟁에 들고 나가 싸우다가 패하고 빼앗기기도 하였습니다. 성전이 여호와의 보좌가 아니라 예루살렘이 우리 보좌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왕이 되셔서 우리 삶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내 자신이 말씀이 담긴 언약궤가 되고 내 삶의 현장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이 있기에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인다고 하십니다.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데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인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어가 된 삶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는 자신이 주어가 된 삶 자신의 악한 마음이 주인이 되고 동기가 되어 완악한 데로 감정과 본성과 욕심에 충실한 삶을 살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때에 어떤 기적같은 일들이 벌어집니까? 그 때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유다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은 한 아버지에게서 나왔지만 어머니가 다른 배 다른 족속이었기에 반목하고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배신하고 반역하여 갈라섰다가 피터지게 싸웠습니다. 그런데 내가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이 될 때 배신하고 반역하여 멀리 멀리 떠났던 형제들이 기업으로 주신 땅에 돌아와 함께 이르는 화해와 연합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대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한적한 곳에 나가신 예수님을 본받아 새벽기도하는 삶 큐티하는 삶을 평생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복으로 바뀌어 나중에는 막내 딸 대학입시가 시작되는 2016년 정월초부터 金(금)ampmiddot土(토)일 산꼭대기에 올라가 철야 산기도를 드리는 산당예배가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한국 교회 부흥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 revival를 위하고 촛불시위로 어수선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딸을 좋은 대학에 보내어 좋은 믿음의 형제와 결혼시켜 신앙명문가를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않고 내 요구만 강변하는 철야산기도를 2년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강행했습니다. 큐티를 해도 믿음과 축복의 약속, 기도에 관한 말씀만 눈에 크게 들어왔고 회개 심판 저주는 나와 상관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로 회피하였습니다. 얼마나 욕심과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든지 나중에는 제 스스로 자녀의 성공과 자신의 성공을 예언하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자아 최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딸이 재수 시험보기 딱 6일 전 토요일날 하나님은 아내의 갑작스런 소천 사건으로 저의 기복을 심판하셨습니다. 딸도 수두에 걸려 장례식에 참석조차 못하고 포항대지진으로 수능이 한주 연기되어 간신히 시험보고 원치 않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몰랐던 심판은 딸 재수 기간, 대학 3년이던 둘째 아들이 자기가 신천지에 미혹되어 들어가면서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여동생을 도우려는 명목으로 딸을 신천지 여전도사에게 집중양육 받게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문제해결만을 구하던 저의 기복이 깨어지지 않자 3년 뒤 장남이 급작스럽게 소천하는 심판까지 임하였습니다. 그제서야 고난이 축복이라는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들려와 선교단체에서 나와 말씀이 들리는 우리들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기복신앙에서 돌이켜 말씀이 들리는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 전처와 장남 신천지에 빠진 둘째 아들과 막내딸이 해ampmiddot달ampmiddot별들이 되어 떨어지는 수고를 한 것이 인정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안에는 여전히 세상 성공의 바알 돌상, 세상 외모와 쾌락에 집착하는 아세라 목상이 남아 있어 온전히 하나님께 돌이키지 못하고 세상을 기웃거리는 산당의 뿌리가 남아 있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어찌할 수 없는 저의 연약이요 한계이지만 이 연약과 한계 또한 저를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으로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제가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저의 산당과 우상을 뽑고 파괴,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구속사의 가치관을 심고 세우고 건설하여 갈 때 결코 돌이키지 않을 것 같은 아들 임지헌과 딸 임하영도 신천지에서 돌아와 참 목자되신 예수님을 구주로 인격적으로 만나고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들로 세움 받게 될 것을 믿고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매일 주시는 구속사의 말씀으로 제 안에 남아 있는 산당과 우상을 찍고 파괴,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심고 세우고 건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