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청과 공감을 잘 하고있습니까? 아니면 부족한 자임이 인정됩니까?
1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절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오늘은 시편 28편 1절 - 2절 말씀으로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이 말씀구절들의 의미는 다윗이 주께 부르짖는 이유는 자신의 아픔과 마음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있기고 응답받을 수 있기에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나의 아픔과 고통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한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살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영혼을 살릴려면 아픈 그 한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할수 있어야하는데 나는 그러면 아픈 지체의 나눔에 공감하고 경청을 잘해주는지 묵상해보았습니다.
저는 우리들교회에서 남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삶을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공감받은 기억이 별로 없었습니다. 학창시절때의 따돌림과 학폭의 사건때 많이 무시받고 공감받지 못했던 시간들을 오래보내서인지 저는 남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는게 어떤건지도 몰랐고 그러니 항상 관계속에서 갈등이 생기면 관계가 깨지기 마련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고난으로 인하여 관계에서 공감받지 못하고 수용받지 못하니 인간관계가 제게는 항상 히말라야 산맥처럼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고 점점 사람들과 말을 하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자살시도 이후 우리들교회에서 공동체에 많이 묶여가면서 직면하게 되었던 것은 제가 소통의 부분에서 극단적으로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어린시절에서도 갑질하고 괴롭힘 당하는 것을 경험해보니 누군가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면 저는 고슴도치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는데 이것을 공격으로 인지하지도 못하니 저도 힘들었지만 옆에 있던 지체들도 안타까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이제 우리들교회 온지 6년이라는 시간이 되어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저를 위해 기도해주었기에 계속해서 저의 이런 부분을 직면하면서 심리상담도 받고 정신과를 가는 적용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누군가를 공감해줄수 없고 경청해줄수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이제는 공동체에 묶여가다 보니 소통이 안되는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게 되니 편해지고 그러다보니 목장에서 직장관계에서의 저의 연약한 모습을 나눌수 있게 되고 저의 이직에서의 실패를 많이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오랜시간 저는 소통에서 극단적으로 말을 하고 그러다보니 관계가 항상깨지는 악순환을 겪어왔습니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것 같던 문제가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풀려가고 있는것은 하나님의 선물과 같은 은혜이고 공동체의 사랑과 기도덕분임이 인정됩니다. 그러나 아직 몸에 배여있던 극단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남아있다보니 무의식적으로 나갈때가 많은데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에서 벗어나 새롭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소통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적용하기
극단적으로 말할때 한템포 늦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