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비전이 있습니다.(2)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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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12.17
우리의 신앙은 나의 열심히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열심, 하나님 뜻에 우리가 얼마나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기도한 내용입니다.
‘저에게 가라고 하시면 제가 어디든지 가겠으며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우리교단에 연세가 드신 목사님인데 뒤돌아보니 목회에 대한 실패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교회개척을 하였는데 교인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베트남에 새로운 비전을 주시어 베트남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새로운 사역에 비전을 가지고 2년 동안 열심히 사역을 하였는데 열매가 없었다.
그래서 도저히 선교사 생활을 할 수 없어서 ‘하나님! 제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만두어야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속에 ‘네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여기 있다.’ 라는 감동을 주셔서 다시 무릎을 꿇고 헌신을 하였답니다.
여러분이 좋아서 하는 일은 실패하면 그만 두면 됩니다.
우리 교인 중에 열심히 봉사하다가 사람 때문에 삐져 그만두는 사람이 잇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열심이 인정받지 못할 때 교회문제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가지고 사역을 가장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외모로 판단하시겠지만 저는 젊은 목사입니다.
오래 전에 김요셉목사님과 교제를 가졌는데 나이를 묻기에 ‘제가 64년생 용띠입니다.’라고 하였는데도 몇 년 동안 저보고 형님이라고 하더니 나이를 분명하게 밝혔더니 작년부터는 자기가 형님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외모나 능력이 사역을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점을 하나님이 장점으로 바꿔주시는 일들을 많이 경함하였습니다.
저의 외모나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나의 생각, 시각이 바뀌어 집니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보니 저에게 있어 무한한 가능성과 꿈을 보게 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제가 목회를 함에 있어서 제욕심이 되지 않도록, 젊어서 가진 이 생각이 변화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가장 능력 있는 말씀은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요 뜻이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라고 선포될 때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여 질 것입니다.
만일 목회자의 생각과 고집이 선포된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릭워렌은 교회의 능력은 몇 사람이 모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몇 사람이 하나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느냐가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눈으로 우리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을까?
서울대에서 수의학를 전공하신 분이 우리교회에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그분이 신학을 공부하다가 저희 교회에서 사역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비전과 변화의 목표를 수립하기 위하여 밤늦게 까지 일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같이 일하는 기획팀과 함께 밖으로 감자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같이 가서 전골로 먹으면 푸짐합니다.
그곳에서 그 분은 ‘목사님! 여기 있는 뼈가 몇 번째 #48908;지 아십니까?’ 라고 하지만 나는 ‘어느 뼈에 살이 많이 붙어 있을까?’ 라고 말을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생각하는 것 보는 것이 다르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모습과 자신의 모습, 환경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 비전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의 삶에서 꿈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늘 불평을 하였습니다.
때를 따라 만나, 메추라기, 물을 주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해 주셨는데도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삶이 불편하면 불행하다 생각하였다.
성경에서 ‘너희들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으면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출애굽을 시킨 이유는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비시키기 위하여 출애굽을 시켰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왜 불평이 많습니까?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가 되시며, 하나님께서 삶을 인도하시며 예비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불평을 하십니까?
때로는 하나님 믿는 것 때문에 나의 행복을 포기할 때가 잇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면서 기쁨을 잊어버린 크리스천들, 열심히 기도하면서 행복이 없는 사람은 뭔가 잘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결단코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절대로 환경에 의하여, 불편함을 인하여 불행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새벽3시부터 일어나서 목회를 잘하였습니다.
그래서 부교역자들이 물으면 ‘즐겁다. 행복하다’ 라고 하시면서 목회를 하였다
이를 부러워한 교인들이 부교역자들이 담임목사처럼 동일하게 해보자고 하며 동일한 시간을 쓰다 보니 일주 일만에 코피가 났다.
비결을 묻자 ‘내가 힘들지 않다고 애기했나 행복하다고 했지?’라고 말을 했답니다.
예수 믿는 것이 힘든 일이며 때로는 불편함을 가져다줍니다.
우리의 삶이 편안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편안한 삶이 구원의 기쁨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들 모든 인간은 꿈(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기에 모든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이 세상이 온전해 지겠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의 열망과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서울대, 고려대에 가는 것이 하나님 뜻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가진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열망은 욕심에 그칩니다.
열두명이 동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꿈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그들의 열망을 하나님의 비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기도응답이 되지 않을 대 ‘하나님 왜?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나요?’ 라고 새벽에 조용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한 욕심이 남아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65378;하나님을 경험한 삶#65379;에서 이러한 말이 잇습니다.
저는 캐나다의 새스커툰에서 12년 동안 목회를 찾아갔습니다.
어느날 한 농부가 제게 자기의 농장으로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제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찾아오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시내를 지나서 한 4백미터쯤을 가다보면 왼쪽으로 빨간색을 칠한 큰 축사가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길에서 왼쪽으로 도세요.
그 길을 따라 약 1천2백 미터 정도 더 가면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거기서 오른 쪽으로 돌아 한 6천 4백미터 가면 큰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가 말하는 그대로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거기를 찾아갔습니다.
다음번에도 그 농부의 농장에 가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농장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기 때문에 그는 그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다르게 오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제 ‘지도’였던 것을 아시겠지요?
제가 해야 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저 그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한 것뿐입니다.
그가 ‘돌아라’하면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제가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길도 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저 혼자서는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농부가 제 지도였습니다.
그가 길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농부가 저에게 길이었습니다.
신앙이 좋은 척하는 사람이 ‘하나님 저에게 길 뜻을 알려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고 있다면 왜? 그 길을 물어봅니까?
깊은 영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저에게 길을 알려달라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내 삶의 지도가 되어 내가 그 길을 갈 것이다.
내가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부끄러움이 없다면 ‘네가 왜 나에게 물어야 하니?’
제 삶에서 바뀐 것이 없다.
저는 은혜를 받고 난 후 어디에서 목회를 하며? 어느 곳으로 가야하나? 라고 근심과 기대를 할 수 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시고 내 기도도 바꾸시고 생각도 바꾸시어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감사한 일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