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중 가장 따뜻한 날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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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12.16
스 8 : 1 ~ 20
사람은 누구나 다 똑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사나 봅니다.
나를 생각해주고 사랑해주고 베풀어주면 기분이 좋아지는것은 똑같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보니까 아들에게서 택배가 두 개가 와있었습니다.
하나는 밍크 이불이고 또하나는 김장 김치였습니다.
택배를 풀면서 며느리의 시아버지 사랑이 베어 있는것을 보니 마음이 찡 합니다.
아들의 배우자감을 놓고 기도할 때 딸같은 며느리를 달라고 했는데....
저의 며느리가 속이 꽉차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이 있는데 특히 시아버지인 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합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5년을 사귀다가 결혼을 했는데 혼전 순결을 지킨 이시대의 천연기념물
입니다. 며칠전 아들이 전화를 했는데 아마 허니문 베이비가 생긴것 같다는 낭보와 함께
할아버지가 될것 같으시다는 우회적 표현에 기분이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벌써 ~
할아버지가 되나 싶습니다.
아들이 결혼하기전에 결혼하면 아이들은 셋정도 낳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쪼끔 무식하게
스리 ... 산아제한 하지말고 며느리에게 맡겨라고 했었습니다.
성경에 자손은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이라는 압럭성 멘트로 많을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오늘 큐티 제목이 에스라와 함께한 사람들인데 나도 나와 함께한 사람들을 묵상할려는데
택배가 와서 자연스럽게 나누어 보았습니다.
내가 기업선교의 뜻을 가지고 있는것을 잘 알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는 나의 가장 강력한
기도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리고 서울, 광주, 일산에 몇몇 기도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이제 올해는 저물어가고 새해가 닥아 오는데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볼때 내자신이 많이
성숙되고 안정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날마다 큐티를 깊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되었다함이 없지만 초조함도 바쁠것도 전혀 없고 오직 매일의 삶속에서 어떻게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까 생각하고 행동을 합니다. 생활예배 잘 드리는것이
저의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사람을 만납니다.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백성들은 1차 귀환때의 1/3도 못미치는 적은수 였습니다. 그 이유는
귀환에 대한 열망이 식었거나 귀환에 대한 역사적 종교적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1차 귀환때의 계보가 재연된것을 보면 2차 귀환때도 동일한 계보의 후손들이 귀환한듯
합니다. 그들은 비록 이교도들의 땅에 살았지만 어느정도 신앙감화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의 부모들은 1차 귀환에 빠진 사람들 이었지만 그 자식들은 왕명이 떨어지자
즉각 에스라를 따라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많은 유형 무형의 재산을 포기하고 유다땅으로 와서 신앙 부흥운동에 참여한자들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려면 포기할것들이 많습니다.
나의 포로 생활을 잘하고 있다가 고레스의 나팔소리가 나거나 아닥사스다의 조서가 발표
되면 나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성전건축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때 포기하지 못하고 뒤돌아보면 롯의 아내와 같이 소금기둥이 될수도 있습니다.
또한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절기와 때를 따라 모이기에 힘쓰는것이 참된 그리스도인
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표입니다.
종을 치고 모이라고 했는데 딴청을 부리고 있다가 성문이 닫히면 신랑되신 예수님을 못
만날수도 있습니다.
에스라에게는 성전 제사의 회복이 곧 신앙회복 운동의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봉사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할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을 모아드렸습니다.
1차 귀환때나 2차 귀환때나 레위 사람들이 귀환을 꺼렸던것은 그들의 사역이 고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들은 포로생활중에 다른 직업으로 전환해서 귀환자도 드물었습니다.
따라서 에스라는 레위사람의 최고지도자인 잇도에게 백성의 지도자를 보내서 레위사람들을
설득 합니다. 설득결과 레위사람 약 40명과 느디님 사람 220명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제대로 드려지기 위해서는 레위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득에 감명을 받고 따랐던 신앙인격자들입니다.
에스라는 출발 날짜를 지연 시켜가면서까지 제사를 위해서 레위 사람들을 데려가려는
철저한 신본주의자 였습니다. 그는 과연 신앙부흥을 주도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레위인들같이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설득에 굴복할수 있어야
합니다. 설득에 따라 자신의 고집을 꺽는일은 아름다운 신앙행위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는 에스라와 같이 훌륭한 신앙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해야 합니다.
또한 나는 나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주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