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기준으로 누군가를 상처준 경험이 있나요?
19절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20절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오늘은 잠언 17장 19절 - 20절 말씀으로 묵상해보았습니다. 이 말씀 구절들의 의미는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자기의 문 즉 자기의 기준이 높아 다른사람들이 다가갈수 없다고 합니다. 즉 이것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이러한 자는 결국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수 없고 사람관계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관계에서 평안을 얻지 못한다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옳고 너는 틀려 라고 정죄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누군가를 상처준 경험이 있는지 묵상해보았습니다.
저는 사람관계가 가장 안되는 사람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시작된 관계고난으로 인하여 사람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생겨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 스펙과 지식을 쌓는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노는 대신 자격증을 취득하고 학위를 취득하고 지식을 쌓는것에 집중하다 보니 이력서에 작성할 것들은 많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진솔하게 나눌 친구들이 제 곁에는 없었습니다. 20대 초 중반까지 제가 쌓은 지식과 경험이 전부 답인 줄 알고 내가 옳고 너는 틀려라고 하며 같이 전문학교에서 공부했던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내가 더 많이 읽고 더 알아봤고 이게 맞아 그런데 너는 자꾸 왜 내 말에 토를 달아 라고 내가 너보다 더 성실해 집중해서 얻어낸 결과물인데 하면서 사람들을 정죄하였습니다. 이 모습이 오늘 말씀구절에 나오는 다툼을 좋아하는 자 자기 문을 높이는 자와 파괴를 구하는 죄인이였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저만의 기준과 생각으로 연약한 지체를 감싸주지 못하고 정죄하는 모습들이 나타나니 같이 부서를 섬기던 지체들이 저에게 다기오기를 힘들어했고 목장 지체들또한 저를 무서워했었는데 당시에는 이해가 안되었지만 그때 저는 20절에 나오는 마음이 굽은자였고 패역한 자였습니다. 저만의 생각과 기준 세상에 물든 자처럼 오로지 성공과 돈 세상 지식이 정답인줄 알고 오랜시간 제 옆에 있는 사람들을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던 세상 지식도 성공도 무너지는 것을 요즘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제가 존경했던 업계의 내로라하는 CEO들의 경우 현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혼소송중이고 탈세를 해서 감옥을 가는 것을 보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국 돈독이 올라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사람까지 망가지게 하는 사람들을 뉴스에서 접하고 주위에서 보다보니 세상 지식도 우상도 성공도 정답이 아닌데 내가 오랜시간 동안 거기에 메달렸구나 라는 것이 깨달아졌고 내가 정말 패역한자였고 무능한자였구나 라는 것이 인정됩니다.
정신과 약을 먹고 혈기를 억제하는 약을 먹으면서 공동체에 붙들고 가다보니 제가 놓쳤던 것은 옆에 소중한 지체들과 하는 소중한 시간그리고 지금 내게 주어진 소소한 일상의 것들을 성공과 돈의 우상으로 소홀히 했다는 것이 인정되고 제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을 강요한것이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나만의 즉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상의 소중함과 신앙공동체의 소중함을 이제 피부로 느끼면서 저 자신이 치유되가니 내가 정말 공동체에 붙어있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제는 나만의 기준으로 누군가를 상처주는 패역한 자가 아니라 공동체안에서 죽어가는 한영혼에게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하기
내가 옳아 이게 옳고 저건 틀려가 아니라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세상 성공과 우상으로 물든 기준으로 주변 지체들에게 이게 맞고 너는 틀려라고 강요했지만 이제는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그게 틀리고 예수가 옳았고 공동체의 권면이 소중하고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옆에 붙여주신 지체들을 더욱 더 소중히 여기기를 오직 주님만이 답이라는 고백을 하고 공동체에 잘 붙들어가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