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때에 신분을 속이고 들어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다. 비록 속아서 화친을 맺었지만 이스라엘에 복속되어 멸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사울이 어긴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안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요구대로 사울 집안의 일곱 명을 내어준다. 그때 처형을 당한 일곱 사람이 사울이 리스바에게서 낳은 아들 둘과 손자 다섯 명이다. 사울의 부인도 아니고 첩으로 기록된 리스바는 무척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던 것 같다. 그녀의 미모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과 이스보셋 사이에 리스바로 인한 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아브넬이 사울을 떠나 다윗에게 가버렸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돌아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자기 때문에 나라에 분쟁이 일어나고, 남편 사울의 처참한 죽음을 겪었으니 리스바도 참 기구한 여인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아들 둘과 손자 다섯이 죽음을 당했다. 당시 죄를 짓고 처형된 시체는 장례도 치러줄 수 없었기에 그대로 버려져서 짐승과 새에게 뜯기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죽고 싶기로 말한다면 리스바보다 더 죽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예쁜 외모로 왕의 첩이 됐을 때는 너무 행복했을 텐데, 나라도 남편도 잃고 아들과 손자들의 죽음까지 지켜봐야 했으니 리스바야말로 자살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너무나 놀랍게도 리스바는 죽음이 아닌 생명의 길을 택했다. ‘자기를 위하여’ 회개의 상징인 ‘굵은 베’를 가져다가 예수 그리스도 ‘반석’ 위에 폈다. 사울의 죄로 인해 자손들이 참
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도 스스로 회개한 것이다.
리스바가 자손들의 시체를 지킨 기간,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까지의 시간을 신학자들은 6개월 이상으로 보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 리스바는 자기 집안의 죄와 수치를 보이며 밤낮으로 시신을 지켰다. 너무나 외롭고 비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스바에게는 이미 세사의 소망이 끊어졌기에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죄를 고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저주하고 손가락질해도 리스바가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교제했기 때문에 집안의 저주를 끊고 살아날 수 있었다. 리스바의 소식이 다윗을 감동시켜서 사울 집안의 장례를 치러주었고, 그 후에야 하나님이 기근을 그치셨다(삼하21:11~14). 기구한 한 여인의 회개가 다윗을 회복시키고 한 나라를 회복시킨 것이다.
인생의 목적
사채와 협박, 악성 루머, 각자의 고통으로 자살한 사람을 두고 리스바보다 더 힘들었느냐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절대치의 고난을 안고 살아가기에 고통의 크기는 함부로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고난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이다.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
고, 고난 속에서 무엇을 행하는 가가 고난 자체보다 중요하다. 리스바처럼 하나님의 시각으로 고난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를 행할 때 피할 수 없는 저주가 영원한 생명과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내 형제요 자매였던 사람들을 잃고 우리가 회개해야 할 한 가지는, 고난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무조건 잘 살고, 기도만 하면 뭐든지 다 들어주신다고, 물질주의에 젖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기복(祈福)의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고난을 해석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외치면서 행복하기 위해 학벌을 쌓고,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하고,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힘들어지면 ‘하나님이 계신다면 나한테 이럴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이혼과 자살로, 음란과 중독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행복을 거절하고 일시적 쾌락을 택함으로 ‘정녕 죽으리라’의 인생이 되었다. 거기에서 살아날 길은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내 인생에, 우리 집안에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을 이루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이 땅의 것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우리는 사랑하시기에 다시는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언약을 지키시고, 그래서 잠시 고난을 주셔서라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진심을 알아야 한다.
국민 배우로 불리던 여배우의 자살 원인에 대해 미국의 타임 지(誌)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혼녀요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녀의 고통이었다.”고 지적했다.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던 그녀를 떠올리며, 곁에 남편이 있었다면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서로 욕하고 싸워도 남편이 한 방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자살은 막지 않았을까.
나 역시 결혼의 고난을 진하게 겪으며 누구보다 이혼하고 싶고, 죽고 싶은 사람이었다. 모태신앙으로서 쉽게 자살할 용기가 없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혼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았더니 하나님은 나를 살려주시고 결코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남편의 구원도 이루어주셨다. 이혼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았더니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살리는 목회자가 되게 하셨다.
이혼하지 말고, 죽지 말고 살아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고 싶은 그 순간에 회개함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킨 여인 리스바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쓸어버림을 당한 홍수 심판에서 살아남아 다시 복을 누리는 노아와 가족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죽
지 않고 살아준 부모님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나를 통해서 다시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