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서로 죄를 고백하고 상처를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는 공동체다. 진실한 나눔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경험하는 곳이다. <목회와신학>은 앞으로 3회에 걸쳐 교인들이 이런 나눔의 영성을 훈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목회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인 김양재 목사는 20여 년간 평신도 큐티 사역자로 헌신하면서 말씀 묵상과 나눔의 중요성을 역설해왔다. 2003년 우리들교회를 개척한 이래로 진정한 나눔이 가능한 공동체 영성을 만들어가는 데 힘썼고 그에 관련한 저술도 꾸준히 내고 있다.
‘목욕탕 교회’는 바로 우리들교회를 일컫는 별칭이다. 우리들교회 성도들은 위선과 체면, 인격(persona)이라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가출 직전, 부도 직전, 이혼 직전, 자살 직전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며 치유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하기 때문에 진정한 고백 공동체가 돼야 할 교회에서조차 죄와 상처를 숨기려 든다.
그렇다고 죄에 대한 고백은 목회자가 의도적으로 성도들에게 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목회자 자신부터 고백해야 가능한 일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봐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환난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님이 스승이 되니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다. 인생이 해석되기 시작하면서 날마다 말씀에서 치부와 죄를 찾게 됐고 사람들 앞에 수치스러운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눈물로 고난을 공유했다. 그러자 사람들도 하나둘 꽁꽁 숨겨둔 자신의 아픔과 치부를 드러냈다.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느 9:1-4).
사람을 회개로 이끄는 지도자
지도자의 할 일은 다른 사람을 자복으로 이끄는 것이다. 레위 사람들은 단 위에 올라서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혼자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단 위에 올라서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며 오직 하나님이 구원이시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만이 구원이시고 자신은 티끌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부끄러운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 후 시집살이 5년 만에 주님을 만났다. 주님을 만나고 나니 그동안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게 너무 죄송했다. 그저 내 야망을 좇아 살았던 게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내가 전도했던 사람들과 성경공부 모임, 구역 모임, 큐티 모임을 하며 내 부끄러운 모습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배설물 같고 티끌보다 못한 존재이며, 내 지식과 교양으로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사랑할 수도 섬길 수도 없었음을 단 위에 올라가 자복했다. 이제는 목사로서 예배 때마다 강단에 올라서서 아직도 되었다 함이 없는 모습을 자복하고 있다.
만인제사장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바로 레위인이요, 단 위에 올라선 인생을 사는 영적 지도자다. 혹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인생을 살아야 하기에 날마다 단 위에 올라서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빛 가운데 드러난 인생이기에 어디에도 숨을 수가 없다. 연약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약재료다. 자신의 수치와 고난을 약재료로 쓰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어디에도 자기 속을 털어놓지 않는 사람은 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두세 사람의 믿음 공동체는 그래서 중요하다. 단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을 열면 도리어 해가 될 수 있으므로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털어놓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이 티끌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기에 내 죄를 공개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무시를 당해도 감당할 믿음이 있었다. 누군가 내 죄와 수치를 들으며 나를 비인격적으로 대한다 해도,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방보다 내가 더 큰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나를 공개할 준비가 됐던 것이다.
우리들교회에 온 사람들은 내 고백을 듣고 제각각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주 영아부에서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예배 시 간증과 주보에는 성도들의 다양한 간증이 올라온다. 다음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의 고백이다.
제가 어릴 때 아빠와 엄마는 아빠의 바람 사건으로 심하게 싸우곤 하셨습니다. 어느 날은 아빠가 엄마 가슴을 구둣발로 차서 형과 몹시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의 이혼 요구로 두 분은 제가 4살 때부터 따로 살고 계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과 저는 엄마를 따라 우리들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낯설었지만 다른 교회와 달리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살리기 위해 이곳으로 인도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부모님이 별거하신 이후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게임이나 휴대폰 게임에 빠져 힘든 현실을 잊어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저를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집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중등부 예배와 목장 모임을 통해서 두 분의 별거가 우리 집과 저를 위해 꼭 있어야 할 사건이라는 말씀이 깨달아졌습니다. 아빠가 우리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하고 계시다는 선생님 말씀이 이해가 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빠를 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빠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절대 아빠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아빠를 혼자 외롭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이제라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서 우리 다 같이 예배드리며 함께 살자고, 예수님이 아빠를 위해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달라고…. 이 얘기를 아빠한테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빠,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게임 중독의 죄와 부모가 별거 중이라는 생채기를 드러낸 우리들교회 한 소년의 나눔이다. 사춘기 시절 주위 친구들의 시선 때문에 고백하기 힘들 수도 있었겠지만 이 소년의 고백은 수많은 성도들을 눈물짓게 하고 회개케 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목사, 목자, 교사, 친구들이 각자의 사연을 드러내자 자신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단 위에 올라가 자기 이야기를 공개했던 것이다. 그러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성도들이 공감과 위로를 얻고 자기 죄를 보게 됐다. 일부 사람들의 일방적인 고백이 아니라 서로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상처를 나누는 공동체이기에 이런 고백이 있을 때마다 놀라운 치유와 회복이 예배 시간에 일어났다.
죄 고백이 프로그램인가?
사울 왕은 선지자 사무엘의 지속적인 경고를 받았음에도 끝내 회개하지 않고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반면 히스기야 왕은 자신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회개를 이끌어낸 지도자였다. “제사장들이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대하 29:24).
히스기야 왕의 회개는 구체적이고 공개적이었다. 또 그의 선왕들과 달리 이방 신의 제단과 산당을 제거했다. 온 백성은 즐거이 여호와를 찬송하고 기뻐했다.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허물을 자복하고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얻고, 죄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하니 기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회개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감정임을 알게 됐다. 진정한 회개란 그동안 살아온 날의 고난보다 자신의 죄가 더 크다는 것을 고백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이를 보여주는 한 성도의 고백이다.
6년 전, 큰 아이가 심실부정맥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다행히 위기 상황은 면했지만 뇌에 혈류 공급이 되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의지해야 했습니다. 몸의 열을 내리기 위해 추운 겨울 중환자실의 창문을 연 채 옆구리를 얼음주머니로 문지르고 알코올을 계속 뿌렸습니다. 중고등부 회장까지 지냈을 만큼 교회 생활에 열심이었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돼버리니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 제가 뭘 그렇게 악한 짓을 했다고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원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너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서 물과 피 다 쏟으며 죽게 했는데…”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는 아들의 모습이 바로 나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 이 사건이 조금씩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위로가 느껴지고 마음의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말씀이 임하니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질렀던 수많은 죄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과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무절제하게 술 먹고 음란하게 행했던 것, 무덤까지 몰래 갖고 가고 싶었던 불륜의 죄를 목장 모임 때 고백했습니다. 아직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주의 백성이 되어 악한 길에서 떠나 매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인생이 됐습니다. 내 인생의 행적을 말끔히 지워주시며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성도들은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고난을 말씀 묵상을 통해 해석한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돌이킨 이야기를 간증한다. 죄에 대한 고백은 담임목사가 인위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성령의 역사와 말씀에 대한 진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 가운데 방문하실 때 우리는 자신의 절망적인 전적 부패의 상태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에 이른다.
교회 내에서 목사나 목자 같은 리더십이 먼저 단 위에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니 성도들도 함께 죄를 고백하며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는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된다. 우리가 고백하는 죄의 용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약속한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5).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 하셨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며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성도들 또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숨겨온 죄를 고백하며 목장의 기도와 도움으로 돌이킴의 체험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교회 내에서 흔히 하는 말이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다. 죄를 깨닫고 고백한 성도들은 세상의 기복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거룩을 추구하게 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한다.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면 그 누구도 추함과 더러움을 숨길 수 없다. 우리들교회에는 별다른 성경공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없다. 목장 예배의 나눔 주제는 설교 때 선포된 말씀을 토대로 한다.
그 말씀으로 각자의 죄를 살펴보고, 적용할 질문을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돌이키며 나눔을 한다. 목원에게 이야기를 듣는 목장 식구들은 고백한 당사자를 정죄하지 않는다. 자신도 종류만 다를 뿐 똑같이 죄 짓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기에 그 사람의 마음을 체휼하고 말씀으로 권면하며 눈물로 중보한다. 그러면서 공동체 안에서 천국을 누리고, 자신이 누리는 천국을 가족과 이웃에게 보여주는 삶이 가장 큰 축복임을 재확인한다.
따라서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것은 단언컨대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는 말씀에 대한 지극한 순종이다.
말씀의 빛 가운데 삶을 드러내야
한국 교회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평양대부흥을 경험했지만 이후 부흥 운동이 무색할 정도로 말씀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죄 고백 공동체는 말씀을 떠나서는 형성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는 것이다. 담임목사부터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말씀을 철저하게 묵상하고 자신의 삶을 빛 가운데 드러냄으로써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하고 구원을 얻는 것이 바로 죄 고백 공동체의 기본인 것이다.
예수님은 “건강한(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다”고 하셨다. 교회는 영적 병원이다. 내가 건강하다고 하면서 아픈 사람을 비판한다면 병원에 와서 환자들을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면 치유는커녕 분열과 갈등만 일어난다. 목회자나 교인들이나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면 서로 판단하느라 자기 죄를 보지 못한다.
“저 장로는 교회를 평생 다녔다면서도 왜 저러지?”, “저 사람은 이제 겨우 초신자면서 뭘 안다고 나서는 거야?” 하다가 공동체 전체가 무너진다. 각자가 자기 죄를 먼저 회개하고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해야 비로소 공동체는 진정한 고백 공동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나는 우리들교회를 목회하면서 죄인의 공동체,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얼마나 건강하고 좋은 공동체인지를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싫어하고 외면하지만 아프고 힘든 이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사모한다는 걸 봤다. 말씀 그대로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삼상 22:2)들을 날마다 초청했고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뤄주셨다.
:: 필자 정보 - 김 양 재
우리들교회 담임목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저서로 《보석》, 《복 있는 사람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