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M집사님에게는 똘똘한 둘째 딸이 ‘블루칩’이라고 한다. 둘째 딸만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고 기쁘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예쁜 딸 때문에 무너지는 일이 있었다.
저녁 시간,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온 딸이 밖으로 놀러나가겠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집에 있으라고 하는데 딸은 집사님을 뿌리치면서까지 외출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딸의 친구가 자기 집에 전화를 하더니 ‘우리 엄마가 못 가게 하신다’면서 금세 순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딸은 머쓱해져서 방으로 들어갔지만 집사님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딸의 친구는 엄마의 말 한 마디에 수그러드는데,그 친구가 보는 앞에서 팔까지 뿌리치며 자신을 거역한 딸이 용서가 안 됐다. 방으로 들어가서 불같이 화를 내고,때리고,반성문을 쓰게 하고,한 달간 컴퓨터 사용금지,친구 집 방문 금지로 벌을 주었다.
어느 남자 집사님은 집에서 부인이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해도 전혀 상처를 안 받는다고 했다. 부인이 자기보다 학벌도 지식도 부족하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느낌이 안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젊어서 대기업 직원으로 있을 때 어느 선배가 농담처럼 ‘아무개씨,머리가 나쁜 거 아니야’ 그랬는데 그 때의 상처가 아직도 용서가 안 된다고 한다.
내 말을 무시하는 가족,사소한 농담,이런 것 때문에 우리는 서로 용서를 못하고 원수된다. 그런 일은 잊혀지지도 않아서 당시 상황과 표정과 말투를 되새겨가며 스스로 더 상처를 키운다. 그래서 생각하면 할수록 용서 못할 원수가 가정과 직장에,심지어 교회에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횟수가 아닌 무한대의 개념이다. 내가 힘들게 용서했는데 상대가 변하지 않더라도 끝까지 인내하고 용서하라는 것이다. 용서의 과정이 중요한 것은 상대를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나 자신의 죄를 깨닫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 작은 일에,사소한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내 속의 열등감과 교만을 발견하게 된다. 딸을 무섭게 야단친 집사님도 ‘남편이 무시하는 것도 서러운데 너까지 날 무시해?’하는 쌓인 분노가 있음을 깨달았다.
일흔 번씩 일곱 번,상대를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나야말로 용서가 필요한 대상임을 알게 된다. 그런 나를 용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누구도 용서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용서하고 용서받을 일이 있다는 것은 내가 성숙해지는 축복의 훈련이다.
김양재 목사(우리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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