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살아 있을 때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전쟁준비’였다. 자신은 의사라서 어디를 가든 먹고 살겠지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걱정이라고,전대를 만들어서 금과 현금을 넣어두었다가 전쟁이 나면 얼른 허리에 차고 도망하라고 했다. 내가 전대를 안 만들고 있었더니 본인이 만들어와서는 허리에 차보게 할 정도였다.
그뿐 아니다. “전쟁이 나서 우리가 헤어지게 되면 매년 1월1일 남산타워 앞에서 만나자. 서울이 함락되면 홀수 해 1월1일에 부산에서 만나고 부산이 함락되면 짝수 해 1월1일에 서울에서 만나는 거다.” 당부에 당부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짝수해에는 어디?”라고 물어보는데 그 때마다 나는 시원스럽게 대답을 못했다.
아무리 들어도 헷갈리기만 하고,속으로는 시집살이 시키는 남편이 힘들어서 ‘아니 전쟁까지 나서 헤어졌는데 뭘 굳이 다시 만나려고 그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도덕과 윤리,성실함으로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 똑똑한 남편이 믿지 못한 예수님을 나처럼 부족하고 어수룩한 사람이 믿게 되었다.
반면에 남편은 매사에 염려와 근심이 많았다. 병원에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혈액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한밤중에도 직원과 식구들을 깨워서 “환자 죽일 일 있냐!”하고 호통하며 벌을 세웠다. 단 한번도 수혈할 혈액이 부족한 적이 없었지만 모든 것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건강도 철저하게 챙기던 남편이 급성 간암으로 쓰러진 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매월 간기능 검사를 했지만 인간의 완벽주의로는 생명의 시한을 알 수도,다스릴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이고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게 나타내지는 곳이다(마 11:25). 나의 슬기와 지혜는 하나님 나라를 가리고 멀어지게 한다. 아무 것도 몰라도 무서울수록 엄마 품을 파고드는 아이처럼 하나님 품으로 자꾸자꾸 파고들 때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다.
남편도 본인의 슬기와 지혜,완벽주의가 무너진 후에야 병상에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남편의 구원 사건이 나의 간증을 통해 날마다 선포되고 있다. 세상 슬기와 지혜로 살아가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 안식의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천국에 가서도 이토록 쓰임받고 있는 남편에게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