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일시적인 화평에 속지 않도록
40대 같지않은 앳된 외모의 K자매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부모님 모두 교회에 다니지만 언제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 구절만 강조할 뿐 인격적인 사랑과 가르침은 받을 수 없었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 안 믿는 신랑감을 소개 받아 망설이고 있을 때 부모님은 “그 집안이 너의 선교지라고 생각하고 시집가라”며 자매를 부추겼다. 신랑감이 사회적으로 능력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매의 결혼생활은 어둡고 두렵기만 한 시간이었다. 남편의 폭력과 외도에 지쳐 친정에 찾아가면 부모님은 ‘네가 어디에서 그런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겠느냐’면서 자매를 돌려보냈다. 남편도 부모님도 무섭고 교회에서조차 의지할 곳이 없던 자매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고 남편과 친정의 채무관계까지 얽혀 결국 이혼을 당했다.
입시 결혼 취업 등 인생의 많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일시적인 화평에 속아 잘못된 선택을 한다. 자식이 대학에만 들어가면,돈만 있으면,취직만 하면 우리집에 다툼이 없고 편안할 것 같지만 그렇게 얻은 화평은 너무도 일시적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화평,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부부 사이에도 부모 형제 자매간에도 참된 화평을 이룰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땅에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하신다(마 10:34). 진정한 화평을 위해 우리는 고단한 영적 싸움을 거쳐야 한다. 죄인인 줄도 몰랐던 내가 내 죄를 보고 회개하려니 내 속에 갈등이 있고,세상 가치관에 젖은 가족 친구를 전도하려니 서로간에 갈등이 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선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돈 학벌 지위가 주는 일시적인 화평을 거부하고 갈등을 택하는 것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내 속에도,우리집에도 진정한 화평이 이루어진다.
어둡고 창백한 얼굴로 처음 만났던 K자매가 밝고 화사한 웃음을 찾고 있다. 교회 안에서 지체들을 만나며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믿기지 않아서 허벅지를 꼬집어 본다고 한다. 자매가 먼저 눈물로 회개하니 부모님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딸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하셨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화평,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화평이 자매와 그 가정을 채우고 있다.
김양재(우리들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