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_8월_선교보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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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드립니다. 전만규, 김미정 선교사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선교동역자 여러분과 함께 선교에 임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주님께서 하신 일들과 부어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며 기쁨이 풍성하기를 기대합니다.
- 다시 복음앞에 -
지난 해(2013년) 1월 주님께서는 저희로 하여금 다시 복음 앞에 설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선교사, 목사의 직분과 신앙인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이 자기 의가 되어
적어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마치 침몰하는 세월호에 앉아 구명조끼를 입고서
'나는 구원 받을 거야'라고 하는 자기확신 가운데 있으면서 마냥 앉아 기다렸던 사람들의 생각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음을 보았습니다.
지난날의 저의 삶은 복음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에 무지하였고, 복음과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모습은 죄 짓는 것을 감기 걸린 것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쉽게 생각했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복음 앞에 서게 된 일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매일 복음 앞에 서서 십자가 복음만을 자랑하기로 마음의 태도를 정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제 가족을 옛 사람을 벗어버리게 하셨고 새 생명으로 바꾸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 다시 우크라이나로 가다. -
지난해 4월, 그렇게 달려간 우크라이나.
45일간의 비자기간 동안 거주등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4월 26일 체로노빌 핵발전소 사고 기념일에 입국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대책 없는 결정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4월 26일- 5월 9일까지 연속으로 이어지는 국경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저희의 마음을 어렵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만 바라보라는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이었습니다.
주님은 저희 가족이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주님뿐임을 알게 해 주셨고,
저희는 거주등록이 이어지길 기도하기 보다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더욱 말씀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말씀과 기도의 삶이 실제가 되도록 이끄신 주님의 완전한 조치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매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으며 현지 교회와 집시촌 교회에게도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죄, 의, 심판, 재림, 구원, 십자가, 거듭남,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사실 이 내용을 모두가 반가워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원하는 것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 지원을 기다렸습니다.
지난날의 선교 사역을 생각 해 보았을 때 너무나 달랐습니다.
지난날은 그들이 좋아 하는 것과 받아들일만한 내용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설교를 잘한다는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들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처럼 설교 할 수 없었습니다.
복음을 알았고 주님이 주신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그 은혜가 어떠한 은혜인지
저의 삶에 실제로 다가왔기 때문에 결코 일시적 내용들로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고 하늘의 가치를 선택할까? 저는 7개월간 알고 있는 복음, 전해 들은 복음을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나의 최선과 노력으로 선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 7개월간의 시간 동안 주님 없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주님은 가르쳐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 영적 전쟁 가운데 주님께서는 거주등록을 순조롭게 받게 하셨고, 현지 교회와 연합하여 하는 48시간 연속 기도까지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수많은 영적 전쟁 상황 속에서 조차 주님께서는 거주등록을 순조롭게 받도록 하셨고,
현지 교회와 연합하여 진행하는 48시간 연속, 연쇄, 연합기도까지 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복음의 영광은 사역의 성패에서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볼 때 실패한 것 같아 보이고 패배한 것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그 십자가에서만이 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두가 주님이 하신 것이었습니다.
- 토목 공사 -
2년 전 공동체 앞 비탈진 마당을 평평하게 하여 운동장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모아진 ‘선교비’가 있었기에 가능하겠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서둘러 토목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오래전 마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표현하는데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언 25:28)
간단히 해결 될 줄로만 알았던 토목공사는 규모와 위험부담감이 커져만 갔습니다. 주님께 묻지 않고 한 것이었고 눈에 보이는 상황을 좇아 행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선교비가 고갈 되는 어려움과 위험 문제 등 여러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 앞에 섰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주님께 여쭙고 시작하겠다던 고백은 고백뿐이었고, 말씀과 삶이 일치 되지 못하고 마음과 상황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던 자아가 드러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공사는 마무리 되었지만 주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저 다시 말씀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토목 공사를 통해 주님은 먼저 주님께 묻지 않음에 대해 아직도 여전히 내가 주인 되어 선교를 해보려는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 현지인과 함께 하는 복음 -
복음을 알았기에 전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저를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복음학교에서 노트했던 자료를 가지고 한 주에 세 번 만나 비록 토목공사로 피곤한 몸이었으나 감사하는 맘으로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 마음 한 구석에 틈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내 의지가 주님의 때와 주님의 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다는 복음은 나에게 아직 실제가 되지 못한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가지고 있지만 그런 내 자신을 보면서 만족해하고
복음을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복음을 많은 정보중 하나처럼 전달하는 자로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통해 복음을 들었던 현지인은 분노를 넘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구급차를 불렀고 경찰에 신고하였으며, 게다가 현지교회에 그 형제를 비난하는 말로 옳다 함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제 안에 있던 아직도 처리 되지 않은 죄는 이와같이 상황과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어김없이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일들을 통해 제 내면의 죄된 실체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사실 설사 이유야 어떻든 이런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해도 제가 취해야 했던 행동은 믿음의 행동이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해서 죽었고 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음을 믿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만 외치는 복음이 실제가 아니었음이 밝히 드러나는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믿음의 부도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시편 37편을 통해 말씀 하시면서 주님을 의지하라고 다시 부르셨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 시편 37편 5절~7절
주님의 말씀에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그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기다리기로 마음의 태도를 정하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기도하였던 이튿날 그 형제가 공동체를 찾아왔고 서로가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 아버지 폐암 소식과 귀국-
여러 어려운 상황들이 전개 되고 있던 시점에 또 한 가지 소식은 저희의 마음을 더욱 가난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폐암 소식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던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습니다.
한국행 항공표를 구입할 형편도 못 되었고 그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병을 고치게 해 달라는 내 수준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에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죄에 대해 암 덩어리보다 얼마나 쉽게 대해 왔었는지 죄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점검하라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저희 가족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토목공사와 자동차 수리비 및 공동체 건축 등기비용으로 선교비를 사용하였기에 네 식구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치료비를 지원해드리지도 못하는데 아이들(성진과 하은)이 헤브론원형학교에 들어가겠다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저희에게는 모든 상황이 지진해일처럼 보였습니다.
역시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상황을 바꿀 수 있으신 분이 주님이시기에 주님만 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속의 말씀인 시편 37편 5절~7절을 붙잡고 한국으로 온 가족이 귀국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여러 결정을 하였지만 매 순간 믿음 없는 모습은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처지를 아버지께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갈 때 주님의 선하신 손길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아버지를 뵈면서 하나님이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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